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이르게 찾아온 소식에 정신이 멍했다. 짧은 탄식 뒤에 찾아온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부고 소식을 접하기 며칠 전, 할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지방에 내려갔다. 왜인지 지금 가야만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아르바이트를 미뤘다. 그렇게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요양병원에서, 멀거니 천장만 보고 누워있는 할아버지를 마주했다. 음료수도 삼키지 못해 온몸이 야윈 할아버지는 그저 누워만 있었다. 한마디 말씀도 하지 못하고선. 나는 얇은 이불 아래로 손을 넣어, 그의 마른 손등에 약간의 온기를 실어 보냈다.
"저희 왔어요. 이것 좀 드셔보세요."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 할아버지를 보고, 혹시 나를 잊으신 건가. 못 알아보시는 건가, 심장이 덜컹 가라앉았다. 직원분께서 음식을 씹어 삼키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위해 복숭아를 갈아주셨는데, 할아버지는 그마저도 드시질 못했다.
"이제 갈 날이 멀지 않으셨으니까, 기도 해드려야 한다."
할머니의 말에, 우리는 둥글게 모여 앉아 기도했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을 줄만 알았는데, 생각보단 가벼웠다. 약간 산뜻하기까지 했다. 초여름의 후덥지근한 바람이 살살 불었고, 녹음이 우거진 풀숲이 흔들렸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꽃과 나무가 가득한 자연으로 돌아가신 것 같다.
할머니는 박카스, 결명자차, 선물 받은 새 옷까지 건네면서 가져가라고 얘기했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그녀가 요양원에 들어서기 전, 할아버지와 둘이 '자기만의 집'에서 살 때에 일이. 그녀는 명절 전이면 한 걸음, 두 걸음 느린 발자국을 떼어내며 시장에 갔다. 그곳에서 인형과 양말을 샀는데, 그건 항상 내 몫이었다. 그녀는 고등학생 손녀 손에 곰 인형, 원숭이 인형을 쥐여 보내는 사람이었다. 웃으며 받았지만, 내심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돈 아껴뒀다 당신을 위해 쓰지, 하는 생각. 그런데 지금 와 돌이켜보면, 할머니는 그저 사랑하는 가족에게 무어라도 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당신이 살아 계시고,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최선을 다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사진은 고등학생 때 블로그에 기록한 일기를 캡쳐한 것이다. 선물 받은 원숭이 인형을 찍은 것.)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이제 집에 간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저희 이제 갈게요."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입술이 떼어지질 않았다. 애인이나 친구들한테는 그리도 쉬이 내뱉던 말이, 왜 가족 앞에선 어려웠던 걸까. 내가 지금 이 말을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강렬한 예감에, 떠나려는 부모님을 뒤로한 채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다음에 또 만나요. 사랑해요."
나의 최선은, 솔직해지는 것. 내 감정에 주저하지 않는 것이었다.
"...."
할아버지는 말없이 나를 쳐다보곤 고개를 두 번, 느릿하게 끄덕이셨다. 두 번의 끄덕임에 얼마나 큰 힘이 실려 있었을까. 내려앉은 눈꺼풀 사이로 보이는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작은 병실 안에서 할아버지와 나의 최선이 만난 몇 초의 순간이, 아직도 선연하다.
어른들은 할아버지를 호스피스 병동으로 모셔야 할지, 요양원에 그대로 모실지 의논했다. 당장 돌아가실 것 같진 않다, 생명 유지 장치를 하면 할아버지만 더 힘들 거라는 이야기가 오갔다. 나는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만 보았다. 그때, 무언가 불쑥 튀어나왔다. 고라니였다. 노란 털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던 고라니. 늘 도시에서만 살았기에, 고라니를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녀석은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 선 채 나를 보았다. 까만 눈동자에 우리 가족을 담고는, 뒤를 돌아 유유히 사라졌다.
이상하게도, 고라니 한 마리에 정신이 팔린 듯 계속 고라니 생각만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부고 소식을 들었다. 요양원 관계자분도, 어른들도 할아버지가 몇 달은 더 살아계실 거라고 얘기했다. 이제 며칠 안 남았다는 할머니의 말이 약간의 호들갑이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할머니 말이 맞았다. 할아버지가 진짜로 돌아가셨다. 살아생전의 그에게 더 자주 전화를 하지 못한 것에 미안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아르바이트를 미루고 뵈러 간 것. 망설임 끝에 사랑한다고 말한 것이 하늘이 준 기회이자 선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는 92세의 나이로 영면하셨다. 아빠는 할아버지가 잘 돌아가신 거라고 말했다. 죽기 전 큰 병도 없었고, 손주들 다 보고, 자다가 떠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다행히 우리는 마지막 인사를 나눌 시간이 있었지만, 어떤 죽음은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없이 불현듯 찾아올 거다. '살아있을 때 후회하지 않게 잘해라.'라는 말, 이해는 하지만 가슴 깊이 와 닿진 않았는데. 이제야 알 것 같다.
우리는 매 순간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도, 교복을 입은 학생도.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는 나를 비롯한 대학생들도….취업이 안 된다며 한숨 쉬는 오빠도 다 끝이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끝'이 있다는 게 두려웠고, 나와 가족들이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문득 아빠가 신년 일기장 맨 뒤표지에 적어준 편지가 생각이 나, 다시 펼쳐보았다.
인류가 날짜를 만들고, 첫날과 마지막 날을 정한 것은 멋진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시작과 마무리를 반복한다는 것은 우리에겐 선물이야.
유한함은 간절함을 만들고, 어떤 끝은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같다. 끝이 있으니까, 매 순간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니까, 지금의 고통을 인내하는 것이 아닐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와 두 번의 끄덕임처럼 말이다.
'오글거린다'라는 말에 가려진 숱한 감정을 떠올려 본다.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고, 진솔하게 표현하는 사람을 두고 '허세 부린다, 오글거린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긴 글을 써서 올리면 '길어서 못 읽겠네.'라는 댓글이 달리는 걸 본 적이 있다. 줄임말과 유행어로 소통하는 세상이라지만, 내가 반드시 지키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건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이다.
3년 전, 할아버지께서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실 때 꽤 오랜 전화를 나눴다. 그때의 나는 한참 방황하는 중이었고, 학교를 마친 후 곧장 집에 가지 않은 채 홀로 뚝섬의 한 동네를 걷고 있었다. 그때, 할아버지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할아버지가 대화하다 갑자기 울먹거리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너네한테 미안하다, 미안하다…. 뭐가 그렇게 미안한지 모르겠기에,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하고 사는 거고 다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곤, 사랑한다고 덧붙였다. "고맙다, 고맙다…." 라며 울먹이던 목소리가 소라고둥이 품은 파도 소리처럼 귓가에 울려퍼진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왜 아무 맥락 없이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는지, 3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오래오래 가져가고 싶다. 내 안에, 그리고 당신의 안에 영원히 머무르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