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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삶의 빛이 되는 순간 - 『모나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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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열 살 소녀의 눈이 갑자기 흐려진다면?  『모나의 눈』은 시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절망에 빠진 한 소녀가 예술을 통해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이야기다.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살아가다 이유도 모른채 눈앞이 캄캄해지는 충격적인 경험을 한 소녀 모나. 병원에서도 육체적 이상을 찾지 못하고 정신적인 원인을 의심하자, 가족들은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인다. '다시 눈이 보이지 않게 되면 어떡하지?' 모나는 말할 수 없는 불안을 가슴에 안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단 한 사람, 할아버지 앙리는 달랐다. 그는 약이나 상담 대신 예술을 처방한다. 매주 모나와 함께 파리의 대표 미술관—루브르, 오르세, 퐁피두 센터를 찾아 단 하나의 작품에 오롯이 집중하고, 느끼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이 비밀스러운 미술관 여정은 단순한 감상을 넘어선다. 작품을 오래 바라보고 그 안에 스며들다 보면, 마음속 깊은 감정이 자연스레 일렁인다. 모나는 색채와 선, 조형과 질감 너머 자신의 두려움과 슬픔, 불안과 기대를 마주한다. 예술은 이 모든 감정을 감싸안으며 조용히 말을 걸어온다.



 

트라우마를 감각하는 법: 예술이 건네는 가장 조용한 위로


 

『모나의 눈』에서 예술 감상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보는 행위를 넘어, 자신이 마주해야 할 상처를 감각하고 해석하는 깊은 수단이다. 앙리는 시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억누르기보다, 오히려 그것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을 택한다. 그는 매주 하나의 작품을 통해 모나가 불안을 흘려보내고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을 찾는 법을 배우기를 바란다. 그렇게 앙리는 모나의 곁을 묵묵히 지키며, 그녀의 마음속에 세상의 아름다움이 깃든 저수지가 생기기를 소망한다.

 

이 책이 보여주는 트라우마의 치유는 명확한 해결이나 극복의 드라마가 아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는 힘을 키우는 점진적인 여정이다. 그림 앞에서 모나는 묻는다. "우리가 그를 좋아한다는 걸 어떻게 말해줄 수 있을까요?" 예술가의 고통, 피에로의 붉어진 뺨, 교회의 비틀린 엉덩이, 심지어 말라붙은 흙덩이마저 초콜릿처럼 느껴지는 감각. 아이의 눈은 두려움을 환상의 언어로 번역해 낸다.

 

이런 순간들 속에서 예술은 스스로 설명하지 않아도, 고통을 견디는 또 하나의 언어가 되어준다. 결국 모나는 어둠에 사로잡히는 것이 "조금 덜 무서워졌다"라고 고백한다. 이는 예술이 건네는 가장 조용하고도 강력한 위로이자, 가슴 깊숙이 다가오면서도 잔잔하게 마음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손길임을 증명한다. 이처럼 『모나의 눈』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질문하며, 예술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을 '춤추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건 삶이 그저 살기 위한 것이어선 안 된다는 거야. 삶을 춤출 필요도 있어. 우리의 동작, 우리의 움직임, 우리의 행동이 세상만사의 일상적인 흐름 관습과 제약에 따른 기계적이고도 끝없는 이어짐에서 가끔 벗어난다 해도 괜찮아. 조금 떨어져 나가도 괜찮단다. 그게 자기 삶을 춤추기 위해서라면."


- 332p 발췌




예술을 완성하는 사람, 바로 '관객'


 

"작품을 만드는 것은 관객이다." 『모나의 눈』에서 이 문장은 단순한 표현을 넘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강력한 메시지다. 예술은 창작자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느끼며 자신만의 해석을 덧입히는 관객에 의해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얻는다. 모나는 어린 아이에 불과한 자신조차 미술관에 갈 때마다 그림들이 "자기 덕분에 환해지고 생동하게 되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다.

 

 

"아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 단호한 문장을 진진하게 맛보며 그저 어린 여자애일 뿐인 자기 역시 미술관에 갈 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생각해 봤다. 미술관에 보관된 그림, 조각, 사진, 데생이 자기 덕분에 환해지고 생동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자기 덕분에 진정한 모습을 갖추게 되고 나아가 의미가 더해지기도 했다."


- 429p 발췌


 

단 하나의 작품을 천천히 응시하는 시간은 관객에게 단순한 시각적 경험을 뛰어넘는, 마치 창조와 같은 순간을 안겨준다. 미술관 벽에 걸린 그림은 고정되어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매 순간 관객의 내면에서 새로운 감정과 의미가 피어난다. 그렇게 예술은 수동적인 대상이 아닌, 관객의 시선을 통해 비로소 숨 쉬고 진화하는 존재가 된다. 작품과 관객의 유기적인 교감 속에서,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며 자신도 모르는 새 한 뼘 더 성장한다.

 

『모나의 눈』은 이런 의미에서 예술가의 이야기라기보다, 예술을 느끼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보는 사람, 느끼는 사람, 마침내 변화하는 사람. 모나는 어쩌면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한 편의 작품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세상을 바라보는 법, 감정을 받아들이는 법, 그리고 작품과 함께 마음을 열어가는 법을 안다. 결국, 보는 것이 곧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술을 통해 어떤 삶을 '보고' '살아갈' 수 있을까?

 

*

 

예술을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읽는 내내 이 '보다'라는 행위를 다시 정의하게 되었다. 단지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마음으로 감각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일, 그래서 삶을 향한 시선까지 바꿔놓을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모나의 눈으로 바라보는 예술, 세상 덕분에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들여다볼, 삶을 들여다 볼 용기를 얻었다. 물론 어둠 그 너머를 보는 법도 말이다.

 

이 책은 예술을 잘 아는 사람만을 위한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막 삶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이들, 두려움과 기대가 한번에 다가와 엇갈리는 감정을 보내고 있는 이들이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불안하고 흔들리는 감정을 있는 천천히 들여다 보는 법을, 조금씩 살아내는 법을 누구보다 부드럽고 단단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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