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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극장에서 별자리를 찾다 [공연예술]

런던 @sohoplace 극장의 특별한 콘셉트

by 김은지 에디터
2026.11.06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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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왜 공연을 보러 갈까? 캐스팅 보드에 좋아하는 배우의 이름이 올라 있어서일 수도 있고, 잊히지 않는 대사 한 줄이나 음악 한 소절 때문일 수도 있다. 공연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서, 혹은 라이선스 공연이라 이번을 놓치면 언제 다시 볼지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공연을 본다는 건 적지 않은 시간과 돈, 그리고 마음을 내야 하는 일이라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기대와 설렘, 이유 모를 약간의 긴장을 품고 극장 문턱을 넘는다.

       

      돌이켜 보면 극장이라는 '공간' 때문에 공연을 보러 간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가령 공연까지 한 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고 해 보자. 일찍 도착한 관객이 하는 일은 대개 비슷하다. 화장실에 다녀오고, 근처 카페에 잠시 앉았다가, 로비에 차려 놓은 팝업 공간을 구경하고, MD를 사고, 사진을 찍는다. 그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어떠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다. 굳이 꼽자면 사람이 몰려도 넉넉한지, 화장실 줄이 빨리 줄어드는지, 티켓을 찾아 들어가는 동선이 꼬이지 않는지, 사진이 잘 나오는지 정도다. 극장 건물은 공연을 담는 그릇과도 닮아있다. 예컨대 그릇을 보러 식당을 찾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 그릇을 보러 몇번이고 찾아간 극장이 하나 있다. 런던 토트넘코트로드역 앞, 영국박물관과도 멀지 않아 늘 사람으로 붐비는 사거리에 있는 @sohoplace다.

       

       

       

      도심 속의 우주를 담은 곳


       

      콘셉트는 인상을 남긴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있으면 오래 기억된다. 2023년 11월의 어느 저녁, @sohoplace에 들어서서 불현 듯 고개를 들었다. 천장에 밤하늘이 있었다. 그곳에 별자리가 수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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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위의 사진은 @sohoplace 홈페이지에서, 아래의 사진은 필자가 방문했던 날 촬영한 것)

       

       

      건물 바깥은 모던하다. 런던에서 가장 번잡한 길목에 통유리와 철골이 깔끔한 선으로 서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공기가 달라진다. 남색과 노란색 두 가지를 중심으로 그 위에 조명을 정교하게 얹어, 우주를 한조각 건물 안에 가둬 둔 것 같다. 바깥의 소란이 거짓말처럼 끊긴다. 일종의 진공 상태다. 공연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문을 연 순간부터 무언가가 이미 시작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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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sohoplace 웹사이트 소개 페이지)

       

       

      극장주의 이름은 니카 번스(Nica Burns)다. 그녀는 젊은 시절 배우로 그리스의 고대 극장 에피다우로스(Epidaurus) 의 무대에 섰다. 공연이 시작되던 오후 여덟 시, ‘나무 사이로 마지막 금빛 햇살이 스며들고 남색 하늘에 별이 하나둘 빛을 내던 순간’을 그녀는 어느 인터뷰에서 회상한다. 이는, 바로 @sohoplace의 콘셉트가 된다. 극장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A Place for Everyone’이라는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모두를 위한 장소. 흔한 구호 같지만, 이 극장의 프로그램과 운영에 기반되는 아이덴티티다.


      번스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에서 법을 공부하던 시절 학생 연극에 빠지며 무대와 인연을 맺었다. 배우로 활동하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직접 만든 작품을 올리며 프로듀서가 되었고, 지금은 웨스트엔드 극장 여섯 곳을 거느린 니맥스 시어터스(Nimax Theatres)를 이끈다. 다른 극장들이 기존 건물을 매입한 것이라면, @sohoplace는 처음부터 극장으로 설계해 새로 지은 곳이다. 12년이 걸렸다. 2022년 10월 문을 열었고, 웨스트엔드에 극장이 새로 지어진 것은 50년 만이었다. 번스는 진취적인 사업이지만 사람으로서는 참 낭만적이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 극장에 담은 자신의 비젼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The building is very theatrical, so you can enjoy a little bit of theatre magic even if you’re not going to see the show.”

      (이 건물은 마치 극장처럼 꾸며져 있어서, 공연을 보기 위해 온 것이 아니더라도 잠시나마 공연이 거는 마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녀는 젊었을 적 경험을 살려 원형 무대(in the round)를 염두에 두고 극장을 지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프로시니엄 무대가 액자 너머의 그림, 혹은 텔레비전 화면을 보는 방식이라면, 원형 무대는 객석이 무대를 빙 둘러싼다. 마당놀이를 떠올리면 된다. 602석 규모인데도 어느 자리도 무대에서 여섯 줄 넘어서지 않는다. 시야와 좌석, 무대 높이, 조명과 음향까지 이 구조에 맞춰 설계했고, 필요하면 무대 모양을 바꾸고, 객석을 옮겨 다른 형태로 바꿀 수도 있다. 실제로 내가 이곳에서 본 네 편의 공연은 모두 다른 무대를 썼다. 한국에도 이런 방향성을 둔 극장들이 있다. 두산아트센터 Space111이나 대학로 극장 쿼드처럼 무대와 객석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가변형 극장들이다. 창작자에게는 실험을 하고싶은 자극을, 관객과의 거리를 좁힌다는 점에서 @sohoplace와 가장 닮았다.


      처음으로 관람했던 공연은 신작 뮤지컬 "더 리틀 빅 띵스(The Little Big Things)" 였다. 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헨리 프레이저의 회고록이 원작이다. 이 공연을 시작으로 모두 네 편의 공연을 보러 이 극장을 찾았다. 취향에 꼭 맞는 작품도 있었고, 솔직히 집중하기 어려운 작품도 있었다. 그런데 그날들을 떠올리면, 매번 작품에 흠뻑 빠져든 순간이 하나씩은 꼭 있다. 극장 전체가 UN 회의장이 되고, 분명 퇴장한 줄 알았던 인물들이 사방에서 불쑥 나타나던 장면. 누군가의 죽음을, 쓰러진 자전거의 바퀴가 홀로 헛도는 것으로 보여 주던 장면. 흩날리던 신문지가 사람의 형상으로 피아노를 치며 주인공의 깊은 내면을 드러내던 장면. 예컨대 공간에 매료되어 같은 극장을 몇 번이고 찾아간 건 처음이었다.

       

       

       

      별자리를 찾는 순간, 마법이 걸리기 시작했다


       

      최근 다시 저 극장을 찾을 기회가 있었다. 공연을 보기로 한 날은 더웠고, 업무 미팅이 일찍 끝나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저녁 공연이었지만 이른 낮부터 극장에 들어가 1층 바에 앉아 책을 읽었다. 음료를 시키지 않아도 그날 티켓만 있으면 느긋하게 머물 수 있다. 한쪽에서는 공연의 관계자들이 업계 사람들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고, 창가에는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어르신들이 담소 중이었다. 번스의 말대로 그곳에 머문다는 것만으로도 조금 이르게 마법이 걸리기 시작했다.


      대체로 극장은 저마다의 도시에서, 저마다의 관객과 동고동락하며 제 모양을 만들어 간다. @sohoplace는 런던에서도 꽤 별난 극장이다. 공연을 보러 가는 수많은 이유 목록에 '그 극장이라서'라는 항목 하나가 더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기회가 닿는다면, 그때 걸린 공연이 내 취향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다시 발걸음하고 싶다.


      혹시 당신이 먼저 가게 된다면 건물 안에 들어가 잠시 고개를 들어 보기를. 그리고 당신의 별자리를 찾아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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