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오 (오에오) 오에오 (오에오)
너도나도 모두 다 즐기세 양반 놀음
SWAG AGE 외쳐, 조선! in concert, 넘버 '양반놀음' 중에서
"오에오" 하고 배우가 선창을 한다. 그러자 객석에서 "오에오"하고 받는다. 처음엔 몇 사람이던 목소리가 어느새 극장 전체로 번졌고, 나 역시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여기가 어디인지 떠올렸다. 런던이다. 그것도 웨스트엔드, 1981년 <캣츠>가 처음 막을 올린 유서 깊은 극장이다. 지금은 <이웃집 토토로>가 장기 공연 중인 바로 그 무대에서, 관객들이 한국어 가사를 목청껏 주고받고 있었다.
한국에는 좋은 뮤지컬 IP(지식재산)가 많다. 그래서 업계 안팎에서 해외 진출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고, 런던 현지에서도 한국 뮤지컬이 웨스트엔드 관객을 만날 날을 기대 어린 눈으로 지켜봐 왔다. 그렇게 늘 상상만 하던 일을 객석에 앉아 몸으로 겪는 건 생각보다 훨씬 짜릿했다. 올 줄 알았던 날이었지만, 막상 그날이 오니 반가웠다.
Ah- ahah ahah ahah-. Goddess is watching me.
<여신님이 보고 계셔> 런던 쇼케이스, 메인 테마 중에서
그로부터 1년 남짓 지난 2026년 10월, 채링 크로스역 아래의 작은 극장에서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두 번째 런던 쇼케이스가 열렸다. 커튼콜에서 배우들이 한 줄로 서서 메인 테마를 불렀다. 금발, 갈색 머리, 곱슬머리. 무대 위에 한국인은 없었다. 대학로에서 십 년 넘게 공연하며 두터운 팬층을 쌓은 작품의 노래가 영어가 되어, 템스강 옆 오프 웨스트엔드 극장을 채우고 있었다.
한국전쟁 중 무인도에 갇힌 남북한 병사들의 이야기를 영어로 듣는 일은 흔치 않다. 객석의 나이도, 성별도, 국적도 제각각이었다. 그들은 낯선 이야기를 대할 때 사람들이 짓는 표정으로 무대를 보고 있었다. 반쯤은 경계하고, 반쯤은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SWAG AGE 외쳐, 조선!, in concert, Gillian Lynne Theatre, 런던, 2025]

[The Goddess is Watching, Industry Showcase, Charing Cross Theatre, 2026]
영국 관객과 만나는 한국 뮤지컬들
한국 뮤지컬이 웨스트엔드 언저리에서 새 관객을 만나고 있다. 특히 작년과 올해, 그 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이 흐름을 이끄는 건 이미 작품을 손에 쥔 창작자와 기획자들이다. 국내에서 검증받은 작품을 들고 와 소개하고, 현지에서 다시 다듬는다.
예술경영지원센터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으로 쇼케이스를 거친 <마리 퀴리>는 2024년 영국 배우와 제작진으로 런던 초연을 올렸다. 대학로의 스테디셀러 <레드북>(2022~2023)과 <여신님이 보고 계셔>(2025~2026)는 리딩과 쇼케이스를 거듭하며 영어 대본을 손보고 있고, <더 라스트맨>은 2026년 봄 영국 초연을 마쳤다. 2019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창작뮤지컬상 수상작 은 에든버러 프린지를 거쳐, 건반과 현악 중심의 소편성으로 런던 관객을 만나며 작품을 계속 발전시켜 가고 있다.
SWAG AGE 외쳐, 조선!은 조금 다른 길을 택했다. 'in concert'라는 부제를 달고, 단 하루, 1,300석 규모의 웨스트엔드 대극장 무대에 섰다. 2015년 <미스 사이공>으로 웨스트엔드 무대에 섰던 김수하 배우와 양희준 배우를 비롯한 한국 오리지널 캐스트가 직접 건너왔다. 김수하 배우에게는 10년 만의 웨스트엔드 귀환이었다. 한국 배우가 한국어로 부르는 노래가 런던 한복판에서 통할 수 있는지, 하룻밤 동안 시험해 본 셈이다. 그날 객석의 반응을 떠올리면, 답은 꽤 분명했다.
극장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금 더 해보자. 지금까지 한국 창작뮤지컬이 런던의 어떤 극장에, 어떤 형태로 올랐는지 지도 한 장에 모아 보면 아래와 같다.

점을 하나씩 찍다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 공연을 보러 가던 극장도 있었고, 런던에 사는 작가들이 신작을 시연할 때마다 찾아가던 작은 극장도 여럿이었다. 비어 있던 지도 위에 공연의 기록이 하나둘 쌓여 간다는 건, 한국 뮤지컬이 이 도시에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냉정하게 보면, 정식 공연은 <마리 퀴리>, <더 라스트맨>,세 편뿐이다. 나머지는 리딩과 쇼케이스, 단 하루의 콘서트였다. 그 세 편도 모두 200~300석 규모의 오프 웨스트엔드 극장에서 공연했다. 한국 뮤지컬은 아직 웨스트엔드의 문 앞에 서 있다. 그럼에도 한국 뮤지컬 제작진들은 그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고 있다.
번역, 어디까지 해야 할까?
런던에서 한국 뮤지컬을 볼 때마다 번역한 사람들의 고충이 객석까지 전해진다. 그만큼 번역가와 현지 연출진이 오랜 시간 붙들고 씨름했다는 뜻이다. 리딩이나 쇼케이스가 끝나면 패널 토크가 이어지고, 관객에게 QR코드를 나눠 주며 반응을 묻기도 한다. 낯선 관객에게 한 걸음이라도 더 다가가려는 노력이다.
이 고민은 결국 하나의 갈림길로 이어진다. 한국어로 공연할 것인가, 영어로 옮겨 라이선스를 팔 것인가. 그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은 장면도 있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 쇼케이스에서는 영어에 없는 호칭, '형'을 그대로 살려 두었다. 'brother'라고 옮기면 뜻은 통한다. 하지만 '형'이라는 호칭에는 기대고 의지하는 관계와 친밀함이 한데 섞인 뉘앙스가 있다. 그래서 영국 현지 제작진은 완전히 번역하는 대신 다소 낯설더라도 살리는 쪽을 택했다. 영국 연출가는 최종 개발 단계에서 한국어 호칭이나 단어를 더 많이 반영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물론 런던의 오데온(ODEON)이나 픽처하우스(Picturehouse) 같은 영화관에서 한국 영화는 대개 원어에 자막을 달아 상영한다. 오히려 한국어로 보기를 원하는 관객도 있다. 하지만 뮤지컬은 사정이 다르다. 대사와 노래가 쉼 없이 오가니 자막이 따라가기 벅차다. 관객의 시선은 무대와 자막 사이를 오가느라 분주해진다. 암전 속에서 홀로 빛나는 자막 스크린은 몰입을 깨뜨린다. 오리지널 캐스트를 데려오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결국 남는 건 기획의 전략이다. 영어로 옮겨도 잘 전달되는 작품이 있다. 반대로 말맛이 작품의 절반인 경우도 있다. 한국어 대사와 가사가 선율에 붙을 때 나는 소리, 그 단어가 품은 호흡 같은 것들 말이다. 번역이 어려운 건 아마 단어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 소리에 담긴 정서, 그리고 그 정서 위에 섬세하게 설계된 인물 때문일 것이다.
한국 뮤지컬의 오리지널리티는 무엇일까?
영국 관객들은 왜 한국 뮤지컬을 보러 올까? 웨스트엔드에는 작품이 넘쳐난다. 그런데도 표를 사서 객석에 앉는다면, 거기에는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 무언가가 바로 한국 뮤지컬만의 오리지널리티일 것이다.
그런데 이 질문은 곧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 고유함(originality)을 지키면서, 낯선 관객에게 얼마나 다가갈 것인가. 다시 말해 현지화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 글을 쓰는 2026년 10월 현재, 한국 창작뮤지컬이 영국 관객과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한 지는 아직 5년이 채 되지 않았다. 2002년 <명성황후>의 런던 공연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작품이 꾸준히 건너오는 흐름이 생긴 건 최근의 일이다. 시작 단계인 만큼, 한국 뮤지컬에는 고유한 것들이 아직 날것 그대로 남아 있다. 특유의 정서가 있고, 노래가 짜이는 방식이 있고, 영미권 뮤지컬과는 다른 이야기의 구조가 있다. 대학로 관객과 오래 부대끼며 자라 온 시장의 논리도 대본 곳곳에 배어 있다.
영국도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도 그들의 관객이 있고, 오랜 세월 쌓여 온 취향이 있다. 서로 다른 두 시장이 만날 때는 어쩔 수 없이 마찰이 생긴다. 작품 하나를 개발하는 데 짧아도 몇 달, 길면 1년을 넘긴다. 그런데 현지 배우를 오디션하고 연습시킬 비용과 시간은 늘 빠듯해서, 리허설을 길어야 2주 안에 모두 끝내야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결국 그 마찰에서 나온다. 언젠가 웨스트엔드 한가운데서 한국 뮤지컬을 보게 되기를 기다한다. 그날 객석의 누군가는 또 한국어 가사를 따라 부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