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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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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오피니언은 [대도시의 사랑법]의 스포일러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 글입니다.

 

 

 

들어가며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작가의 소설 [재희]가 스크린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 우리에게 다시 다가왔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적어 놓으니 간단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원작이 존재하는 작품을 영상화하는 것은 아주 세심하고 까다로운 작업이다.


검증된 서사, 개성 넘치는 인물들, 매력 넘치는 세계관, 언론의 주목 등... 유명 웹툰, 소설, 게임 등 원작을 기반으로 한 영화는 대부분 이런 장점들을 기반으로 하기에 실패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 보인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1편보다 나은 후속편이 드문 것처럼, 원작을 뛰어넘는 영화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 영화판의 현실이다.


원인을 추론해보자. 우선 제작자들은 평론가보다 까탈스러운 관객인 원작 팬을 상대해야 한다. 원작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누구보다 큰 이들은 자신이 원작을 통해 얻은 추억이 훼손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원작 팬들의 만족만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미디어 형식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연출에 적응하지 못한 일반 관객들은 혹평을 쏟아낼 것이고, 이는 대중성의 하락으로 이어져 흥행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원작 팬과 일반 관객의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아야 성공할 수 있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생각을 타이핑 할 뿐인 필자와 달리, 무거운 책임을 짊어진 제작진은 불 위에서 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심정일 것이다. 그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어려운 도전에 나선 제작진에게 기대를 잔뜩 걸어보며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이 원작 팬과 일반 관객.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는, 웰메이드 영화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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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권한. 권력인가. 제약인가.

 

내용에 앞서 왜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이 아닌, 소설 [재희]를 택했는가에 대해 논하고 싶다. 박상영 소설가의 연작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은 동명의 소설과 [재희]를 포함한 4개의 소설로 이루어져 있고, 영상화된 소설은 [대도시의 사랑법]이 아닌 [재희]다. 정리하자면, 소설 [재희]가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영상화된 것인데 필자는 이 지점에서 두 가지 의문점을 표하고 싶다.


첫째, 왜 소설 [재희]는 본연 그대로의 제목도, 새로운 제목도 아닌, 연작소설집이자 다른 작품의 제목인 [대도시의 사랑법]의 탈을 썼는가.

둘째, 왜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은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이 되지 못했는가.


관람에 앞서 피어난 이 두 가지 물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내놓기 위해 많은 가능성을 떠올려봤지만, 원작자와 제작진. 아무와도 관계가 없는 나로서는 어떤 추론을 내놓아도 억측이자 궤변일 것이다.


다만, 나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창작자 고유의 의지로 이루어졌는지, 아니면 여러 행동 주체들에 의한 이익 산출 여부를 통해 집행된 것인지에 대한 숙고는 분명히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재희]와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현대인의 관심을 끌기에 적합한 소재들의 집합체라 볼 수 있다. 정상 가족의 탈피, 그중에서도 퀴어 동거인을 다뤘다는 점에서 소설집에 수록된 다른 소설들에 비해 판타지성이 짙고, 그 장점으로 독자와 관객들의 무의식적 욕망의 충족이 이뤄졌다.

 

나는 이러한 원작의 장점이 제작진들에게 어떻게 비쳤는지 궁금하다.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논의해 나갈 중요한 시사점으로 보았는지. 혹은 많은 관객을 모을 수 있는, 매력 넘치는 설정으로 보았는지. 위 사유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었다면, 어떤 이유에 가중치를 두고 연출하였는지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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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질문, 원작과의 비교


 

먼저, 영화는 원작과 비교하여 미디어 형식과 시점이 모두 바뀌었다. 소설에서 영화로. 그리고 1인칭에서 3인칭 시점으로. 원작은 화자인 흥수가 재희를 묘사하며 서사가 전개되었기에 상대적으로 재희의 캐릭터성이 두드러졌지만, 영화는 화자의 역할에 한정되었던 흥수가 구체적인 형상으로 재구성되었기에 두 인물 모두에게서 입체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영상화를 통해 새롭게 형성된, 흥수라는 인물. 그런 만큼 연기의 난이도가 꽤 높았을 것이라 추측된다. 그런데 흥수 역을 맡은 배우 노상현은 이를 어렵지 않게 해냈다. 재현만큼은 초월적으로 이뤄냈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는 머리가 잡생각과 눈치로 가득 찬 흥수를 몸과 얼굴에 한가득 담았다.


김고은 배우는 말이 필요한가. 소설을 읽을 때부터 김고은을 머릿속으로 떠올렸고, 그 느낌 그대로의 재희를 정직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재현된 재희가 예상치 못한 효과를 야기했다. 재희와 비교되어 영화에서 구체화 된 흥수의 매력이 원작보다 크게 느껴진 것인데. 주로 휘둘리는 역할이었던 흥수가 영화판에서는 능동적으로 사건에 맞부딪히는, 성장하는 인물로 변모하며 관객들에게 흥수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점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것이다. 러닝타임 안에 인물의 성장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클리셰가 사용되었고 담백한 원작의 맛이 흐릿해졌다고 평할 수도 있을 테니까. 앞서 설명했듯이 이는 보는 이의 주관마다 다를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보았는가. 흥수 그리고 재희 이들을 포함한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의 세상을 납득할 지는 오로지 당신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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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웬만하면 안 하려 했는데 이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사실, 필자는 [재희]보다 박상영 작가의 다른 장편소설인 [1차원이 되고 싶어]를 더 재밌게 읽었다. [1차원이 되고 싶어]와 [재희]에서는 ‘비밀을 터놓을 수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해를 입지 않는다.’라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된 이성 친구가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두 작품 모두 남성 퀴어가 주인공이며 이들은 자신과 가까워진 이성 친구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한다. 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러한 계층끼리 결합하게 되는 욕망의 원천은 ‘해를 입고 싶지 않다.’ 즉, ‘불안한 상태에 놓이고 싶지 않다.’라는 인간의 근원적 본능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필자는 왜 안정을 기반으로 한 관계를 보고 판타지라 칭하는가. 전통 가족만을 가족의 형태로 인정하는 꽉 막힌 사람이라 그런 것일까. 오히려 반대다. 필자 역시 내게 해를 가하지 않고 그저 옆에 있어 주기만 할 존재를 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재희]와 [1차원이 되고 싶어]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은 것 아닌가.


핵심은 두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재희와 무늬 같은 존재가 우리 주변에 그리고 내 주변에 쉬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희망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이것이 판타지의 정의라면 위 작품들의 재희와 무늬는, 그리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재희와 무늬에게 흥수(영이)와 ‘나’는 충분히 판타지스러운 친구가 된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도 이 점을 잘 캐치 해냈다. 오히려 한 술 더 떴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영화니까 제대로 판타지 세상을 꾸려보자는 접근. 현실에서 그러한 존재를 만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고 영화가 해낼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한 것이 주요했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 재희, 혹은 흥수와 일상을 보낸다고 착각할 정도의 연출도 존재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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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세상엔 관심 가져야 할 것들이 많지만, 요즈음엔 내 앞에 겹겹이 쌓인 벽들이 시야를 막는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대도시의 사랑법]의 개봉 소식은 가슴 안에 파묻혀 식을대로 식어든 심지에 불씨를 지피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았지만, 소설 [재희]가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이라는 형태로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이 내게는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앞으로도 올라올 관련 오피니언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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