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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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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연극 <돔박아시, 고이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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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말로는 헤아릴 수 없는 슬픔과 아픔, 이야기가 존재한다.

 

쓰러진 동상 앞에서 말없이 구슬프게 노래만 읊조리는 60대 제주 해녀, 고이래도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깊은 아픔을 지니고 있다. 가슴 속에 묻어둔 슬프고도 고통스러운 이야기,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그런 이야기가 공연 <돔박아시, 고이래>에 담겨 있다.

 

프로덕션 IDA의 근현대사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인 이 공연은 제주 4.3 사건을 다룬다. 2025년 11월 제주 BelN극장에서 초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후, 4월 3일 제주 4.3 사건을 상징하는 날에 맞춰 서울 무대에서 막이 올랐다. 나는 막이 오른 지 이틀 뒤 공연을 보러 향했다.


<돔박아시, 고이래>는 2003년을 현재로 두고, 1948년 제주에서 벌어진 일을 과거로 오가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과거’라고 말하지만, 공연을 보고 난 뒤에는 그 일이 과거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민에게는 여전히 현재로 남아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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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어두운 공간, 중앙에 놓인 동상이 쿵 하고 무너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 동상을 무너뜨린 인물은 60대 제주 해녀 고이래. 하지만 그의 작고 힘없는 모습은 이 일을 혼자 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이어지는 취조실 장면에서는 ‘동백 아가씨’를 부르는 그의 구슬픈 노래만이 들려왔다.

 

동상이 무너진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강선웅은 계속 묻는다. 왜 동상을 무너뜨렸는지, 어떻게 그런 일을 했는지.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대답이 아닌 노래뿐이다.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선웅을 찾아온 사람은 이래와 어릴 때부터 남매처럼 지내온 송인우다. 그러나 인우 역시 진실을 쉽게 꺼내지 못한 채 사건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란다. 결국 선웅은 직접 사람들을 만나며 이래의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

 

다른 해녀들은 말한다. 이래는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힘겹게 살아온 사람이라고.

 

과연 고이래는 왜 동상을 무너뜨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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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이 질문을 중심으로 현재의 사건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1948년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어두운 공간 속에서 이래가 홀로 무너진 동상을 돌린다. 마치 시곗바늘이 돌아가듯 이야기는 과거로 되돌아간다.

 

과거 속 이래의 부모, 윤상진과 고운정은 서로를 깊이 사랑하며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태어난 이래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했다. 혼자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이래에게도 분명 사랑하는 부모가 있었고 자신을 지켜주려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1948년 제주, 채진광이 이끄는 군인들에 의해 무고한 제주 도민들이 학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평범했던 일상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이래의 가족 역시 그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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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에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선택을 해야 했다.

 

이래의 아버지 윤상진은 군인이었지만 무고한 도민을 향해 총을 겨눌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상관인 채진광을 직접 쏘게 되고 그 선택으로 인해 사형을 선고받는다.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도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던 그의 모습은 이후 이래의 모습과도 닮았다.

 

송인우의 어머니 부춘옥은 자신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결국 이래와 이래의 어머니 고운정이 숨어 있던 동굴의 위치를 군인에게 알리게 된다. 그 선택은 생존을 위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평생 지워지지 않는 죄책감으로 남는다. 이후 그는 이래를 자신의 아이처럼 키우며 살아가지만, 그 시간은 돌봄이 아닌 속죄에 가까운 삶으로 이어진다.

 

형사 강선웅의 아버지는 제주도민이면서도 군인으로서 명령을 따르며 같은 도민들을 학살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죄로 받아들이기보다 그 시대의 군인이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자신을 합리화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외면된 죄의 무게는 사라지지 않고 결국 아들인 강선웅에게로 이어진다. 선웅은 사건을 조사하며 자신이 알지 못했던 과거와 마주하게 되고 아버지가 외면했던 시간까지 함께 짊어지게 된다.

 

이야기는 그날의 선택들이 어떻게 남아 서로의 삶을 관통하고 다음 세대로까지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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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현재, 재판의 날.

 

고이래는 법정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부모가 남긴 편지와 기억을 통해, 진짜 죄가 무엇인지 말하기 시작한다. 그가 무너뜨린 동상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무고한 학살을 저질렀음에도 ‘호국영웅’으로 추앙받던 채진광의 추모비였다.

 

이래는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선택을 또렷하게 말해 나가는 그의 모습은 죽음을 앞두고도 신념을 지켰던 아버지와 닮았었다.

 

공연을 보며 여러 번 울음을 참지 못했다.

 

특히 이래가 재판장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꺼내는 순간, 그 모습이 아버지와 겹쳐 보이면서 더 크게 다가왔다. 피해자들은 평생을 죄책감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데 가해자는 영웅으로 남고 그 후손들까지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현실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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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가 실제 제주 4.3을 겪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그 무게는 더욱 크게 느껴졌다.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끝나지 않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의 또 다른 인상적인 부분은 배우들이 직접 사용하는 제주 방언과 해녀의 노래였다. 낯설게 들리는 말투와 노래는 그 시대와 공간을 더 생생하게 느끼게 했고, 이야기의 감정을 더욱 깊이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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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박아시, 고이래>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재현하는 공연이 아니다. 잊혀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다시 꺼내고 그 시간을 지금으로 이어오게 만드는 작품이다. 또한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그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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