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의 휴관일인 월요일의 저녁 7시. 전날까지 장소를 메우던 관람객들이 떠나자, 활기를 잃고 어둠과 침묵 속에 묻힌 미술관이 보였다. 그러나 휴관일인 미술관을 굳이 찾은 이유가 있었다.
쥐 죽은 듯 잠잠해 보이던 외관과 달리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면, 때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시간이 되자 등장한 인부들의 헤드라이트가 미술관 곳곳의 어둠을 몰아낸다. 정확히는 인부 역할을 맡은 퍼포머들이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이베타 강선영의 신작 퍼포먼스 <자유낙하무리>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2층의 퍼포머들은 고소작업대에 올라 3층의 퍼포머들로부터 밧줄을 넘겨받는다. 밧줄을 이용해 건물의 기둥에 매듭을 묶고 풀기를 반복한다.
“삐빅”, “쓱삭”
퍼포머들은 기계의 언어를 뱉으며 노동을 수행한다. 매듭을 묶고 푸는 행위는 끝없이 반복되지만, 아무것도 완성되지 않는다.
작업이 중반을 넘어가자 빛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깜박이는 빛은 시야를 방해하고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불편함을 느끼며 점멸등의 출처를 찾던 중, 바닥에 쓰러져 있는 퍼포머를 발견했다. 한두 명의 퍼포머가 노동에서 이탈했음에도 매듭을 묶고 푸는 작업은 아무런 차질 없이 계속되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노동은 계속되고 있었기에, 노동자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느라 '누가' 하고 있는지는 보지 못한 탓이다. 그 순간 점멸등은 인간의 소외와 죽음이 은폐되는 현실 속에서 존재를 알리기 위해 깜박이는 비상등처럼 보였다.
한편, 한 퍼포머가 빈틈이 생긴 노동력을 메꾸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닌다. 그가 내 옆을 지나갈 때마다 거친 숨이 귀를 스쳤다. 통이 큰 나일론 바지가 맞부딪히며 마찰음을 냈다.


퍼포먼스가 무사히 마무리되며 고소작업대가 화물용 승강기 안으로 들어간다. 열을 내며 움직이던 몸들은 온 데 간 데 없고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흔적 없이 사라진다. 매듭은 풀렸고, 빛은 꺼졌으며, 퍼포머들은 미술관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생산성으로 노동을 평가하는 사회에서 아무것도 남기지않는 이들의 노동은 과연 무엇을 만들어 낸 것일까. 눈에 보이는 결과물은 없지만, 노동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감각을 흔들어 놓았다면 그것 또한 하나의 가치가 아닐까.


휴관일의 미술관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진 노동은 다시 일상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도시가 아무 일 없이 굴러가는 동안에도 수많은 노동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반복된다.
우리는 평소 얼마나 많은 노동을 '무엇이 이루어졌는가'만으로 평가하며, 그 일을 해낸 '누구'는 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