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1. 밤


 

잘 잤어요, 솔지님?

 

솔지님에게 보내는 첫 인사가 ‘안녕하세요’라는 말보다 더 애틋하게 들렸으면 좋겠어서, 잘 잤냐고 물어보고 싶었어요.


걱정과 두려움은 잠을 먹어 치우면서 무럭무럭 자라니까요. 새로운 길모퉁이 앞에서 아직도 작은 심장이 콩닥콩닥하고 계신지, 눈물이 그렁하던 두 눈에는 물기가 여전한지, 잔뜩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혹시 결리지는 않았는지, 좀 괜찮은지 궁금해요.


게다가 《밤》에는 유독 더 생각이 많아지잖아요. 저만 그런가요? 소란스럽고 야단스러웠던 하루가 저물고, 한숨을 돌리면서 자려고 눕기만 하면 미뤄둔 걱정거리들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한참을 뒤척거리다가 퉁명스러운 졸음이라도 찾아오면 조금 다행이에요. 그렇게 잠들고 다음 날 아침, 머리맡에는 꿈속에서 찢겨 나온 단어 몇 개가 볼품없이 떨어져 있습니다. 한숨 같은 단어를 주워 담아 어쩔 수 없이 삼킵니다. 그리고 다시 하루를 시작하지요.


그런데 밤이 끝나야 하루가 시작된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솔지님?

 

아니, 밤이 끝나면 반드시 하루가 시작된다는 것을요.

 

 

 

2. 긴 밤


 

저에 대해서도 조금은 소개를 드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답니다. 제 이름은 은지예요. 은혜를 지혜로 갚으라는 의미를 담아서, 돌아가신 아빠가 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정말로 은혜를 지혜롭게 갚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빠가 살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생각해요.


아빠가 돌아가시고 저의 《밤》이 길었습니다. 밤인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볕이 들고 나니 원래가 밤이었다는 것을 알았지 뭐예요.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 줄도 모르고 살다가, 가져보니 원래 나에게 그것이 없었구나 하는 그런 거죠.


하지만 제가 밤인 줄도 모르고 천진하게 자랐던 것은,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었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제가 다치지 않도록, 아프지 않도록, 잘 자고 잘 먹도록 모든 것을 내주었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엄마는 처음에는 모든 것이 두려웠대요.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자기도 훌쩍 떠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자기 앞에 놓인 “검은 점이 박힌 알”을 쳐다보다가, 이 알에서 깨고 나온 펭귄을 바다에 데려다주고 나서 세상을 떠나자고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1년씩, 1년씩 살았어요. 우리는 봄에는 쑥을 뜯어다 쑥개떡을 해 먹는 것을 좋아했고, 여름에 태어난 사람답게 모든 여름 과일을 사랑했어요. 가을에는 단풍잎을 보면서 킥킥거리며 울기도 했고, 겨울에는 아빠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긴 밤이 끝난 거예요.


네, 맞아요. 여름에, 밤에 태어났지만 무사히 알에서 깨어난 저는 모험심이 많은 펭귄으로 잘 자랐고, 더 큰 바다로 헤엄쳐 가고 있습니다. 엄마는 코뿔소처럼 자기의 지평선에 남았고요. (걱정은 마세요! 튼튼한 코뿔소랍니다.)

 

 

 

3. 긴긴밤


 

인생에 《긴긴밤》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어젯밤이 편안했냐고 묻는 서로가 있다면 오늘 밤은 조금 더 괜찮아질 것을 압니다. 그리고 긴 밤을 살아내면서도 끈질기게 사랑을 주고받는 존재가 있다면 긴 밤도 너무 두렵지는 않을 거예요.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아봐요, 우리.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요.


누군가의 특별한 기념일을 조용하게 사랑하고, 누군가의 불안을 애틋하게 다룰 수 있는 솔지님.

 

저는 솔지님을 만나면 틀림없이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

 

그때 우리 인사해요.

 

 

131.jpg


 

 

오은지 에디터 태그.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