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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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주인공이 센이었는지, 치히로였는지 가물가물할 만큼 오래전에 봤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연극으로 보고 왔다. 스토리보다는 무한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던 애니메이션의 연출이 시공간의 제약 속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했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담쟁이덩굴이 빽빽한 전면 무대 장식을 비추던 하이라이트가 꺼지고 관객석 속에서 배낭을 맨 치히로가 걸어 나오는 연출부터 신선했다. 평범하지 않은 등장으로 순식간에 몰입이 됐다. 내내 손에 땀을 쥐면서 치히로를 응원했고, 엔딩 즈음에 "절대로 뒤돌아보지 마"라는 단단한 하쿠의 당부가 퇴사를 앞두고 갈팡질팡, 불안해하던 나에게 하는 말 같아서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 공연장을 나왔다.


그런데, 사실은 연극을 보는 내내 거슬리는 것들이 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아 저거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쓰읍"라는 탄식이 저절로 나오는 장면들.


아름다운 표현과 운율을 위해서 문법적인 오류를 허용하는 시적 허용(poetic license)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득바득 규범에 맞게 오류를 수정하는 것은 좀 꽉 막힌 사람처럼 보인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 같달까.


그렇다. 나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다.


 

 

1. 유바바의 계약서 : 법적 관점에서 치히로가 체결한 근로계약의 불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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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치히로가 유바바와 '근로계약'을 맺던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하쿠는 치히로에게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일자리를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하지 않는 인간은 짐승이 되어버리는 것이 이 세계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부라야(油屋)라는 거대한 온천장에 들어서게 된 치히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에 있는 유바바의 방으로 찾아간다. 유바바는 일을 시켜달라고 외치는 치히로를 위협하고 쫓아내려 하지만, 치히로가 "일하게 해주세요"라는 말을 포기하지 않고 반복하자 백지에 가까운 계약서를 내민다.
 

 

문제가 있다. 근로기준법 제64조에 의해 치히로는 유바바와 근로계약을 맺을 수 없다.

 

근로기준법 제64조에 의하면 "15세 미만인 사람은 근로자로 사용하지 못"하고,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35조는 "13세 이상 15세 미만인 자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급한 취직인허증을 지녀야 한다."고 규정한다.


즉, 극 중 치히로는 10살, 초등학교 4학년이므로 어떤 경우에도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금지된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유바바가 운영하는 아부라야는 단순한 목욕탕이 아니라는 점이다. 치히로가 오시라사마와 함께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다가 각 층을 지나칠 때, 남녀가 함께 술을 마시거나 뒤엉켜 있는 모습 같은 것들이 스쳐 지나가는데 유흥업소나 환락가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오시라사마가 사려 깊게 승강기 레버를 올려서 얼른 위층으로 올라가는 데에서도 그곳이 어린아이인 치히로에게 유해한 환경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도 아부라야가 단순한 목욕탕이 아니라 일본의 유곽(遊廓) 문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즉 아부라야는 표면적으로는 신령들을 위한 목욕 시설이지만, 그 안에는 유흥, 접대, 환락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담겨 있는 공간인 것이다.


청소년 보호법 제29조 제1항에 의하면 청소년 유해업소의 업주는 청소년을 고용하여서는 안 된다. 청소년 유해업소의 업주가 종업원을 고용하려면 미리 나이를 확인하여야 한다. 그리고 청소년 보호법 시행령 제6조 제1항 제1호는 '숙박업'을 청소년 고용 금지 업소로 규정하고 있다.


유바바는 근로기준법 제110조에 의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 청소년 보호법 제58조에 의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징역은 최대 4년 6개월까지, 벌금은 5,000만 원 이하의 범위 내에서 법관이 피고인의 반성 여부, 피해 정도 등을 고려하여 범위 내에서 형을 정하지만, 유바바는 아마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괘씸죄까지 땅땅!


그 외에도 치히로는 밤낮이 불분명한 세계에서 장시간, 야간 근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임금도 전혀 지급받지 못하고 사실상 임금 대신 인신구속으로 통제당하고 있으므로, 법정 근로시간 초과의 문제, 최저임금 위반 등 거의 모든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설정은 판타지 세계관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치히로가 도달한 세계는 법이 미치지 못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근로기준법과 노동청, 법원이라는 보호 장치가 없는 세계 속에서 치히로를 '보호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2. 가마할아범의 기차표 : 세상에 숨겨진 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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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유바바는 마법으로 직원들의 이름을 빼앗아 정체성을 통제하고, 계약서로 그들을 속박하며, 끊임없는 감시와 처벌로 조직을 운영한다. 모든 문제에 직접 개입하려고 하기 때문에, 직원들은 문제가 생기면 유바바에게 의존한다. 유바바를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유바바가 없으면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손님(가오나시)에게 사적으로 금품을 수수하고, 가오나시의 비정상적인 요구가 늘어나고 심지어 동료가 먹혔는데도 성과를 위해서 맹목적으로 일하는 등 결국 도덕적 해이에 빠지는 직원들의 모습은 섬뜩하다.


가마할아범은 유바바와 전혀 다르다. 할아범은 자신의 육체를 부단히 움직이면서 모두가 마다하는 고된 육체노동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여섯 개의 팔이 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수십 년간 쉴 새 없이 약재를 빻고, 물과 불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그의 몸은 '일 그 자체'가 되었다. 즉, 할아범의 팔은 쌓아 올린 숙련된 기능과 기술, 노동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과 원칙, 자부심, 노동에 대한 헌신을 의미한다.


가치 창출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관리자로서 가마할아범의 원칙은 각자의 쓰임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는 자율과 책임을 통해 스스로 성장을 이뤄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검댕 요정들이 실수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치히로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다. 또 린을 비롯한 직원들이 쉽게 가마할아범을 찾고, 편하게 소통하는 것을 보아 다른 직원들 또한 가마할아범을 신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마할아범은 가장 낮은 곳에, 유바바는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것도 은유적이다.


 

치히로가 처음 일자리를 구하러 보일러실에 찾아왔을 때, 가마지는 퉁명스럽게 거절한다. 그러나 치히로가 물러서지 않고 스스와타리(검댕요정)의 석탄 나르는 일을 거들려는 모습을 보이자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마침 식사를 가져온 린에게 도롱뇽 구이를 쥐여 주면서까지 치히로를 자신의 손녀라고 둘러대며 유바바에게 올려보내 준다.


그날 밤 부모님이 돼지로 변한 것을 직접 확인하고 돌아온 치히로가 보일러실 한켠에서 넋을 잃고 웅크려 잠들자, 가마지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방석을 덮어 준다.


이후 제니바의 저주를 받아 만신창이가 된 하쿠가 치히로와 함께 통풍구로 굴러떨어지자, 가마지는 하쿠를 직접 간호하며 돌봐 준다. 그리고 치히로가 하쿠를 살리기 위해 직접 제니바를 찾아가겠다고 결심하자, 가마지는 40년간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편도 기차표를 건네준다. 여섯 번째 늪의 바닥(沼の底) 역에서 내리라고 길을 일러준다.

 

 

할아범이 내민 기차표는 치히로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단지 제니바에게 더 빨리 갈 수 있는 루트를 제공했다는 것에서 나아가서, 치히로를 염려하고 도우려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두려움이 앞서는 여정에서 든든한 안전지대가 되었을 것이다.


기차표의 정체를 상상해 보다가 꼬깃꼬깃하게 접힌 40년 전의 기차표는 아마도 할아범이 아부라야로 올 때 썼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다랐다. 40년 전의 할아범은 지금의 치히로처럼 낯선 세계로 향하는 두려움과 기대감을 품고 일을 시작했을 것이고, 그때의 자기를 마주하는 마음으로 세상에 첫발을 내딛은 젊은이에게 숨겨진 환대를 알려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아부라야에서 치히로를 '구했던' 존재는 다른 누구도 아닌 치히로 그 자신이다. 그러나 치히로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막아 주고, 성장을 돕고, 고단함을 품어 주던 가마할아범의 사랑과 관심이 없었다면 치히로는 불공정성에, 부조리에, 부당함에 무력하게 다쳐 깊은 상흔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3. 치히로의 용기와 제니바의 용서 : 어른의 관계 맺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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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제니바를 만나러 간 치히로는 그녀에게 사과하고 도움을 구한다. 문제를 해결할 힌트를 얻고 싶다는 치히로의 부탁에, 제니바는 모두 네가 해야 한다며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완곡하게 거절한다. 다만, 한 번 일어난 일은 잊혀지지 않고 기억이 나지 않을 뿐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인다.


치히로는 생각에 잠긴다. 그때 하쿠가 방문을 하고, 떠나는 치히로에게 제니바는 친구들이 뽑은 실로 만든 머리끈을 부적이라면서 건넨다. 제니바는 너라면 잘 해낼 것, 치히로는 좋은 이름이라고 따뜻하게 말해 준다. 치히로는 제니바의 품에 다정하게 안긴다.


치히로는 용으로 변한 하쿠의 등에 타고 다시 아부라야로 돌아가고, 그때 치히로는 하쿠와 과거에 이미 만났음을 기억해 내고, 하쿠의 진짜 이름 니기하야미 코하쿠누시를 말해 준다. 이름을 되찾은 하쿠는 저주에서 풀려난다. 유바바와의 마지막 시험도 통과한 치히로는 부모님과 함께 인간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

 

 

치히로와 제니바의 에피소드는, 치히로가 더 이상 보호받아야 하는 어린아이에 머물지 않고 비로소 타인과 '어른의 관계'를 맺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하쿠의 저주를 풀기 위해 기꺼이 제니바를 찾아가는 여정은, 이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안전지대를 벗어날 만큼 치히로의 내면이 단단해졌음을 의미한다.


치히로는 마법도, 권력도, 협상 카드도 없이 오직 진심과 용기만을 가지고 갔다. 하쿠가 저지른 잘못을 대신 사과하면서도, 그를 변호하거나 정당화하지 않았다. 그저 "미안합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제니바 역시 어른의 방식으로 응답한다. 제니바는 치히로가 도장을 훔친 하쿠 때문에 용서를 빌러 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화를 내거나 책망하는 대신 케이크와 차를 직접 대접한다. 도장에서 나온 벌레를 밟아 버렸다는 치히로의 천진함에 웃음을 터트린다. 그렇지만 그녀는 치히로에게 즉각적인 해결책을 주지 않는다. "모두 네가 스스로 해야 해"라는 말은 냉정해 보이지만, 사실은 치히로를 온전한 주체로 인정하는 존중의 표현이다. 친구들과 함께 짠 머리끈을 건네며 "치히로는 좋은 이름이야"라고 말해 준다. 문제는 네가 풀되, 너는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


이것이 어른의 관계 맺기 아닐까.

그것은 오직 '나'의 생존과 안전이 중요했던 세상에, '너'라는 존재를 기꺼이 들이면서 시작되는 것이다.

상대의 잘못을 지적할 수는 있지만, 그 사람 전체를 부정하지는 않는 것.

서로의 속도를 존중하며, 관계의 끈을 성급히 끊지 않고 오래도록 고쳐 묶어 보려는 것.

맛있는 것을 나누어 먹는 것, 마지막까지 있는 힘껏 다정하게 대하는 것.

나는 그런 것들이 어른이 된 이후에 비로소 배워 가는 관계 맺기의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제니바의 집에서 치히로, 가오나시, 보, 유버드가 함께 둘러앉아 실을 잣는 장면이 아름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다른 상처를 안고 그곳에 모였지만, 함께 손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마법으로 순식간에 만들 수도 있었을 머리끈을, 그들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함께 완성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만이 진짜 부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제니바는 알고 있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고, 누군가 내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는 것. 그 과정에서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상처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이어가는 것. 치히로가 제니바의 품에 안기는 장면에서 우리가 뭉클함을 느끼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서로를 온전히 인정하는 두 어른 사이의 포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른의 관계 맺기는 마법 같기는 하지만 마법이 아니다.


 


4. 현실의 센과 치히로들


 

판타지 세계의 설정에, 정색하고 달려들어서 근로기준법과 청소년 보호법 등을 운운하기는 했지만 현실 세계에는 분명히 착취당하는 센과 치히로들이 있다. 편의점, 음식점 등에서 일하는 청소년 아르바이트생들은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여 일하거나, 주휴수당 미지급의 임금 체불, 직장 내 성희롱 등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10년 전, P 제과점에서 일을 했었다. 마침 한겨울이었고, 새벽 6시 30분에 집을 나서자마자 머리칼이 쭈뼛 서는 추위에 순식간에 잠이 달아난다. 부유하듯 버스에 몸을 싣고, 가게 앞에 머리보다 높게 쌓인 파랑 박스들을 낑낑거리며 들여놨다. 끊임없이 구워져 나오는 빵을 진열하고, 진열된 빵이 한 김 식으면 포장을 했다. 출근길에 들른 사람들이 아침 끼니로 사가는 빵들을 데워 주고, 잘라 주고, 커피를 내렸다.


그렇게 한 달 뒤 월급을 확인했는데, 금액이 이상했다. 오후 늦게 출근하는 사장님을 기다렸다가 "월급이 생각보다 적은 것 같다, 주휴수당이 포함되지 않은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씀을 드렸다. 사장님은 나를 여기 앉아 보라며 테이블에 앉혔다. 그가 내뱉은 논리는 세 가지였다. 너는 수습이라서 최저임금의 80%만 받아야 하고, 당연히 주휴수당도 지급되지 않으며, 네가 그동안 먹고 가져간 빵 값이 월급 그 이상이라고.


틀렸다. 사장님은 나에게 수습 계약임을 고지하지 않았고, 우리의 근로계약이 1년 이상을 예정한 적도 없으며, 수습 기간이라고 해도 최저임금의 90%는 지급해야 한다. 최저임금은 모든 사업장,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강행 규정이므로 그는 최저임금법을 위반했다. 당시 내가 일하던 시간은 주 15시간을 넘었기 때문에 주휴수당도 지급받아야 했다. 빵값? 이건 근로기준법 제43조 임금 지급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다. 임금은 현물로 지급될 수 없고 근로자에게 처분의 자유가 있도록 통화(通貨)로 지급되어야 한다. 물론 내가 폐기되어야 하는 소시지 빵을 좀 많이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빵으로 임금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때도 이렇게 답했다면 좋았을 텐데.


알겠다고 대답했다. 네이버 지식인에서 주휴수당에 대해 찾아봤던 내용들이 스쳐 지나가기는 했지만, 너무나 당당한 태도의 사장님과 논쟁을 벌일 만큼 자신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상한 꼬투리를 잡는 아르바이트생이 된 것이 수치스러웠다. 돈 문제를 걸고넘어진 이상 서로 하하 호호 기분 좋게 일할 수 없을 것 같았고, 나는 임금 지급을 요구하는 대신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그렇다. 법전 속의 차가운 활자만으로는 현실의 치히로들을 온전히 보호할 수 없다. 주휴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제55조는 그럼에도 지급하지 않겠다는 사업주의 당당한 무지와 뻔뻔한 염치 앞에서 무력하다. 근로감독관이 모든 편의점과 식당의 부조리를 24시간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결국 남는 것은, 우리 삶에 숨겨진 '환대'의 힘을 믿는 어른들의 몫이다. 부당함에 다친 아이들에게 말없이 따뜻한 방석을 덮어 주는 것. 길을 잃은 이들에게 내가 가진 여분의 기차표를 기꺼이 쥐여 주며 "너라면 잘 해낼 것"이라고 말해 주는 것.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꽉 막힌 사람이어도 좋다. 나는 법의 엄격함을 들이밀어 부조리를 따져 묻는 동시에, 주머니 속에 꼬깃꼬깃한 기차표 하나쯤은 늘 품고 다니는 다정한 어른으로 늙어가고 싶다.


10년 전, 주휴수당 규정을 맥없이 속으로만 곱씹던 아르바이트생은 이제 노동법전과 판례를 뒤적이는 사람이 되었다.

 

다정한 마음에 엄정한 법리를 더해야지. 그리고 계속 계속 "아 저거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라고 중얼거리는 사람으로 살아야지.

 

세상의 모든 치히로들이 부디 자신의 진짜 이름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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