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장화홍련전의 둘째 딸 홍련은 삼도천을 건너지 못한 채, 바리데기 설화 속 바리공주가 있는 저승의 공간 ‘천도정’으로 끌려온다.

   

이곳에는 망자들을 인도하는 저승신 바리공주와 차사 강림이 있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동생을 해쳤다는 혐의로 재판에 서게 된 홍련은 자신이 저지른 일이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오랜 시간 견뎌온 핍박을 되돌려준 것일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한다. 그러나 홍련이 말하는 그날의 기억은 어딘가 어긋나 있고, 조금씩 서로 맞지 않는 부분들이 드러난다.

 

그녀가 숨기고 있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천도정에서는 재판이 이어진다.

 

 

2026 뮤지컬 홍련_공연사진_김이후, 이지연 외 (1)_제공 마틴 엔터테인먼트.jpg

 

 

뮤지컬 <홍련>은 ‘장화홍련전’과 ‘바리데기 설화’를 결합한 설정에서 출발한다. 두 설화 속 인물들이 모두 폭력의 피해자였다는 공통점에 더해, 홍련이 존속살해를 저질렀다는 새로운 설정을 덧붙여 이야기를 확장한다.

 

비슷한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지만, 그들이 선택한 방식은 서로 다르다.

 

홍련은 자신의 살인을 끝까지 후회하지 않는다며 고함을 지르고, 바리공주를 향해 비웃기까지 한다. 그에 맞서는 바리공주는 다른 태도로 홍련을 바라본다. 두 인물의 대립은 같은 상황에서 전혀 다른 선택을 했던 존재들의 차이를 드러낸다. 관객은 어느 한쪽의 편에 쉽게 설 수 없다. 각자의 상황과 선택이 있었고, 두 인물 모두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감정으로 서로를 마주하기 때문이다.


또한 죽어야만 한을 알아주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홍련은 생의 내내 억울하게 침묵을 강요받고 학대받은 폭력의 피해자다. 그에게 차사가 관아에 가보지 그랬냐며 묻자, 홍련은 크게 웃으며 자신 같은 사람은 한 마디를 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고 자조한다.

 

이미 비극적으로 죽어버린 인물의 자조가 어쩌면 지금의 현실과도 같아 홍련의 슬픔은 옛 설화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피해자들의 말처럼 들린다.

 

 

2026 뮤지컬 홍련_공연사진_김이후, 이지연 외 (6)_제공 마틴 엔터테인먼트.jpg

 

 

극이 후반으로 갈수록 전생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홍련의 고통은 점점 커진다. 오랜 폭력, 먼저 목숨을 잃은 언니, 그 이후 삶을 살아야 했던 자신까지 전생의 한을 끌어안고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바리공주는 그런 홍련을 보며 ‘자신과 닮았다’라고 느끼며 그녀를 해방하겠다는 책임을 다한다.

 

홍련이 끝까지 감추고 있던 진실을 털어놓고 가장 절망하는 순간, 무대 위에서는 씻김굿 장면이 이어진다. 이 장면은 시각적·청각적 밀도를 동시에 끌어올리며 극의 정서를 응축한다. 한국에서 자주 다루는 씻김굿이라는 매개를 홍련의 마지막 감정을 씻어 보내는 과정에 녹여 내린 모습이 강력한 카타르시스와 감동을 함께 준다.


극 후반에는 내내 붉게 타오르는 분노를 상징하는 붉은 빛이 아닌, 씻김을 상징하는 따뜻한 흰 빛이 내려앉는다. 폭력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방관자이기도 했던 홍련은 분노와 죄책감을 동시에 안고 있고, 바리공주 역시 그녀를 바라보며 처음의 관조적인 태도에서 연민과 슬픔을 드러난다. 그 변화의 과정은 과장된 감정이나 시혜적인 시선 없이 분주하게 켜켜이 쌓여간다.

 

강렬한 록 사운드와 동양적 이미지, 홍련과 바리의 감정의 동화와 연대 그리고 강림과 월직·일직 차사들이 만들어내는 유머까지 모든 요소가 작품의 무게를 적절히 분산시키며 극의 리듬을 만든다.

 

작품은 분명하게 지금을 살아가는 피해자들의 안위를 묻는다.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니 부디 자신을 용서하라고.

 

 

2026 뮤지컬 홍련_공연사진_김이후, 이지연 외 (7)_제공 마틴 엔터테인먼트.jpg

 

 

뮤지컬 <홍련>은 2022년 CJ문화재단의 ‘스테이지업’ 최종지원작으로 선정된 뒤 개발 과정을 거쳐 2024년 초연됐다. 한국 전통 설화를 바탕으로 한 서사와 록 사운드, 그리고 씻김굿의 정서가 결합한 <홍련>은 초연 당시 ‘한국형 록 뮤지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제9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8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최종적으로 작품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이 독보적인 매력으로 초연 당시 진행된 국내 6개 도시 투어에 이어 중국 상하이와 광저우 공연까지 이어지며 해외 관객과도 만난 바가 있다.


이런 호평의 배경에는 작품을 둘러싼 세심한 설계가 있다. 차사 의상을 입고 티켓 검수를 진행하는 하우스 어셔부터, 마지막까지 감정을 밀어 올리는 배우들의 연기까지 공연 전반에 걸쳐 세계관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설화를 이용한 창의적인 서사 설계뿐 아니라 수많은 연구와 애정이 깃든 뮤지컬 <홍련>은 오는 5월 17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된다.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진 천도정의 세계로 얼른 빠져보길 바란다.

 

 

 

노현정.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