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글프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내가 좋아하던 공간의 변화 [공간]

글 입력 2024.05.1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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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오고부터 태블릿PC를 쓰면서 자연스레 필기도구를 사용하는 일이 확 줄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문구점에 가는 날도 줄어들었는데, 최근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면서 필기도구가 필요해져 오랜만에 문구점으로 향했다.


검색을 해보니 집 근처에는 문구점이 없었고, 그나마 가까운 거리에 있는 문구점들은 죄다 무인 문구점이었다. 아트박스와 같은 대형 문구점도 있었지만, 거리가 꽤 있어 그나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무인 문구점에 가기로 정했다.


문구점에 가는 길에 문득 내가 학창 시절 문구점에 가는 걸 아주 좋아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특히 스티커와 볼펜에 관심이 많았는데, 종종 필요하지 않음에도 충동 구매한 적도 있다. 덕분에 내 필통은 날이 갈수록 뚱뚱해졌다. 그 뚱뚱했던 필통은 아직도 다이어트를 하지 못했다. 아직도 다 못 쓸 만큼 많이 샀었다는 뜻이겠지. 왜 그렇게 문구류에 욕심을 부렸을까.


이렇게 과거 문구류에 욕심이 많았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괜히 오랜만에 구경하게 될 문구점이 기대되었다. 요즘은 어떤 물건이 있을까? 예전에 있던 물건도 있을까? 등 설렘을 안고 문구점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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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나는 문구점에 들어서자마자 실망했다. 내가 마주한 문구점은 내가 기억하는 문구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인 문구점이라고 할 때부터 기대하면 안 됐던 건데, 나는 왜 예상하지 못했을까.


생각보다 차가웠다고 해야 할까. 내가 기억하는 문구점은 좀 더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었다면, 내가 들린 문구점은 사람이 아닌 키오스크가 나를 맞이했기에 느껴질 정도 없었고 너무 적막했다. 노란 배경으로 활기찬 실내 공간과 대비되는 그 안의 분위기가 낯설게 느껴졌다.


낯설게 느껴지는 분위기에 필요한 물건만 사고 나오려다가 그래도 이왕 온 김에 구경은 하고 가자라는 생각이 들어 문구점 안을 찬찬히 쭉 둘러보았다.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들도 많았지만, 어릴 적 갖고 놀던 장난감과 비슷한 장난감들과 익숙한 불량식품도 꽤 있었다.

 

그렇게 문구점 안을 둘러보니 낯설게 느껴졌던 분위기가 조금 익숙해졌다. 익숙한 물건과 불량식품을 발견하면 너무 반가웠고 잠시 추억 여행도 했다. 물론 슬프게도 가격은 익숙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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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점에 처음 들어섰을 때 느꼈던 실망감은 익숙한 물건들을 발견하며 조금 사그라들었지만, 공허한 마음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 공허한 마음의 원인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가 어릴 적 문구점을 좋아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문구점이라는 공간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정겨운 분위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이 아닌 기계가 맞이하여 적막하고 정겨움이 사라진 무인 문구점이 공허하게 느껴진 것이다.


오래 한 자리에 머물러 있던 탓인지 조금 허름한 간판과 어지럽게 보이면서도 나름 정돈된 다양한 문구류와 장난감. 학창 시절 학교 앞에 있던 문구점들은 일부러 다 같이 짜기라도 한 듯 외형이 비슷했다.


더불어 내가 만났던 문구점 주인아주머니는 항상 아이들을 딸, 아들처럼 대하셨고 그 덕분인지 나와 친구들 모두 주인아주머니가 이모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놀이터 못지않게 자주 들락날락했고, 언제나 끊이지 않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주인아주머니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활기찼던 문구점의 분위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피카츄 돈가스, 떡볶이, 슬러시 등 문구점에서 팔던 음식은 웬만한 맛집 못지않았다.


그러나 그 정겹고 활기찼던 문구점은 요즘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점차 학교 앞에 있던 문구점들이 사라지고, 주변엔 무인 문구점과 대형 문구점만 남았다.


무인 문구점에서 필기도구와 약간의 불량식품을 사고 나오면서 내 기억 속 따뜻했던 문구점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사실이 와닿으면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최근 무인 가게 창업이 늘어나고 있다.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키오스크와 CCTV로 운영하는 무인 가게는 길을 가다 보면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일상이 되었다. 편하게 물건만 구매하고 나올 수 있고 24시간 운영하기에 나도 편하게 자주 이용하고 있다. 그렇기에 뭔가 무인 문구점에 대해서만 씁쓸해하는 나 자신이 괜히 모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무인 문구점에 대해서만 씁쓸해하는 이유를 과거 문구점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특유의 정겹고 따뜻한 분위기가 그리워서라고 한다면 모순을 정당화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모든 것이 변하진 않았다. 여전히 똑같은 모습도 남아 있었다. 바로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이다. 내가 한창 문구점 안을 구경하고 있을 때 아이들이 몰려 들어왔고, 아이들의 순수하고도 엉뚱한 대화를 들으며 미소가 지어졌다.


물론 아직도 굳건히 학교 앞에 남아 있는 포근한 분위기의 문구점들도 존재한다. 특히 내가 다닌 초등학교 앞에 있던 문구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작년쯤 우연히 그 문구점에 들린 적이 있는데, 거의 10년 만에 만난 주인아주머니가 나를 알아보셨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나를 정확히 기억하고 계시는 아주머니가 신기했고 뭉클하기도 했다. 그날은 종일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에 의한 당연한 변화를 무시할 순 없다. 세상은 계속해서 변해가고 있다. 그리고 변화해야만 한다.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기는 어려우니까.


하지만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과 별개로 내가 너무나도 좋아했던 문구점의 몽글몽글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있는 현상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그래도 앞서 말했듯 여전히 내가 그리워하는 과거를 간직한 문구점들은 남아 있다. 그저 나는 변화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면서 아직 변하지 않은 그 문구점들이 좀 더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어 주길 바랄 뿐이다.


시간이 날 때 한번 다시 내 과거를 간직하고 있는 그 문구점에 들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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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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