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극장 밖에서 펼쳐지는 환상 속으로 - WONDERLAND PICNIC 2024 [공연]

글 입력 2024.05.2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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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문화초대 사진자료 1 포스터.jpg

 

 

지난 5월 11일과 12일, 푸릇푸릇한 봄을 맞아 노들섬 잔디마당에서 'WONDERLAND PICNIC 2024'(이하 원더랜드 피크닉)가 진행되었다. 이번 '원더랜드 피크닉'은 뮤지컬 배우들의 특별한 콜라보레이션 무대를 풍성한 밴드 라이브와 함께, 야외에서 자유로운 분위기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뮤지컬 애호가들에게 그야말로 '환상'의 페스티벌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평소에는 대학로 소극장 공연들을 주로 보는 나로서, 대학로를 표현하는 말 중에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다. 평일 저녁 8시, 그리고 주말 2시와 6시가 되면 대학로 극장 거리를 따라 수십 가지의 세계가 시작되고 또 저마다의 엔딩을 마주한다는 말이다.


‘원더랜드 피크닉’에서는 다양한 배우들이 한곳에 모이는 만큼, 그 수많은 세계를 - 파편적으로나마 - 한 자리에서 지켜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몰려왔다. 더군다나 장소도 노들섬이라니! 햇빛 좋았던 어느 가을날의 노들섬 소풍이 참 좋았던 기억이 있었기에 설레는 마음이 배가 되었고, 하루빨리 피크닉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2024년 5월 문화초대 사진자료 3.jpg

 

 

정말 아쉽게도 토요일에는 비가 온다는 날씨 예보가 뜨고야 말았다. 야외에서 진행하는 페스티벌인 만큼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어 날이 좋기를 바랐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거니 생각하며 입장했다. 물론 그럼에도 기대감에 부푼 마음과 함께였다. 이날 우천 소식에 원더랜드 측에서는 기존에 기획했던 피크닉 존을 절반으로 줄이고 의자를 배치하여 관람 방식을 조정해 주었다.


흐려지는 하늘에도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아 이대로만 있어도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지만, 거짓말처럼 첫 팀의 음악이 시작함과 동시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내 굵은 빗줄기에 당황했을 법도 한데 완벽한 무대를 보여주면서도 틈틈이 분위기를 띄우려고 애쓰는 배우들의 노력도 돋보였다.


첫날 기억에 남는 무대를 꼽으라고 한다면, 내가 참 좋아했던 극 <레드북>의 두 안나들이 꾸민 2부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민경아 배우는 뮤지컬 <드라큘라>의 'If I Had Wings', 뮤지컬 <시라노>의 '마침내 사랑이',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의 'Requiem', 그리고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의 'A Summer in Ohio' 등의 넘버를 선보였다. '마침내 사랑이'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넘버이고, 'Requiem'은 딱 2주 전 <디어 에반 핸슨>을 관람하러 가서 듣고 왔기에 더욱 반가웠다.


박진주 배우는 특유의 깜찍함이 돋보이는 배우답게, 뮤지컬 <영웅>의 '이것이 첫사랑일까', 뮤지컬 <맘마미아>의 'Thank You for the Music' 등의 통통 튀는 넘버들로 솔로 세트리스트를 구성했다.


배우가 직접 참여하지 않은 작품임에도 그의 목소리로 넘버를 들어볼 수 있는 건, 배우들 역시 본인이 자유롭게 세트리스트를 구성할 수 있는 페스티벌 '원더랜드 피크닉'이 가지는 매력이었다. 한편 민경아 배우가 올해 참여했던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의 넘버를 부를 때는 차원이 다른 몰입감을 보여주었다.


듀엣 넘버도 여럿 들려주었지만, 마지막 넘버로 선보였던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은 말 그대로 피날레에 어울리는 곡이었다. 이는 둘이 '안나'로 함께 참여한 뮤지컬 <레드북>의 핵심 메시지가 담긴 넘버로, 기존의 안나 솔로 넘버를 듀엣으로 편곡하여 무대를 함께 채웠다. 그 누가 나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신념과 목표를 지키며 스스로를 이야기하겠다 외치는 안나의 넘버. 두 명의 안나가 서로를 바라보며 다짐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왠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중간중간 등퇴장 시 두 배우가 보여주었던 케미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민경아와 박진주는 평소 둘의 친분으로도 유명한데, 만담에 가까운 둘의 즐거운 대화에 객석 곳곳에서는 빗소리보다 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덕분에 축축한 옷을 입고도 즐겁게 무대를 관람할 수 있었다.

 

 

2024년 5월 문화초대 사진자료 4.jpg

 

 

입에 감기약을 털어 넣고 자고 일어난 다음 날, 감기몸살이 올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몸 상태는 나쁘지 않았고 하늘은 말 그대로 쨍쨍했다! 덕분에 '원더랜드 피크닉'의 일요일 회차는 전석 피크닉 석으로 진행되었고, 돗자리를 펴고 앉아 동행인이 싸 온 도시락을 먹으며 말 그대로 "소풍다운 소풍" 모드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재미있게도 전날의 배우들은 날씨를 알기라도 했던 것처럼 비 오는 날 듣기 좋을 법한 넘버를 많이 가져왔었는데, 둘째 날의 배우들은 전날과 달리 맑은 날과 어울리는 산뜻하고 따스한 노래들로 세트리스트를 구성해 왔다. 날씨와 어울려서였을까, 이날 보았던 무대 중에서는 2부 정욱진 배우가 불렀던 두 곡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지난 2월 막을 내린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 '앨빈' 역으로 참여했던 그는 이날 '톰'의 넘버 '나비'를 선보였다. 사실 전날 정원영 배우 역시 이 노래를 불렀는데, 해당 공연을 보지 못했던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곡의 아름다운 가사에 매료되어 집에 오는 길 내내 이 넘버를 돌려 들었던지라 다시 들어 참 반가운 선곡이었다.


 

너는 강한 나비야 나의 힘이야

네가 춤 출 때 난 하늘 위로 날 수 있단다

네 몸으로 공기 흔들며 그 춤을 출 때면

네 날개짓에 이 세상이 변해


나비는 팔을 펴서 나무 위의 가지를 떠나

날아 올라서 바다를 봤죠

 


푸른 잔디로 덮인 노들섬에서 듣기에 참 좋은 가사이지 않은가!


이날 들을 수 있어서 좋았던 두 번째 넘버는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에 나오는 동명의 곡, ‘여신님이 보고 계셔’였다. 반주를 듣자마자 알아채고 어? 하고 소리쳤을 만큼 내가 뮤지컬을 사랑하게 만들어준 작품이고 그만큼 반가웠다.

 

 

봄을 깨우는 따사로운 햇살처럼

마른 들판에 내려오는 빗물처럼

미움도 분노도 괴로움도

그녀 숨결에 녹아서 사라질 거야

 


악몽을 꾼 소년에게 따스하게 위로를 건네는 이 노래를, 진짜 햇살 아래에서 산들바람을 맞으며 듣고 있자니 마음이 왠지 감동으로 벅차올랐다.

 

*

 

보통의 공연장에서는 혼자만의 관극이 이루어진다. 가족이나 친구, 누구와 함께 가더라도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은 무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오롯이 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 덕분에 극이 끝나고 난 뒤에야, 각자 참아둔 말을 쏟아내며 마로니에 공원을 걷는 건 내가 참 좋아하는 관극 루틴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원더랜드 피크닉에서는 이야기를 참을 필요가 없었다.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함께 온 친구와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무대를 볼 수 있었던 건 뮤지컬을 즐기는 아주 새로운 방식이었다.


이러한 편안한 분위기는 배우들과 관객의 보다 즐거운 소통도 가능하게 했다. 보통 뮤지컬 배우와 관객 사이의 면대면 소통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공식적인 '관객과의 대화'가 있는 공연 회차, 혹은 비공식적인 배우의 '퇴근길' 뿐이다.


그런데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원더랜드 피크닉' 무대를 어떤 마음으로 준비했는지, 본인이 선보인 작품과 넘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은 함께 올라온 배우들과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솔직하게 풀어내는 배우들에 관객들이 자유롭게 웃음과 환호, 그리고 짧은 외침으로 답할 수 있었다. 편안하게 웃고 떠들 수 있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또한 평소에는 직접 가볼 일이 없었던 종류의 뮤지컬 넘버를 들어보기도 하고(하데스 타운, 천사에 관하여: 타락천사), 놓쳐서 아쉬웠던 작품의 한 장면을 보기도 하고(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원래 좋아하는 작품의 넘버를 들을 수도 있어(디어 에반 핸슨, 여신님이 보고 계셔) 개인적으로 아주 행복한 추억을 쌓고 왔다.


공연장을 사랑함에도 그곳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색다른 즐거움을 맛보게 해준 '원더랜드 피크닉'. 기상 상황으로 인해 첫날에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올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기치 못한 외부 요인들에 대한 대처 방안을 보완하여 다시 돌아올 수 있으면 좋겠다. '원더랜드' 페스티벌이 뮤지컬을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오래오래 자리 잡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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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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