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겉과 속이 일치하는 실천가이자 혁신가, 크루즈 디에즈 [전시]

글 입력 2024.06.1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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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고백건대 전시를 보기 전까지는 이번 전시에 대해 큰 기대감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내 안에 편견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전에 검색하고 간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화려한 색깔이 사진 찍기는 굉장히 예쁘겠네….'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게다가 옵아트(Optical Art)처럼, 뭔가 정갈한 느낌의 예술은 취향이 아니었다. 너무 정갈해 디자인같기도 한, 차갑고 자로 잰 듯 너무 완벽해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다만 늘 새로운 시도에는 새로운 감흥이 따르기 마련이기에, 또 한편 중요한 미술양식 중 하나인 옵티컬 아트를 제대로 본 적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무더운 여름날 예술의전당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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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티컬 아트란, 인간의 눈의 반응을 이용해 시각적 효과와 착시를 일으키는 1960년대 시작된 미술 양식이다.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트릭아트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했다. 올 상반기에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했던 전시 <빅토르 바자렐리 : 반응하는 눈>의 빅토르 바자렐리 (Victor Vasarely)가 옵티컬 아트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바자렐리 작품도 어렴풋이 얼룩말 무늬의 작품만 떠오르니, 크루즈 디에즈만큼은 나에게 정말 생소한 작가임은 분명했다.


초대권을 받고, 도슨트를 마침 진행한다기에 부랴부랴 전시장 안으로 향했다. 남부터미널 역에서 예술의전당까지 걸어온 데다가, 혹여나 도슨트를 놓칠까 서두른 탓에 땀이 났다. 실내의 에어컨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빨간 날이라 전시장 안은 북적북적했고 많은 사람들이 도슨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제야 숨을 고르고 작품을 마주했다. 그 순간, 이제껏 품었던 온갖 편견들이 사르르 녹고 말았다. 에어컨 바람에 더위가 씻기듯 머리가 시원해졌다. 그래. 실물로 마주한 예술작품은 달랐다. 인쇄된 페이지 위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상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도슨트를 챙겨듣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크루즈 디에즈의 작품에는 과학적 원리가 숨겨져 있어 공부하듯 챙겨 들어야 할 것 같아 들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크루즈 디에즈 작품은 한눈에 보기에도 다분히 시각적이고 착시효과를 일으킨다. 사람들은 보통 시각을 활용하는 것에는 익숙하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를 평가하는 것은 쉬워도, 미술을 평가하는 건 어려워한다. 그러나 일단 디에즈 작품은 시각적인 요소가 많기도 하고, 또 작품들 자체가 관객 친화적이어서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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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간섭 환경, Environnement Chromointerférent, Paris 1974/2024 > 내부에서

 


실제로 남녀노소 아이부터 노인까지, 어렵지 않게 작품을 즐기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마침 현충일 빨간 날이라 관객이 꽤 많았는데 아이도 어른도 신기해하는 테마파크 같은 매력이 있었다. 이게 옵아트의 매력이 아닐까 싶었다.


크루즈 디에즈는 ‘예술의 목적’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을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게 하고,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의 작품을 관람할 때 어디서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감상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도 예술의 목적은 다름 아닌 '비틀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메세지를 어떻게 전달하고 어떤 형식(그릇)에 담아 표현하는지에 따라 예술가의 정체성이 결정된다.


디에즈는 '빛과 색'을 소재로 선택했고 어렵지 않게, 꽤 직관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러나 파면 팔수록 그 안에 쌓인 ‘층’들이 얼마나 두터운지, 자칫 잘못 발을 담그면 한없이 빠질 것만 같았다. 디에즈의 작품을 한번 깊게 이해하기 시작하면, 꽤 많은 양의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 많은 층들이 집약되어 관객 친화적으로 전달되니 겉으로 봤을 땐 또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여러모로 유려한 디에즈의 예술적 형식에 난 깊이 매료되었다.


그는 유년시절, 석양이 질 무렵 나무, 하늘 모두가 오렌지 빛으로 물들어 가는 것을 보고 색에 대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그는 일생의 주제가 ‘색’이 되었고 색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색이 보조적인 역할이 아닌 주인공이 되길 희망했다. 그림에서 보조적인 것으로 인식되던 ‘색’을 해방시키고자 한 것이다. 특히 ‘형태’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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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포화, Chromosaturation, Paris 1965/2024>

 

 

그래서 색을 띤 빛을 공간에 투사하기 시작했다. 빛은 형태가 없고 한계가 없으니까.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색 포화>가 있을 수 있다. 빛의 삼원색인 R, G, B인 빨간색, 녹색, 파란색의 원색의 빛을 독립된 세 공간에 투사한다. 그러면 이 공간을 경험하는 인간은 생리학적 반응에 의해, 오롯이 그 색깔로만 보이는 게 아닌 다양한 스펙트럼의 색깔로 보이는 초현실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뇌가 색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다르게 보이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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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uleur Additive RVB 2, Paris, 2014 >

 

 

이 원리를 적용한 평면작품도 있다. 위 작품을 보면, 보시다시피 다양한 색깔이 보인다. 파랑, 초록, 노랑, 빨강, 주황, 하양 등. 그런데 작품을 아주 가까이서 보면 작품이 빨강, 초록, 파랑, 검정 이렇게 오로지 네 색깔로만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초록색인데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빨강의 영향을 받아 노랗게 보이는 것이다. 작품에 빛이 반사되어서 우리 눈에 들어오는 반응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서 어떤 각도로 작품을 보는지에 따라 색이 다르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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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uleur Additive RVB 2, Paris, 2014 >, 위 작품을 가까이서 보았을 때

 

 

이런 과학적 원리의 내용을 떠나서라도, 현장에서 작품을 보면 그냥 예쁘다. 그런 어려운 원리를 모르고 봐도 눈이 즐겁다. 그러나 우리 눈에 조화로운 이 형태와 색들은 사실 철저히 계산된 것이다. 이성과 감성의 조화랄까? 평면작품 외에도 공간에 움직이는 빛을 쏘는 작품도 있는데 마치 내가 컬러 TV 안에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위 <색 간섭 환경> 사진) <색 간섭 환경>이라는 작품인데, 안에 짐볼도 있어서 아이들이 굴리며 놀기도 했다. 정육면체, 구(짐볼)의 형태에 움직이는 빛이 반사되면서 다른 형태로 보이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공간 안의 관객들은 빛에 의해 분절된 것처럼 보였다. 특히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은 배경과 더 구분이 되지 않았던 것도 신기했다.


이처럼 그는 작품을 통해 관객이 참여하게끔 만들고 더 나아가 예술이 삶과 분리되지 않음을 강조하였다. 실제로 그의 초기 작업실이 곧 집이자 작업실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그의 신념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겉과 속이 매우 일치한 사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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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전시를 통해 빛과 색채의 거장인 ‘크루즈 디에즈’를 알게 된 것만 해도 큰 수확이라 생각한다. 그를 혹은 그의 작품을 통해 수많은 질문을 떠올리게 된 건, 덤이었다. 예술과 과학의 경계는 무엇인가. 비즈니스적인 면에서 크루즈의 예술에서 배워야 할 건 무엇인가. 작품을 구상했던 과정에서도 느껴지듯이, 그는 참 체계적인 사람인 듯했다. 기술 등장에 발맞춰 행동하는 추진력을 보면서 예술가도 결국 전략가가 되어야 하는구나 싶기도 하고, 한편 관객 친화적인 그의 예술적 형식을 통해. 예술은 결국 관객이 있어야 완성 되는 것이라면, 예술가들도 전달 형식, 언어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또한 그의 완성된 작품은 매우 심플해 보여도 실은 그 이면에 두터운 층이 있음을 발견하니, 예술은 단순히 ‘이해하기 어렵다, 쉽다’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예술은 퍼포먼스의 문제가 아닐까. 알맹이도 알맹이지만, 겉과 속이 얼마나 조화롭고 일치되는지. 이게 예술의 다일 수도 있었다. 내용이나 소재가 얼마나 쉽고 어려운지, 또는 얼마나 삶과 가깝고, 얼마나 새로운지 아닌지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되려 예술은 한 지점에 대해 얼마나 깊게 고민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 대표적인 작가가 크루즈 디에즈인 것 같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그의 전시가 가장 많이 걸려 있다는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 센터를 한번 가보고 싶다. 미술관 퐁피두 센터는 디에즈 작품(속)과 매우 잘 어울리는 겉(형식)의 겉(장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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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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