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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오랜만에 긴 연휴를 맞아 그동안 미뤄두었던 콘텐츠를 시청해 보기로 했다. 평소 여러 장르를 가리지 않고 시청하는 편이지만, 유독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분야가 있다. 바로 연애 프로그램이다. 취향은 점점 세분화되고, 각자만의 알고리즘 속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대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연애 프로그램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함께 시청하는 대표적인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그렇지만 나에게 연애 프로그램은 트렌드를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참고 자료에 가까웠다. 화제가 되는 장면이나 인물, 밈을 놓치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시청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굳이 챙겨 보지 않아도 인스타그램 릴스나 짧게 편집된 클립만으로도 주요 장면과 관계의 흐름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 연애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해야 할 이유는 사라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유튜브 연애 콘텐츠가 눈에 들어왔다. 작년 9월 시작한 <72시간 소개팅>은 기존의 연애 프로그램과는 다른 방식으로 주목을 받았다. 서로를 전혀 모르던 두 사람이 해외 도시에서 72시간 동안 함께 여행하며 소개팅을 진행한다는 설정은 장기간 합숙과 여러 출연진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기존 연애 프로그램의 공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였을까. 이전 연애 프로그램을 즐겨 보지 않았던 시청자들도 해당 콘텐츠는 재밌게 봤다는 평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콘텐츠는 어떤 매력으로 기존의 연애 프로그램의 공식을 깨고 주목을 받을 수 있었을까.

 

 

 

콘텐츠에도 '여백의 미'가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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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된 여러 에피소드 가운데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삿포로 편은 기존 연애 프로그램과는 확연히 다른 결을 보여줬다. 영상은 갈등을 부각하거나 관계의 긴장을 인위적으로 증폭시키기보다 두 인물의 대화와 교류를 비교적 담백하게 카메라에 담아냈다. 자막과 효과음, 빠른 편집으로 감정을 증폭시키기보다 공백을 그대로 두는 연출이 두드러졌다.


이는 최근 연애 프로그램의 흐름과 대비된다. 최근 성황리에 종영된 <환승연애 4>는 2명의 X와 함께 나온 출연진을 중심으로 주목을 끌었다. 출연진 간의 얽힌 스토리와 갈등 구조는 시청자에게 강한 몰입을 제공했지만 이는 감정의 자극을 극대화하는 방식이었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연애 프로그램은 더 강한 설정과 더 선명한 갈등을 필요로 하게 된다.


하지만 <72시간 소개팅>은 그 공식을 따르지 않았다. 출연진은 단 두 명이며 관계의 갈등과 긴장 대신 대화의 결, 표정의 변화, 어색한 공기가 서사의 중심이 된다. 사건을 확대하기보다 시간을 그대로 흘려보내는 선택은 오히려 관계의 밀도를 또렷하게 드러낸다. 빠르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범람하는 환경 속에서 이러한 절제는 강한 대비 효과를 만들어낸다. 과잉 연출이 일상화된 순간, 비워둔 장면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인식된다.

 

 


패널의 부재


 

기존 연애 프로그램에서 패널은 빠질 수 없는 부분이었다. 환승연애, 솔로지옥, 나는 솔로와 같은 프로그램은 출연진의 감정과 관계를 패널의 시선으로 해석하며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는 자연스럽게 '정리된 감정'을 전달받는다.


하지만 <72시간 소개팅>은 이 장치를 과감히 제거했다. 화면에는 두 인물의 대화와 반응, 인터뷰만이 남고, 감정에 대한 설명도 관계에 대한 해석도 없다. 이는 시청자의 위치를 바꾼다. 감정을 전달받는 대신 스스로 해석해야 한다. 누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판단하는 과정 자체가 시청 경험이 되는 것이다. 시청자는 더 이상 수동적인 관람자가 아니라, 해석에 참여하는 관찰자가 된다.


이러한 방식은 유튜브 플랫폼의 특성과도 정확히 맞물린다. 유튜브에서는 댓글을 통해 손쉽게 자신의 의견을 남기고 이를 다른 시청자와 나누고 소통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의 시선을 제시했던 패널보다 다양한 해석을 볼 수 있는 방식이 시청자에게는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영화 같은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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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현실의 모방이라고 하지만 결국 우리는 영화 같은 삶을 꿈꾼다. 낯선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여행을 하며 가까워지는 이야기. 이는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본 장면이다. <72시간 소개팅>은 그 상상을 현실로 불러왔다.


실제로 프로그램을 기획한 유규선 대표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를 리얼리티 버전으로 남겨보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영화를 단순히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영화와 달리 이 프로그램에는 대본도, 정해진 결말도 없다. 두 사람의 관계의 방향 역시 예측할 수 없다.


결국 <72시간 소개팅>이 수많은 연애 프로그램 가운데서도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과장된 갈등이나 극적 장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한 번쯤 상상해 본 장면을 가장 담백한 방식으로 현실에 옮겼기 때문이다.


그 지점에서 영화를 모방한 현실은 결국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순간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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