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더 또렷이 바라볼 수 있어 - 슬픔에 이름 붙이기 [도서]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구분하는 법
글 입력 2024.06.03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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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할 수 없는 것이 주는 혼란이란


  

 

질슈메르츠(zielschmerz)

마침내 평생에 그리던 꿈을 추구하게 되었을 때, 유치원 시절부터 품기 시작해서 최대한 오랫동안 숨겨온 희망과 망상의 유리 온실에서 더는 보호받지 못한 채 탁 트인 대초원에 자신의 진정한 능력을 드러내놓고 시험해야 하는 데서 오는 두려움

 

 

말은 힘이다. 명확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떠다니는 불명확한 감정을 하나의 단어로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우리에게 커다란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내 삶의 어느 한 조각을 설명하거나 정의할 수 있는 단어가 사라지면 그만큼 상실감을 겪을 수도 있다.


어떤 단어는 수천 년을 살아남았으나 그 시간 동안 잊힌 단어들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단어의 생성과 소멸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쓰임이 있는지에 운명이 달려있다. 그렇게 얼마나 많은 소수가 다수가 만들어낸 흐름에 휩쓸려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잃어버렸을까.


사람들이 많이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의 마음에 와닿았던 단어가 사라지는 것, 어두운 방 한편에 두고 잊히는 모양새는 소외감이 들게 한다. 그렇게 어느 곳에서 속하지도 못하고, 나의 마음을 어떤 식으로도 표현하지 못한 채 더없이 외로워질 때쯤,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나를 찾아오곤 한다. 새로운 단어, 새로운 표현을 깨우치거나 잊고 있던 것들을 떠올리는 순간들은 찰나의 기쁨이고 즐거움이다. 또는 그를 넘어서서 단어는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인생의 길을 보여주는 지표로 작용하기도 한다.

 

 

 

마음속 혼란에 질서를 잡아


 

 

“이 단어들은 반드시 대화에서 사용되길 바라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졌다. 당신 머릿속의 황야에 어떤 외견상의 질서를 부여해주고픈 마음에서. 그리하여 당신이 너무 심하게 길을 잃었다고 느끼지 않은 채 -실은 우리 모두가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고 안도하며- 당신만의 방식으로 그 질서를 정착시킬 수 있게”

 

- 19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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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니즘(onism)

당신이 경험할 세상이 얼마나 작을지에 대한 깨달음

 

 

“슬픔에 이름 붙이기”는 여러 단어를 모은 사전이다. 영어 외 다른 언어와의 합성어들인 이 언어는 기본적으로 감정 신조어에 속한다. 그리고 그 신조어들의 모임은 각자의 슬픔에 이름을 붙인 형태를 갖춰 책으로 발간되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 안에 담긴 단어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몇몇 사람들에게 그 안에 담긴 단어들은 쉽게 설명할 순 없지만, 평생 찾던 자신만의 열쇠일 수도 있고 답답한 마음에 불어온 산들바람 같은 역할을 한다. 추천의 말을 작성해 준 김소연 시인의 표현처럼 “발에 맞는 신발을 찾은 듯, 잠에 꼭 맞는 베개를 찾은 듯‘한 순간들을 나 역시 경험해 본다.


저자 존 케닉은 영상 편집자, 성우, 일러스트, 작가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블로그(dictionaryofobscuresorrows)에서 슬픔에 이름 붙이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 'dictionary of obscure sorrows', 바로 이 책의 마중물이 되었다. 저자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언어에 대한 지식과 섬세한 감각이 여러 상황에서 우리가 쉬이 말로 풀어내지 못하는 것들의 단어로 다시 태어나 책에서 이어진다.


6개의 단락을 통해 나누어진 책에는 내 마음의 상태,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감정, 광활한 세계를 살아가며 느끼는 순간들에 대해 분명히 인지했으나 뭐라고 설명하지 못해 떠나보냈던 것들이 저자의 단어로 풀어져 있다. 단어와 그 정의를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다 보면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얼마나 많은 언어가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셀 수 없는 것들이 이름을 붙이지 못한 채 떠다니는지 생각하게 된다.

 

 

티러스(tiris)

모든 일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는 달곰씁쓸한 깨달음

 

 

 

자그마한 안정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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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단어를 만든 후에 독자들로부터 감사의 이메일을 연이어 받았다고 언급한다. “제가 평생 느껴온 무언가를 말로 표현해 줘서 감사해요”라는 독자들의 감상은 저자의 말처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보편적인 것이다. 고속도로를 지나는 다른 차들을 힐끔 쳐다보며 그들의 행선지가 어디인지 궁금해하다가 곧장 잊어버리는 순간처럼 아주 짧게 나를 스치는 시간이었을지라도 결국 내 곁에 머물렀던 것이기에, 이를 정의할 수 있는 계기를 마주한 기쁨은 나를, 세상을 더 명확하게 보게 되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과연 나는 이 책에 나온 단어를 얼마나 써 볼 것인가? 책을 읽으면서도,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쉽게 대답할 수 없다. 나의 일상은 그보다 더 명확하게, 오래전부터 구분된 단어들로 가득하다. 이들을 머릿속에 채우고 구분 짓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라는 삶이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공감의 흐뭇한 마음도 다시 오래도록 잊고 지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복합적이고도 함부로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세상에서 더욱 복잡한 내 마음을 어느 정도 분류하거나 이름표를 달아줄 기회가 생긴 것은 분명하다. 저자의 말처럼, 단어는 우리에게 완전히 실재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면서 미궁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실과도 같기 때문이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심오한 것들과 대상들 사이에 자리한 나는 그렇게 유한한 세상에서 벽이 사라지고, 세상이 열리는 경험을 작게나마 책을 통해 겪어본다.

 

 

“불가능한 꿈을 좇는 것은 기쁨이다. 무엇이든 느끼는 것은 기쁨이다.”

 

- 298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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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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