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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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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하루 내내 붙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구가 생겼고 그래서인지 관계에 대한 큰 고민이 없었으나, 20대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친밀한 관계를 만드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걸 실감했다. 내가 노력해야만 생기는 것이 친구였고 간절하다 보니 오히려 더 헛발질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20대 내내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참 많았다.

 

뭐든 부딪히지 않고 자꾸 공부해서 배우려는 버릇이 있어 이번에도 책을 찾았다. 대표적인 게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었다. 분명 밑줄 그으며 읽었는데 막상 일상생활에 적용하려니 쉽지 않았고 그 원인을 내 탓이 아니라 책의 탓으로 돌리려고 했다. 실제로 저자의 말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우연히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의 해설을 다룬 한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영상에서 말하는 요지는 이렇다. 이 책의 원칙은 실용적이어서, 사업상 관계나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사람에게는 적용할 만하지만, 매일 보는 사람이나 가까운 관계에서는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책의 내용이 상대방을 내 뜻대로 조종하고 움직이게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 영상과 댓글을 보며 순간적으로 ‘아! 누군가는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제대로 해석해 줘야겠구나. 저마다 감상은 자유지만, 지나친 왜곡은 막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도 비슷한 영상을 봤던 것 같다. 그러다 오랜만에 인간관계론 마스터 에디션을 보게 되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한번 읽은 인간관계론, 이론서로서의 가치


 

다시 읽은 인간관계론은 마치 『수학의 정석』 같이 느껴졌다. 우리가 수학 공부를 할 때 정석으로 이론을 배운 다음에 『쎈』이나 『개념원리』 같은 문제집을 통해서 배운 걸 반복해서 연습하면서 이해도를 높여가지 않는가. 이론서와 문제집이 따로 있듯이 인간관계론은 이론서의 역할을 하며 저자가 느꼈던 인간관계의 핵심 원칙들을 알려준다. 이때의 원칙은 내가 돋보이거나 인기를 얻는 방법이라기보다는, 대다수의 사람과 우호적이고 무난한 관계를 맺기 위한 팁이다. 어떻게 해야 최소한 미움받지 않고 남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은 채 교류할 수 있는가의 느낌. 게다가 아무래도 해설집이다 보니까 기존의 책보다는 좀 더 설명이 친절하게 느껴졌다.

 

이 책을 활용하고 싶다면 그냥 그 딱 주요한 원칙을 발췌해서 기억해 두었다가 필요한 상황에 써먹으면 좋을 것 같다. 친구와 대화하다가 중간에 너무 끼어들고 싶다면, 7번 원칙을 떠올리는 식이다. "원칙 7번, 즐거운 대화를 나누려면 경청하는 사람이 되어라. 스스로에 대해 말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고무시켜라.” 내가 관심받고 싶더라도 “원칙 8번, 나를 다시 보고 싶게 하려면 상대방의 관심사에 맞춰 이야기하라.”를 떠올리고 그 사람의 관심사로 대화를 이끌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원칙은 이런 식으로 활용하면 되는 것 같다. 내게 편하고 익숙하던 방식으로 대화를 자꾸 하게 될 때 자신을 경각시키는 용도로.

 

 

원칙 7, 즐거운 대화를 나누려면 경청하는 사람이 되어라. 스스로에 대해 말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고무시켜라.

 

원칙 8, 나를 다시 보고 싶게 하려면 상대방의 관심사에 맞춰 이야기하라.

 

 

 

솔로지옥이 보여주는 말과 태도의 중요성


 

연애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대화와 사회적인 매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연애 프로그램은 주로 예쁘고 잘생기고 좋은 스펙을 가진 비연예인들이 나와서 서로 호감을 갖고 선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예능이다. 과거의 <사랑의 리퀘스트>나 <짝>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그런데 자꾸 보다 보면 그들이 가진 외적 매력보다 결국에는 내적인 콘텐츠, 성품을 보고 서로 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최근 방영 중인 <솔로지옥>이 특히 그러하다. <솔로지옥>은 수많은 연애 프로그램 사이에서도 일반인 출연자들 외모의 빼어남 측면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의 <투 핫>을 표방하는 프로그램으로서 이곳에 출연하려면 기본적으로 수영복이 잘 어울리는 멋진 몸매와 뛰어난 얼굴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외적인 매력이 뛰어난 출연자들이 나온다고 해도 처음엔 외모를 보고 끌리더라도, 결국에는 대화를 나누고 단체 생활을 하면서 각자가 하는 행동, 계속해서 선택하고 이성으로부터 선택받아야 하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식을 보고 호감 상대를 결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의 매력은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으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아무리 매력적인 외모더라도 그 내면과 연결되다 보면 더 멋져 보이는 출연자도, 왜 저럴까 싶은 출연자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 방송이라서 아무리 편집의 방향대로 판단하게 되는 면이 있더라도 어쨌든 많은 시청자의 눈은 속이기 어렵다.

 

최근 최미나수라는 논란의 중심에 있는 출연자는 국가별 미인 대회 수상자들이 모여 또다시 경쟁하는 미스 어스(Miss Earth)에서 2022년 전 세계 1등을 할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다. 외모로도 그렇지만 경쟁 과정에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공감을 나누는 것이다. 우리는 자주 공감과 친절함을 혼동하지만, 공감의 진짜 의미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 기후 변화와 세사의 다른 문제들도 공감 능력이 있어야 풀 수 있는 것들이다.”라는 멋진 답변으로 찬사받은 바 있다. 이렇게 멋진 과거의 행보와 대비되도록 솔로지옥 프로그램 내에서는 당황스러운 모습이 보였다. 관심 있는 출연자에게는 틱틱대고 감정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감정을 회피하다 보니 여러 남자에게 동시에 호감이 있다고 말하거나 아침과 저녁의 감정이 완전히 바뀌는 등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보인다. 방송 과정에서 반드시 인기를 얻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어떻게 해야 돋보일지에 매몰되다 보니, 오히려 자신만 신경 쓰다 보니 남들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했다. 미나수를 출연진들 사이에서 고립시키고 좋아하는 상대에게서 더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과정들에서 점점 정신적으로 힘들어져서 안 좋은 선택을 계속해서 하게 된다.

 

 

원칙 12, 최악을 피하려면 잘못했으면 즉시 분명한 태도로 그것을 인정하라.

 

 

전 세계로 방영될 자신의 모습이 별로라는 걸 인정하고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다가가는 건 쉽지 않지만 분명 의미가 있었을 테다. 또, 카네기의 조언처럼 자신의 감정에만 몰두하지 않고 주변을 살피고 타인에게 관심을 두었다면 조금 낫지 않았을까. 자유분방한 인기녀가 되는 길과 타인에게 먼저 관심을 보내라는 카네기의 조언은 상충하는 것 같고 함께 이루기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살고자 하는 사람을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라는 말처럼 오히려 내가 관심받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인기를 얻게 되는 아이러니가 있다. 미나수가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촬영 과정에 임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더 나은 우정과 애정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자꾸 과몰입해 보았다.

 

 

 

인간관계론이 남긴 작은 다짐들


 

이렇게 인간관계론 마스터 에디션을 읽으면서 자꾸만 다짐하게 되었다. "원칙 5번, 타인에게 먼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갈 줄 알아야지." 평소에 에너지를 아낀다고 일상생활에서는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하고 가능한 한 힘을 빼고 지내려고 했다. 수험생의 처지에서 공부에만 심력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일상생활의 어느 부분을 일부러 대충하는 사람이 다른 것을 아주 잘하지는 않을 수 있다. 의도적으로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들이지 않는 사람이 자신의 공부에는 얼마나 성의가 있고 열정적일 수 있을까. 의도적으로 불친절하지는 않기로 했다. 독서실에서 총무 일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조금 더 친절해지기로 다짐했다.

 

또, 같이 공부하는 친구와 가끔 의견 차이로 말다툼하게 될 때가 있는데 이럴 때 어떻게 다른 의견을 전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원칙 10번과 11번에서 그 해결책을 준다.

 

 

원칙 10, 의견이 맞지 않는다면 논쟁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피하는 것이다.

 

원칙 11, 잘못된 주장을 반박하려면 상대방의 견해를 존중하라. 결코 “당신이 틀렸어”라고 말하지 말라.

 

 

다른 주장을 펼칠 때 “아니 그게 아니고요...”하고 바로 부정하며 의견을 말하거나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라고 하며 동의하는 척하다가 곧바로 틀어 반박하지 않는 것이다. 좀 더 우호적으로 존중과 공감의 말로 시작하되 부정적인 말로 연결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좋은 의견입니다.” 같은 공감을 표현하는 ‘쿠션 언어’로 시작하고 ‘다만’, ‘그런데’ 등의 부정적인 말을 쓰지 않도록 주의한다. 단순히 말하기 기술의 문제라기 보다는 상대를 존중하고 반대 의견 속에서도 배울 점을 찾는 태도의 문제이다. 이런 태도가 있을 때 비로소 더 나은 해결책을 함께 만들어가는 협력적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 테다.

 

내 의견을 고집하면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하다가, 내 생각을 옆구리에 암살하듯 찔러넣지 않기로.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면서 친구를 존중하고 또 우리가 함께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을 이야기하고 내 의견을 부드럽게 전달하려 노력해 봐야겠다.

 

그리고 이 모든 결심과 팁들을 한 번씩 눈에 새기고 가되, 너무 애써 기억하려고 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소제목 문구 기억 정도면 충분하다. 너무 인간관계를 생각하고 고민하다 보면 도리어 안 되는 것 같다. 이미 배운 팁들은 아무리 까먹어도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 있을 거고 필요한 상황에서 가끔 튀어나와서 도움이 될 거라 믿고 살아야겠다. 그러다가 너무 난감한 상황이 닥치면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조언을 얻어가다 보면 조금 더 인간관계가 편해지고 그래도 무리 없이 무난한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듯하다. 그 힘을 <인간관계론>을 통해 얻어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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