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인 오스틴과 『오만과 편견』에 대한 첫 기억은 고등학교 독서 동아리에서였다. 두꺼운 분량과 다소 진지해 보이는 제목 탓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고, 겨우 읽기 시작하고도 한참 동안 첫 장에서 멈춰 있던 기억이 있다.
“상당한 재산을 소유한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필요하다는 건 온 세상이 인정하는 진리이다.”
이 문장이 그렇게 유명한 첫 문장이라는 사실도 몰랐던 때였다. ‘진리’라고 단정하는 어투, 그리고 결혼하지 않는 삶을 배제하는 듯한 내용이 왠지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오스틴 특유의 신랄한 유머와 문장 속 숨은 의미를 떠올리면, 이는 결혼을 옹호하기 위한 말이라기보다 독자의 주의를 환기하고 다른 메시지로 이끄는 장치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웃에 이런 남자가 이사 오면 그의 감정이나 생각을 모르더라도 다들 그를 자기네 딸 가운데 하나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여기게 마련이다.”
딸들을 결혼시키려 애쓰는 베넷 부인의 모습도 이어진다. 이십 대 초반의 나였다면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며 콧방귀를 뀌었겠지만, 취업 앞에서 현실의 벽을 마주한 지금은 단호하게 말할 수가 없다. 결혼을 통해 내가 들어갈 역할을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물론 결혼이 쉬운 길은 아니지만, 삶의 방식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최근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어른께 취업 고민을 털어놓았다가 “결혼을 잘 하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 반박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조언처럼 느껴져 씁쓸하면서도 묘하게 공감이 갔다. 사회로 나아가는 일이 지연된 지금의 상황이, 오스틴의 소설을 다시 읽어야 할 이유가 되어버린 듯하다. 그녀의 주인공들처럼 현실적이고, 고민하며, 동시에 용기 있는 인물들이 어쩌면 길잡이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책의 저자 루스 윌슨은 오스틴의 팬으로, 다양한 독자들의 목소리를 빌려 오스틴 작품의 매력을 전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설명은 ‘독자의 상황에 맞게 다가올 수 있는 입체적인 소설’이라는 점이다. 독자마다 마음에 닿는 지점이 다르고, 그래서 더 넓은 독자를 포용한다는 뜻일 것이다.
흥미로웠던 예시도 있다.
124쪽
훌륭한 작가들은 책을 읽을 때 독자가 관심을 어디에 둘지 선택하게 해주고 다시 읽을 때 마음을 고쳐먹게도 해준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참호에서 읽을거리로 오만과 편견을 지급받은 병사들, 전투 중 부상을 입고 치료 시설에서 이 책을 지급받은 병사들을 생각해보라. 그들은 이 소설의 경쾌하고 밝고 반짝거리는 측면들, 무도회와 나들이같은 것에 호응하면서 당장의 고통이 완화되는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들에게는 경쾌하고 반짝거리는 이 소설의 색조가 유익했던 것이다.
오스틴 문학은 이런 식으로 독자의 필요에 따라 접근해온 내력을 갖고 있다. 어느 초기 독자는 그 복잡하디복잡한 맨즈필드 파크를 추천하는 이유로 무도회와 피크닉 장면을 꼽았더라. 이이를 포함해서 많은 오스틴 애호가들이 작품에서 벌어지는 학대, 경쟁, 이 대저택의 고고한 도덕성에 대한 위협이라든지 거기서 흘러나오는 격렬한 감정의 암류 쪽으로는 눈길을 안 주고 싶어 했다. 맨텔 말대로 선택지가 있는 것이다. 교회 앞 결혼식으로 끝나는 오스틴 소설의 결말에 넘어가 저 행복한 커플들의 앞날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요만큼의 의심도 품지 않는 독자가 있는가 하면, 그다지 안온하지 못한 사색을 택하는 독자도 있기 마련이다.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오만과 편견』을 단순한 로맨스로 읽었다. 그러나 최근에 다시 읽으니, 방어적으로 타인을 대하며 오해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나라면 안 그럴 텐데”라는 생각 속에서 상대의 행동을 오해하곤 했던 경험들. 결국 필요한 것은 ‘잘 듣는 기술’이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서로를 오해하고, 대화를 통해 화해하는 과정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또 하나, 책을 읽으며 사소한 장면에만 꽂히는 나 자신을 위로받는 느낌도 들었다. 독서는 정답을 맞히는 시험이 아니고, 자신만의 감상으로 의미를 재구성하는 과정이라는 사실. 물론 타인과 공감할 수 있을 만큼의 객관성은 필요하지만, ‘각자의 눈으로 읽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루스 윌슨 역시 오스틴을 통해 삶의 전환점을 맞는다. 평탄하다고 믿어온 자신의 인생이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예순 살 생일에 처음 자각하고, 시골집의 ‘자기만의 방’에서 오스틴의 작품을 다시 읽는다. 그 과정은 일종의 독서 치유였고, 결국 88세에 문학 독서 접근법으로 박사 학위를 받는 여정으로 이어진다.
[오만과 편견]에서는 판단을 내리기 전에 근거를 따져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고, 동반자적 결혼의 이상을 고수하는 엘리자베스 베넷을 보며 용기를 얻었고. [이성과 감성]을 읽으면서는 두 자매, 감정이 휘몰아치는 메리앤과 절제된 양식의 엘리너 간의 충돌이 내 안에서도 들끓고 있다는 걸 진작에 깨달았는데, 격렬한 감정과 합리성에 대한 욕망 사이에 타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소설 [에마]와 주인공 에마는 이런 걸 알려줬다. 딸에게 자기를 사랑해줄 어머니가 안 계신다면, 스스로 타당한 이유를 찾아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
오스틴의 장편은 청소년에게는 우정과 삶을 살아가는 방법론으로, 성인에게는 삶을 돌아보는 계기로 다가온다.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제인 오스틴 독서 요법’은 특히나 사랑스럽다. 마치 처방전을 읽는 느낌의 독특한 형식으로, 독서가 삶을 회복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삶의 행복을 강화하기 위한 복합 처방전
면허 소지자: 문학 약사 제인 오스틴
[에마]
통증 증가에 효과적인 치료제
증상: 특권 의식의 과잉, 취약성 부인
치료: 경계와 정신적 포용에 관한 사유를 접할 것
용량: 18세부터 23세까지는 연 1회, 이후에는 원할 때마다
부작용: 자기반성에 따른 불편감
효능: 경계에 대한 명확한 인식, 현명한 사랑이 발달함.
사실, 이 책은 오스틴 덕후라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나처럼 몇 작품만 읽어본 독자는 곳곳에 등장하는 비유와 장면을 다 이해하지 못해 몰입이 깨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제인 오스틴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최근에는 주로 자기계발서를 찾으며 문제의 해결법을 구해 왔지만, 때로는 소설이 더 우아한 해답이 될지 모른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오스틴을 다시 꺼내 들고 싶다.
독서를 정말 좋아하면서도 간편하고 비용이 덜 드는 취미라는 생각에 이유모를 부끄러움이 있었는데, 그 안에 삶의 단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이제는 조금 더 능동적으로, 나만의 시선으로 읽어갈 준비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