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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내게는 왠지 길가나 숲 속의 식물들 중에서 먹을 수 있는 것, 인간에게 유익한 것을 식별하는 능력에 대해 묘한 동경심이 있다. 이 동경은 어릴 적 흥미롭게 읽었던 학습 만화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시리즈의 영향을 받아 자라난 듯 하다. 성인이 된 지금, 가끔은 출퇴근길에 멍하니 있다가 좀비물 영화처럼 사회 인프라가 무너졌을 때 식량을 어떻게 조달하면 좋을지 상상한다. 가만 보자, <워킹 데드> 첫 번째 시즌에 버섯의 여왕이란 별명이 붙은 조연 캐릭터가 있었던 거 같은데. 그 캐릭터는 평소에 버섯 공부가 취미였던 걸까? 독버섯을 가져온 적이 없잖아. 버섯이라곤 마트에서 사는 것밖에 모르는 나는 웬만큼 굶주린 게 아니면 버섯 말고 다른 걸 구해봐야겠지.


이런 상상을 하고 살다보니 <미코, 버섯의 모든 것>이라는 책의 소식을 접하고 자연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버섯에 대한… 모든 것? 혹하네. 물론 한 번의 독서로 식용 버섯과 독버섯을 구분하는 능력이 생기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식이 채워지고 상상 속의 생존능력도 조금이나마 보강이 되지 않겠는가. 거기다 ‘세계 최대 규모 어린이 도서전’인 볼로냐 도서전에서 창의성과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책에 주는 라가치상을 2024년에 수상한 책이니 심미적으로도 즐거운 독서가 될 것 같았다.


<미코, 버섯의 모든 것>은 글쓴이 이르지 드보르자크와 그린이 다니엘라 올레이니코바의 두 번째 협업으로 일궈 낸 작품이다. 이 책의 전체 콘셉트는 ‘버섯이 직접 만든 버섯 잡지’이다. 책의 윗면을 보면 전체 원고가 떡메모지처럼 통으로 책등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얇은 잡지 여러 권을 묶어 책 한 권으로 엮은 듯한 모양임을 알 수 있다. 책의 전반적인 설정과 부합하는 형태라 할 수 있겠다. 참, 제목에 나오는 체코어 ‘미코(MYKO)’는 곰팡이, 혹은 버섯을 뜻하는 리틴어 접두사 미코(myco)에서 유래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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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버섯이 식물도, 동물도 아닌 균류임을 선포하는 버섯들의 ‘독립 선언문’으로 시작한다. 1969년 저명한 자연과학자 로버트 휘태커가 ‘균류’라는 새로운 생물계를 설정하기 전까지 인간들이 가진 생물계 구분은 오로지 식물계와 동물계 뿐이었다. 버섯은 바로 여기, 균류에 속한다. 버섯을 식물로 분리할 수 없는 이유는 버섯에는 엽록소가 없고, 광합성으로 포도당을 만들어내지도 않기 때문이다. 휘태커는 균류에 라틴어로 풍기(Fungi)라는 이름을 붙였다. 리조또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이 단어가 익숙할 수도 있겠다. 크림 소스에 버섯이 들어간 풍기 크레마 리조또를 종종 메뉴판에서 볼 수 있으니. 나도 모르는 새에 균류의 라틴어 이름을 접하고 있었다는 점이 재미있다. 더 재미있는 점은 버섯이 마치 붙박이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버섯의 구조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버섯은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커요. 그물버섯의 ‘대(자루)’ 위에 있는 갓과 나무에 붙은 느타리의 ‘귀’ 모양은 자실체로, 버섯이라는 존재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에요. 훨씬 더 큰 부분은 땅속(그물버섯처럼)이나 나무 안쪽(느타리처럼) 숨어 있어요. 이 부분은 균사(hyphae)라고 하는 실 모양의 구조로 얽힌 균사체(mycelium)예요. 나이가 든 균사체는 전체 나무 또는 심지어 숲 전체에 퍼져 있기도 하지요.

 

(‘잡지 2권’의 3쪽에서)


 

말인 즉슨, 우리가 흔히 버섯이라 부르는 것은 버섯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자실체보다 규모가 큰 버섯의 균사체는 물건, 나무, 동물, 숲 같은 ‘공간’에 침투하여 버섯의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을 얻는다. 그리고 그 영양분을 분해하고 변환하며 새로운 균사를 만들어낸다. 균사체는 버섯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영양기관이며, 버섯의 균사체에서 자라난 자실체는 포자를 생성하는 생식기관이다. 자실체를 형성하는 버섯은 전체 버섯의 약 10% 정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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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미코, 버섯의 모든 것>이 ‘버섯이 버섯을 위해 만든 잡지’가 설정이다보니 잡지 한 권을 이루는 다양한 섹션들이 있다. 인터뷰, 실험, 역사, 과학, 르포, 버섯 신화, 버섯 문학 등이 그것이다. 내가 주로 흥미를 느낀 섹션들은 버섯이 인간에게 미친 영향을 볼 수 있는 ‘역사’와 버섯의 특성을 재치 있게 풀어낸 ‘버섯 신화’이다. ‘버섯 신화’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나무와 덕다리버섯’이다. 나무에 기생하는 덕다리버섯은 ‘더 높이 올라가고 싶은데 너 없이는 그것이 안 돼. 그런데 내가 너를 해치겠니’ 라는 달콤한 말로 나무를 꾀어내 나무의 몸에 자리잡는다. 덕다리버섯은 나무의 표면뿐 아니라 나무 내부에서도 성장해 나무를 갉아먹는다. 속부터 분해된 나무는 결국 쓰러진다. 덕다리버섯에게 왜 이런 짓을 했는지 묻지만 버섯은 자신의 본성이 원래 이런 것이라 말하고 나무도 자신과 버섯 두 종의 본성을 그저 받아들인다.(어차피 수용 외에는 다른 수도 없다) 다소 허무한 이야기다. 그러나 ‘~의 기원은 이랬다, ~의 특징은 원래부터 이랬다’라고 보여주는 것만으로 호기심의 공백을 채우는 기원 설화란 원체 이랬지, 하고 오랜만에 신화의 여러 맛 중 허무하고 헛헛한 맛을 보게 되어 이상하게 좋았다고나 할까.


신화의 이런 맛조차 나쁘지 않은 이유는 인간도 세상이 창조와 파괴의 순환으로 굴러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보다 더 오래 지구에서 살아온 버섯은 이 순환을 더더욱 잘 알고 있다. 아니, 그들의 삶은 아예 그것을 체득하고 실천한다. 균사체는 버섯이 터를 잡은 나무나 숲, 가구, 집을 분해한다. 그런데 균사는 파괴만이 아니라 상생도 한다. 균사는 식물 뿌리의 연장선이 되어 식물 뿌리만으로는 가닿을 수 없는 지점의 영양분까지 식물에게 끌어다준다. 한편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합성한 포도당은 뿌리를 타고 내려간다. 이 양분의 일부는 균사가 쓰고, 일부는 균사가 다른 식물에게 전달한다. 그러니까 땅 아래에는 식물 뿌리뿐만 아니라 곰팡이뿌리인 ‘균근’이 존재하여 거대한 그물망을 형성하는 것이다. 버섯이 생긴 나무가 속에서부터 분해되어 쓰러지면 부식토(humus)가 된다. 식물성 물질이 기본적인 요소로 분해된 이 부식토는 다른 식물들의 영양분이 된다. 그러니까, 흙으로 돌아간 나무와 균도 그렇게 상생 그물의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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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에 핀 곰팡이 때문에 식량이 없어져 수많은 아일랜드인들이 미국으로 건너갔는가 하면, 우연히 발견된 푸른곰팡이는 수많은 인간들을 박테리아로부터 구해내는 항생제가 되었다. 어떤 버섯은 치명적인 독버섯이지만 양송이는 맛있는 수프에 들어가 향미를 더하고, 어떤 버섯은 인류 조상들의 부싯깃으로 적합했는가하면 또다른 버섯은 현대의 향수 제조에 쓰인다. <미코, 버섯의 모든 것>은 이처럼 버섯이란 생물의 생태와 각기 다른 특징들을 전한다. 버섯과 식물 사이의 상생뿐만 아니라 동물과의 상생 관계 또한 다루고 있다. 버섯에 대한 책이지만 버섯에 한정되지 않고 버섯과 연관된 여러 동식물에 대한 지식도 얻어갈 수 있다.

 

다니엘라 올레이니코바의 귀여운 그림은 이르지 드보르자크의 정보량 많은 글과 위트 있게 연계되어 책 감상에 풍성함을 더한다. 두 사람의 글과 그림은 구역이 나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균근의 그물처럼 얽혀 있다. 책을 펼쳤을 때 한눈에 들어오는 주제부 그림 외에도 작거나 긴 디테일들이 책의 한 면 또는 두 면에 걸쳐 옅게 퍼져 있다. 점점이 퍼진 그래픽은 대기에 퍼진 버섯의 포자 같은 느낌을 줄 때가 있다. 길고 가는 선묘를 눈으로 계속 좇다 보면 드보르자크가 설명 중인 제재의 특성을 짐작하여 그려나가던 감각이 이미 책에 그려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를 알아차리면 독자는 글을 읽으며 추상적으로 얻었던 감각에 한층 자신감을 얻게 된다. 종이접기를 할 때 옅은 실선으로 접는 부분 안내선이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은근하고 곡선적이며, 강제적이기보다는 재잘거리는 그림으로 흥미 유발해 독자의 감상 방향을 안내한다. 글과 그림의 결합이 독서의 감각을 끌어올리는 탁월한 시너지를 낸다. 이렇게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토의가 있었을지 궁금하다. 인쇄에 쓰인 잉크 특유의 색감 또한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무기이다. ‘균과 버섯과 곰팡이 세상’이라는 비일상적인 차원, 우리가 아는 세상의 틈 사이에 숨겨져 있던 세상을 여행하는 느낌을 이 책의 색감이 더욱 강화시킨다. 과연 라가치상 수상에 걸맞게 하나의 작품을 감상한 기분이 든다.

 

일독으로 버섯의 모든 것을 한번에 거머쥘 수는 당연히 없지만 버섯, 곰팡이, 균근, 버섯과 관련 있는 동식물에 대한 여러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 글과 그림이 얽힌 데서 오는 심미적 만족감이 컸기에 <미코, 버섯의 모든 것>을 몇 번 더 펼쳐볼 것 같다. 어린이와 어른 모두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예쁜 과학 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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