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무를 생각하기, 그러다 나무가 되기 – 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 [도서]

글 입력 2024.02.2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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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의 저자 수마나 로이는 나와 닮은 부분이 있다. 나무를 좋아한다는 것. 자연을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나무가 되고 싶다는 것. 그렇기에 세상의 모든 것을 나무로 치환하여 생각하는 것은 나무에 대한 애정과 그만한 욕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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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과수원을 걷다가 갑자기 머리 위로 떨어진 나무 그림자의 무게에 짓눌렸던 것이 기억난다." (p.105) 

 

이 문장을 읽자마자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무언가 설레기도 하였다. 내가 도심에서 지쳐갈 때쯤, 어슴푸레 사라지던 나무와의 기억을 한 문장으로 되돌려주는 것 같았다. 동시에 나와 같은 느낌을 경험한 이가 인도에 있다는 것과 나보다 더 나무를 떠올리고 연구하는 이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내게 있어 신기한 일이다.

 

사실 중력과 무관한 그림자의 무게를 느꼈다는 것은 영문 모를 일이다. 아주 오랜 기억 속 묵혀둔 갑갑한 느낌. 나무나 숲이라 하면 대개 시원함과 해방감을 느끼기 마련이지만, 아주 가끔 그 아래 내려앉는 어떠한 것들이 나를 무겁게 만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지인에게 하면 다들 의문의 물음표부터 먼저 나오기에, 하지 않는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나무에 관한 사고는 매번 타인과 부딪히게 된다. 어릴 때는 그로 인해 꾸중을 듣거나 어린아이의 장난기 넘치는 상상으로 치부하거나였다. 저자는 그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책 속에 가볍게 툭 던진다. 그리고 이내 스스로 나무에 대한 '집착'이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수마나 로이는 집착하기를, 나무가 되기를 멈추지 않는다.


식물의 내부를 보기 위해 방사선 전문의 친구를 졸라 화분 엑스레이를 찍어보기도 하고, 나무 관련 서적과 연구를 수없이 찾아보기도 한다. 그리고 나무에 대해 무수히 생각한다. 그녀의 수많은 질문은 나무가 되기 위해 다가가는 발걸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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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는 중력을 벗어나 “위로 자라는” 나무의 열망이 담겨있었고 이 글을 쓰던 그 순간 난달랄은 이미 나무로 변한 것이다. 나무와 화가는 모두 빛의 고객이기 때문이다. 녹색식물의 엽록소와 화가의 캔버스는 모두 빛을 이용하여 결과물을 만든다. 빛은 나무의 소중한 양식이며 화자의 부엌과도 같다. 그렇다 보니 난달랄도 눈에 보이는 나무 부분에만 관심이 있을 뿐 보이지 않는 뿌리는 신경 쓰지 않았다.

 

p.62-63

 

 

화가 난달랄의 “위로 자라는” 나무의 열망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나무는 위로만 자라지 않는데’라는 생각을 떠올리기 무섭게 이어지는 저자의 말은 나의 생각과 너무나도 비슷했다. 나무가 되기 위해선 뿌리부터 가꾸어야 한다. 식물 대개가 그렇다. 뿌리가 자리 잡지 못하면 식물 스스로 일어서 있을 수 없다. 그 영양분도 흡수할 수 없다.

 

나의 식물 중 다육식물과 산세비에리아에 대해 말해 보자면, 다육식물의 경우 잎꽂이로 번식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는 다육식물의 잎을 뜯거나 떨어진 잎들을 며칠 묵힌 후 자라난 뿌리를 흙에 심는 방식이다. 그럼 이후 나는 뿌리가 흙에서 그 손을 무수히 뻗어주길 바랄 뿐이다. 신기하게 가끔은 흙 위에 대충 올려놓았을 뿐인데, 뿌리가 스스로 그 길을 찾아 엉금엉금 흙 속으로 몸을 숨기기도 한다.


산세비에리아는 실내에서도 그 생명력이 강해 공기정화식물로 유명하다. 그 번식력도 강해 몇 달마다 옆으로 튀어나오는 작은 산세비에리아들을 떼어내 화분 5개로 분갈이한 일도 있다. 분갈이할 때마다 나는 그 뿌리의 자람에 놀라곤 한다. 그 몇 달 새에 굴곡진 뿌리들이 더 두껍게, 더 넓게 손을 뻗어간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뿌리의 역동성에 매료되었던 난달랄은 위로 자라는 나무를 경시하지 않았고, 나는 아래로 자라는 식물의 위대함을 안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을 통해 나무가 되길 노력했다.

 

 

일시적이라도 나무처럼 살고 싶었던 사람들의 습관과 행동을 닮기 위해 나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부단히 노력했다. () 빛과 나의 관계를 나무와 빛의 관계처럼 상상해 보기도 했고, 속도와 과잉을 거부하고 나무의 시간에 맞춰 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나 자신이 완전히 나무 같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어느 날 해가 질 무렵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내 어깨 위에 내려앉는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 바이쿤타푸르 숲의 가장자리에서 나는 마침내 나무가 될 준비가 되었다.

 

p.347-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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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마나 로이를 알게 된 후, 나에게 있어 나무를 생각한다는 것은 나무를 위해 노력한다는 말처럼 다가온다. 한겨울 커다란 나무의 몸 위로 스웨터를 입혀준 누군가의 마음씨를 생각한다. 또, 2월의 어느 캠핑장에서 밤이 되면 반짝이는 불빛으로 나무에게 은하수를 선물한 이름 모를 누군가의 발상을 떠올린다. 그곳의 사람들은 모두 나무를 한 번이라도 더 올려다보기 위해 애를 썼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이 책에서도 멜버른 시청이 나무의 상태를 제보받기 위해 도시의 나무마다 이메일 주소를 부여했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나무에게 다른 목적으로-비밀을 털어놓거나 조언을 구하거나 위로를 받거나 하는-편지를 썼다는 일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수천 명의 편지를 받고 자신의 따뜻한 마음을 나눠주는 나무의 성격을 좋아한다.


어느새 나는 수마나 로이처럼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무의 그림을 ‘초상화’라고 표현한 저자의 남편처럼, 잎맥을 혈관으로 나무줄기를 육신으로 삼은 저자처럼, 나무에게도 고유의 성격이 있을지 자문하게 된다. 만약 있다면 그 긴 역사로 자리 잡은 습성은 너른 마음으로 모두를 연결하는 것일 테다.


"뿌리줄기는 시작과 끝이 없다. 언제나 사물의 한가운데에서 서로 의존하고 서로를 연결한다." (p.89)


나무가 되어보고 싶다고, 나무가 좋다고 생각한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세상을 고요하게 살아가는 나무와 그 보이지 않는 마음을 살피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일상에서 나무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내 속에 자라고 있는 유목 한 그루를 마주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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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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