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lly] 0. 헤엄치는 젤리

영혼의 경계선 위에서 나는 모호하고, 모호해서 망설이게 되는 것들을 사랑해서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
글 입력 2024.05.17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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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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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llyfish Monologue}

0. 헤엄치는 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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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자그마한 방이다. 그러니까, 익숙한 언어로 말하자면 ‘마음속’, 내가 좋아하는 표현을 따르면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방’이다. 그리고 나는 ‘몽상가.’ 굳이 표현될 필요가 없는 존재지만 당신과는 활자로만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당분간은 나를 ‘몽상가’라 지칭하려 한다. 그리고 이곳 방 한가운데엔 내 몸집만 한 잔이 서 있는데, 나는 그 잔을 ‘독백’이라 부른다. 아마 앞으로 우리가 마주하는 매 순간에는 이 독백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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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마침 흘러들어온다. 온전히 잡히기를 거부하고, 특정한 형태에 갇히기를 싫어하는 녹진한 것들이.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 기분, 떨림, 느낌들은 대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그 중 독백에 담긴 것들은 '내면의 목소리'라 부르고 있다. 이번 것은 보아하니 또 ‘불안’이다*. 응, 아주 익숙한 침범이다. 뜨끈하고 걸쭉한 불안이 독백에 차오른다. 이번 건 짙은 호박색이다. 보글보글. 작은 기포와 함께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듯하면 달싹이는 온기에 마음이 어지러워지기 전에 차갑게 식혀 주어야 한다. 그것이 나의 일이다. 예상 불가한 방식으로 내면의 방에 침투하곤 하는 ‘내면의 상태’들을 차분히 달래주고 간직하는 것.

*이곳에 흘러들어온 여러 내면의 상태들을 만나온 몽상가로서 말하건대, 게 중 이 불안은 정말이지 아무리 읊어주고 정성을 다해 보살펴도 쉽게 식지 않는 골칫덩이다. 그래도 가장 자주 만나서 그런지, 이렇게나 모호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바로 알아차리는 상태 중 하나다. 참 다채로운 모양의 불안들에 미운 정이 생겼달까.

 

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나는 '티포트'를 사용한다. 안에 든 것은 향긋한 차가 아니고 나의 ‘상념’인데, 생김새를 따라 그냥 티포트라 부른다. 이 상념은 어떤 이성적인 생각으로서의 상념이라기보다는, 존재를 뒤흔드는 내면의 상태를 파악하고 이해해 보려는 상념이다. 그러니 이 상념은 어느 면에선 ‘의지’이기도 하다. 버거운 순간을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의지. 티포트 속 상념은 내 상태에 따라 그 온도와 양이 정해지는데, 보통은 차가운 상태를 유지해 주어서 뜨끈한 불안을 식힐 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야기를 더 잇기 전에, 잠시만. 내면의 방이 수증기로 가득 차 버리기 전에 상념을 부어줘야 한다. 뭐, 나도 숨은 쉬고 살아야 하니 말이다. 붓고 나서는 또 다른 도구, ‘티스푼’을 가져와 일정한 속도로 천천히 저어주면 된다(이것도 티스푼처럼 생겨서 그냥 티스푼이라 부르고 있다. 이름 고민할 시간도 없고, 어떤 명칭을 고른다는 게 여기선 그리 의미 있진 않으니까). 충분히 식어서 잔뜩 서린 긴장이 녹아 사라질 때까지 저어준다. 아주 조심스러운 과정이다. 그만큼 아주 느리게 흐르는 시간이기도 하다. 걸핏하면 튀어 오르거나 도망칠 준비가 된 여린 감정들이라 절대 다급해선 안 된다. 내쉴 수 있는 가장 느리고 가느다란 숨결을 차근히 손끝으로 따라가듯이, 안온함을 되찾기 위해선 인내심을 가지고 세심하게 시간을 다뤄야 한다.


다만, 이 방의 주인에게는 미안하게도 독백을 엎어버리는 실수를 퍽 자주 하는 편이다. 끝까지 식기도 전에 괜히 마음이 다급해져서, 끈적이는 감정에 발목 잡혀서 넘어지기도 하고, 뭘 시도해 보기도 전에 오히려 내가 내 마음을 어찌하지 못해서 방황하다가 왈칵 - 기껏 담긴 것들을 허무하게 쏟아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독백이 담아낸 목소리들을 얼마나 많이 잃어버려왔는지 하나씩 떠올려보자면 조금 아득하다. 아무리 하고 또 해도 이 내면의 방을 차분하게 보듬는 일을 여전히 어렵고, 그 탓에 홀로 남은 세계는 불쾌하게 끈적거리곤 했다.


하여튼 첫인사인 만큼 오늘이라도 좀 좋은 모습 보이고 싶었는데 다시 왈칵-, 이다. 독백에 담긴 목소리가 뜨겁고 끈적할수록 바닥에 눌어붙기 전에 얼른 치워주어야 한다. 안 그러면 음, '오르골이 된 거짓말'처럼 되어버릴 테니까. 아, 이 거짓말이란 건 예전에 꾸던 우울의 몽상 중 하난데, 요 꿈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나중에. 지금은 바빠서 말이다.


엎어진 탓에 더 이상 살펴볼 수 없게 된 ‘불안이었던 것’들을 천천히 쓸어모은다. 손바닥으로 그러모으는 거라 남는 건 겨우 한 움큼이지만 나름 간직할 기회를 얻은 거라 소중하다. 바닥에 닿은 사이 좀 식었는지 조금 덩어리진 모양새를 보다가 두 손을 들어 귓가에 가까이 대 본다. 그러고선 ‘우연’이라 이름 붙인 214번째 유리병에 담아둔다. 뚜껑을 닫기 전에 잠시 킁킁-. 차갑게 식어 모양을 갖춘 젤리가 되지 못한 이번 불안에선 싸구려 초콜릿 향이 났다. 내 취향은 아니야. 하지만 언젠가 멋진 필연이 될지도 모르지. 이도 저도 아닌 희뿌연 내면의 목소리들을 굳이 간직하려는 내 마음은 그렇다. 아마 난 이런 모호하고 망설이는 마음을 좋아하는 이상한 존재여서 몽상가가 되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문득 피부를 간지럽히는 낯선 감각에 방을 치우느라 줄곧 바닥만 훑었던 고개를 들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 듯한 방안을 가만히 둘러본다. 뭐지, 꽉 막혀있던 벽이 조금 투명해졌다. 잘못 본 건가 싶어 멍하니 시선을 두고 걸어가 벽에 손을 얹는다. 푸욱 - 투명해진 것도 모자라 푹신해졌다. 그러니까, 음, 마치 젤리처럼. 검지로 말캉한 벽을 쿡쿡 찔러보다가 무언가 울컥거리는 소리가 들려 귀를 벽에 바싹 붙여본다.


솨아-

 

어.

 

이건 아마,

 

파도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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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리의 말랑한 외면은 바다란 세상을 표류하는 중이었다.


넘실넘실. 바다는 멎은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을 벗어나 해류에 몸을 맡긴 해파리의 흔들림도 멈춘 적이 없었다. 바다에 사는 것들이라 바다를 닮게 된 건지 해파리 눈에는 모든 존재가 물살을 따라서, 때론 거스르며 헤엄치고 있었다. 숨 쉬는 모든 것들이 헤엄치는 광경을 둘러본 해파리는 아마 자신도 헤엄치기 위해 태어났을 거라고 생각해버리고 만다. 그래서, 하느작하느작. 맥아리 없는 몸으로 열심히 헤엄친다. [이게 내가 살아있는 이유야] 해파리는 별다른 고민 없이 눈에 보이는 광경을 자신의 것이라고 믿었다 그 믿음을 의심하지 않았고, 의심하기를 거부했다. 내가 뭔지는 중요하지 않고 어쨌든 세상의 일부가 되어서 이 풍경에 잘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로 열심히 헤엄친다. ‘헤엄쳐야 존재하니까.’ 다만 요 젤리 같은 내면에서 해파리의 모든 마음을 지켜보아 온 내가 덧붙여보자면, 이 믿음은 이렇게 말해야 더 정확할 것 같다. ‘헤엄쳐야 내가 존재한다는 게 증명되니까.’ 다만 해파리는 왜 자신이 그런 증명을 해야 하는 건지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나를 의심하는 건 버겁고 두려운 일이니까.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 해파리는 자신에게 물살을 파고들며 헤엄칠 만큼의 힘이 애초에 없었다는 걸 죽음의 문턱 - 이라고 지친 해파리는 생각했다 - 에서 겨우 깨달았다. 상어처럼 튼실한 몸을 가진 것도 아니고, 작은 물고기도 있는 그 흔한 지느러미도 없다. 문어처럼 똑똑하지도 않고, 가진 거라곤 물렁물렁한 몸뚱어리와 흩날리는 촉수뿐이다. [상어가 콱 씹으면 뭘 씹은 건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하찮은 몸이야] 곧 독백에 한없이 가벼운 액체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톡 건드리기만 해도 휘청이며 찰랑- 말간 소리를 속삭이는 투명한 것이 한 방울씩 가득하게. 그것은 잔의 가장자리에 다다라 아슬아슬하게 맺히더니 이내 넘쳐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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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당연한 사실에 충격을 받은 해파리가 멀거니 부유하는 사이, 커다란 파도가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다. 이미 공허함으로 가득 차서 아무 생각 할 수 없는 상태인데도 습관인 건지 해파리는 휩쓸리지 않으려 온몸에 잔뜩 힘을 실었다. 잡을 수 없는 제 곁의 물결을 붙잡-았다고 상상으로 믿-으며 불안에 떨었다. 그런데, 아니지. 아니야. 해파리는 갑자기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 별다른 힘도, 유의미한 무게도 없는 해파리는 파도 크기만 한 그대로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내가 왜 버텨야 하지] 하얀 파열음을 토하는 물살에 휘말리는 거친 광경 속에서 해파리는 난생처음 가장 침착하고 차분한 질문을 되뇌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죽겠구나. 나는 너무 약해. 뭔가 잘못됐다. 내가 잘못 태어났다.]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는 답답함은 쉽게 분노가 되었다. 갑자기 예민해진 해파리는 부서지는 파도 끝에 달린 먼지 같은 공기 방울이 머리를 간지럽히는 것만으로도 바르르 떨며 투덜거렸다. 투덜투덜. 해파리 주변에는 그보다 더 많은 공기 방울이 피어올랐다.


가만히 있으면 독백 속의 고요한 물낯을 지킬 수 있을 텐데. 마음이 구태여 이리 기울고 저리 기울어지며 가만히 잘 있는 독백을 넘치게 하는 해파리다. 이런 상태에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해파리가 진정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결국 해파리의 투정에 홀딱 젖은 채로 독백 앞에 주저앉는다. 정말 가볍고 맑은 물의 모양새를 하고선, 작은 자극에도 폴짝 튀어 오르는 독백 속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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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리가 심란해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정직하게 흘러갔고, 살아있는 바다도 한결같이 넘실거렸다. 꽤 긴 시간이 흘렀는데도 사라지거나 승화할 기미가 없는 불만을 지겹도록 품은 해파리는 투덜거리는 것마저 질릴 즈음이 되어서야 고민이란 걸 하기 시작했다. [평생 투덜거리다가 죽을 순 없어] 독백 속에 똑 떨어진 단순하기 짝이 없는 마음의 목소리를 보곤 피식- 웃음이 샜다. 하지만 솔직함이란 건 어떤 형태로든 내면에 짙은 무게를 실어준다. 너무도 솔직하게 고백 된 마음 앞에서 해파리는 생각이 많아졌다.


뚝. 시소가 찰나 중심을 잡아 평평해지듯 휘청였던 내면이 불현듯 차분해진다. 해파리는 문득 모든 것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내가 애써 헤엄치지 않아도 바다는 흐를 것이다. 시간도 흐를 것이고,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 한 그 반대의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한참을, 며칠을 고민하던 해파리는 몸에 흐르게 두었던 긴장을 놓아보기로 했다. 늘 불안의 꼬리를 좇던 나로서는 보기 힘든 선택이었다. 이토록 차분해지기. 참 하찮은 듯 하면서도, 분명 적잖은 두려움을 품고서 독백 속으로 떨어졌을 목소리의 움직임을 지켜본다. 그러다 은근히 열이 오르는 듯하면 티포트 속 상념을 부어준다. 그 낯선 선택이 담담한 온도를 지니고 내면세계에 잘 스며들 수 있도록. 그것이 해파리의 새로운 존재 방식이 되기를 소망하며. 근데 아마 쉽지는 않을 것이다. 파르르르르 - [아무 노력하지 않으니 쉽게 망가지고 말 거야] 차분해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여태 한 고민을 그새 까먹고 불안에 벌벌 떠는 해파리를 보니, 분명.


그래도 해파리는 두려움 속에서 가만히 부유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몸에 힘을 풀고 떠다니다 보니 온몸을 감싸는 해류의 움직임이 살갗 위로 선명하게 느껴진다. 처음이었다. 평생을 바닷속에 머물렀는데, 늘 스치고 부딪혀온 것들을 낯설게 맞이한다. [이상해, 이상해]. 해파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흐름’을 인식한 것이다. 여태 곁에 있었던 것을 너무도 새삼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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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단 한 번도 멎은 적이 없었다.

모든 게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그것만은 믿어볼 만한 사실이었다.


헤엄치지 않고 떠다닌다. 물과 자신만 공존하는 시간. 해파리는 여전히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었다. 낮에서 밤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나른하게 거듭되는 호흡으로, 서로 다른 온도를 지닌 해류를 건너며, 이따금 낯선 것과 조우하는 순간을 삶의 크고 작은 기점 삼으며 살아갔다. 별일 없이 잘 있다가도 이유 모를 불안에 떨곤 하지만, 그럴 적마다 눈을 뜨면 보이는 한결같은 바다와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다 모르겠지만 지금은 꽤 평화롭다고, 불안이 편안하게 흘러가도록 천천히 되뇐다. 해파리가 그러는 동안 나도 가벼운 불안은 억지로 붙잡지 않고 스스로 사라질 수 있도록 놓아주는 연습을 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내게도 해파리에게도 오묘한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존재한다 해서 망가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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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면의 차원을 벗어날 수 없다. 해파리가 어떤 사건을 겪든 간에 나는 다가갈 수 없는 거리를 두고 관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하지만 이곳 내면의 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읊어볼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니까. 감정, 상념, 느낌, 떨림, 몇 가지 단어로는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모호한 내면의 상태들을 보듬어 주며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것. 나는 그런 것들을 조우하고 살펴보며 살아간다.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싸구려 초콜릿 향이 나는 호박색의 불안이나, 공허하게 찰랑이는 내면의 목소리 같은 것들을 말이다.


차분한 마음이 아닌, 존재를 뒤흔드는 ‘내면의 상태’는 대개 뜨거운 온도를 지닌다. 그리고 손에 온전히 잡히지 않는 액체 상태인 경우가 많다. 대체로 그렇다는 거지, 언제 어떤 형태의 상태가 흘러들어오고, 제멋대로 승화하는 사건을 일으킬지 예측할 수 없는 곳이 여기 내면이다. 나는 그 상황에 속절없이 휘말리거나 티포트를 가지고선 변화를 시도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소용없을 때는 몽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존재의 내면에 남게 된 것들을 간직하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내면의 안온함을 되찾는 것. 내가 바라는 것은 그거 하나다.


이런 질문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너는 해파리가 계속 살아가기 위해 존재하는 녀석이냐고. 조금은 맞고, 조금은 아니다. 넓게 보면 해파리로서의 삶도 결국 내가 살아가기 위해 도달한 또 다른 몽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다소 부족한 설명이겠다만, 영혼을 지닌 존재에겐 서로 다른 외면의 삶과 내면의 삶이 분명 존재하고 동시에 이 둘은 같은 삶이기도 하단 걸 상상할 수 있다면 내 대답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명확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영혼의 경계선 위에서 나는 모호하고, 모호해서 망설이게 되는 것들을 사랑해서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


내면세계는 무엇인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무어라 이름 붙여주기도 전에 밀려 들어온 온갖 흐름과 목소리가 가득한 곳이다. 불쑥 침범해 마음을 괴롭게 헤집다가도 힘을 내서 읊어주지 않으면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리는 허무함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으려는 마음이 또렷이 박동하는 곳이기도 해서 분명한 형태를 띤 목소리와 사유가 반짝이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마 이제부터 이런 것들을 당신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해파리 몰래 경계의 법칙을 거스르고 이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 눈을 감고 쉬고 있던 해파리는 그새 더 멀리 나아갔다. 아주 가만히 파도를 타고서, 다시 저 멀리로. 아마 잠에서 깨어나면 많이 바빠질 테니, 나도 잠시 쉬어볼까 한다. 여태 나와 시선으로 함께해준 당신도 이제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려도 좋다. 해파리의 독백이 생동하려는 기미를 보이면, 그때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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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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