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각장애인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녹음봉사 [문화 전반]

글 입력 2024.06.14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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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녹음봉사를 시작한 지도 4개월이 다 되어간다. 녹음봉사란 다른 말로는 낭독봉사라고도 하는데, 책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이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이다. 즉, 책의 내용을 낭독하고 녹음하여 시각장애인들이 독서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내가 다니고 있는 대학에서는 한 학기마다 녹음봉사자를 모집하고 있다. 작년부터 하고 싶긴 했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다가 더 미뤘다가는 계속 안 할 것 같아서 바로 지원해버렸다. 그리고 일주일 뒤 합격 메일을 받았다. 지원할 때 2분 정도의 간단한 녹음 파일을 제출해야 했는데, 급하게 제출해야 했던 상황인지라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그로부터 또 일주일 뒤에 OT를 들었고, 막상 낭독하는 방법을 자세히 들으니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이때는 드디어 나도 녹음봉사를 해본다는 설렘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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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첫 녹음부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일단 첫 번째 문제는 내가 낭독해야 하는 책 속에 등장인물이 너무 많았다. 즉, 인물마다 목소리를 달리해야 하므로 목소리 변화를 많이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녹음봉사가 처음인 점을 생각하지 않고 무슨 자신감인지 소설을 고른 탓이었다. 심지어 일본 소설이었기에 각 인물들의 성별이 무엇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이어서 두 번째 문제는 침 소리, 숨소리 등 거슬리는 소리가 많았다. 녹음할 때는 분명 괜찮았는데, 녹음본을 들어보면 생각보다 거슬리는 소리가 많이 들어갔다.


하지만 첫 녹음이기도 했고,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조금 심란하게 첫 녹음을 마치고 바로 다음 녹음 날짜를 예약했다. 그리고 책 내용이 익숙해지면 좀 나을까 싶어서 다음 녹음 날짜 전까지 녹음할 부분을 미리 연습해 갔다.

 

다행히 그 이후부터는 낭독이 익숙해졌는지 갈수록 술술 넘어갔고, 등장인물마다 목소리의 변화를 주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 같은 분량에 대해 이전보다 녹음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고, 거슬리는 소리도 거의 없었다.


그렇게 수월하게 진행되는가 싶었지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녹음된 목소리에 영혼이 없다는 점이었다. 뒤로 갈수록 녹음본 속 내 목소리가 그 전에 녹음된 목소리보다 딱딱하게 느껴졌다. 거슬리는 소리도 없고 술술 넘어간 뒷부분보다 서투르지만 부드러웠던 앞부분의 녹음본이 훨씬 듣기 좋았다.

 

그리고 문득 OT 때 복지관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낭독의 기본자세가 생각났다. 낭독할 때 안정적인 발성과 정확한 발음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점이 있었다.


우선, 가장 중요한 점은 시각장애인들은 독서를 하기 위해서 오로지 녹음 파일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에 따뜻하고 변화가 있는 억양으로 낭독해야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사랑하는 이에게 책을 읽어준다는 마음으로 낭독하면 된다고 하셨다.

 

또한, 소리만 듣고 제목, 문단, 문장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도록 제목과 문단 사이는 2초, 문장과 문장 사이는 1초 정도의 호흡을 주는 것이 좋고, 비장애인 기준에서의 1초가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들었을 때는 2초 이상의 공백이 느껴지기에 조금 더 빨리 낭독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더하여 후반부로 갈수록 낭독하는 목소리에 성의가 없어지는 경우가 꽤 있어서 주의해야 한다고도 하셨다.


뒷부분의 지루하고 딱딱한 녹음본을 들으며 낭독의 기본자세를 떠올리니 낭독을 끝내기에 급급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분명 처음에는 시각장애인들이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그 마음보다 의무감이 앞서서 가장 중요한 자세인 사랑하는 이에게 읽어준다는 마음과 따뜻하고 변화가 있는 억양, 그들이 느끼는 1초를 잊고 있었다.


그렇게 초심과 앞서 언급한 중요한 자세를 되새기면서 이후 녹음할 때는 내 앞에 있는 소중한 사람한테 직접 읽어주듯이 미소를 머금고 한 문장마다 따뜻하고 정성스럽게 읽으려고 노력했다.


평소 내 목소리와는 조금 다른 목소리로 따뜻하고 변화가 있는 억양을 내는 동시에 또박또박 발음하는 과정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쉽진 않지만, 어려운 만큼 녹음본을 다시 들었을 때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 들어 뿌듯했다. 다행히 그 노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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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여 직접 녹음봉사를 하면서 인공지능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음에도 녹음봉사자를 계속 모집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아무리 날이 갈수록 인공지능이 기계적인 목소리만 낼 수 있던 것을 빠르게 극복하고 자연스러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해도 누군가를 위한다는 마음은 구현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문화예술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장애인은 문화예술을 온전히 즐기기 힘든 것이 현실이고, 그들이 원하는 문화예술을 선택하고 편안하게 향유할 수 있는 경우는 현저히 적다. 그래서 녹음봉사처럼 장애인도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이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문화예술은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과 소통하게 하는 역할을 하니까 말이다.

 

기회가 된다면 녹음봉사에 지원해보길 바란다. 혹여나 본인이 녹음봉사를 하기에는 목소리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녹음봉사는 재능기부라고도 하지만, 여기서 집중해야 하는 단어는 재능이 아니라 기부이다. 진정한 기부가 되기 위해선 재능 과시가 아니라 앞서 말한 것처럼 봉사 대상자를 위하는 마음과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이 세상 속 많은 이들이 문화예술에 있어 소외당하지 않고 다양하게 향유할 수 있도록, 더 나아가 문화예술을 향유하며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녹음봉사와 같은 활동이 많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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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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