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고양이가 떠났다

글 입력 2024.06.1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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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의 얼굴을 기억해.

보드랍고 따뜻하던 너의 몸을 기억해.

짤막한 꼬리와 목뒤에 숨겨져 있던 땜빵 자국.

뒤뚱거리던 발걸음.

호기심으로 반짝였던 녹색 눈.

나를 깨우던 새벽녘의 울음소리.


그 위로 흐르는 시간.

뿌애져가는 기억, 무뎌지는 슬픔.

미처 전하지 못했던 마지막 인사.

단절, 


미안해. 그리고 고마웠어.

안녕히.

 

 

 

2.


 

시간이 빠르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어느덧 무더운 계절의 초입에 서 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네가 떠난 지 꼭 49일이 되는 날이었다. 

 

 

 

3.


 

그날을 떠올린다.


늦은 새벽이었다. 몇 시간 전 마셨던 술 때문에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핸드폰이 요란하게 떨렸다. 엄마로부터 온 전화였다. 이 시간에 갑자기? 의아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엄마는 침묵했다. 잘못 걸린 걸까. 소리 내어 엄마를 불렀다. 이윽고 신음하듯 쥐어짜는 목소리로 엄마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에 알딸딸하던 머리가 맑아졌다.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무슨 일이냐고 엄마에게 물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엄마는 너의 이름을 불렀다. 네가 많이 아프다고 했다.


여느 때처럼 평범한 저녁이었다. 너는 평소처럼 늦은 시간까지 안방에서 낮잠을 잤다. 너를 맨 처음 발견한 건 동생이었다. 안방에서 나오던 네가 좀처럼 몸을 가누지 못했다고 했다. 너조차도 이런 스스로가 당황스러웠던 건지 애처로운 목소리로 가족들을 찾았다. 가족들은 곧바로 너를 안아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안타깝게도 나의 고향은 작은 소도시라 24시간 동안 하는 동물 병원이 없었다. 그나마 가까운 병원은 집에서 2시간 거리였다. 너를 구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기 위해 아버지는 미친 듯이 엑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상황을 설명하던 어머니는 의사가 부른다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기차표를 알아보았다. 비행기표도 알아보았다. 애가 탔다. 왜 하필 그 다음 날이 금요일이었던 걸까. 웬만한 표는 이미 매진이었다. 빨리 너에게 가야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엄마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엄마는 울고 있었다. 머리가 멍해졌다. 그 울음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의사 말로는 손을 쓰기에 너무 늦었다고 했다. 아마도 그전부터 네가 아팠을 거라고 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수화기 너머에선 의사로 보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장례 절차를 안내해 주고 있었다. 엄마에게 네가 정말 떠난 거냐고 다시 물었다. 엄마는 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그런 것 같아… 아직도 이렇게 따뜻한데…”


누워있는 내내 너의 얼굴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네가 떠났다니. 한 달 전 집에 내려갔을 때만 해도 침대에서 멀쩡히 나를 맞이해주던 너였는데 그런 네가 떠났다니. 어안이 벙벙했다. 


결국 그날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사실 그날은 네가 팀원들에게 처음으로 퇴사 소식을 알린 날이었다(술을 마셨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이별이 하나 더 있었을 줄이야. 그 대상이 하필이면 너였을 줄이야.

 

 

 

4.


 

아침이 되자마자 회사에는 반차를 올렸다. 운 좋게도 2시 기차를 예매할 수 있었다. 고향 역에 도착하니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 타는데 뒷좌석에 앉은 엄마의 무릎 위 커다란 스티로폼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저 안에 네가 있는 걸까. 가슴이 쿵쾅거렸다. 애써 눈길을 피하며 벨트를 맸다. 아빠는 부드럽게 차를 몰았다. 너를 보내주러 가는 길이었다.


장례식장은 역으로부터 1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굽은 시골길을 통과하자 언덕 위 아담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장례지도사 한 분이 우리를 맞이했다. 동생은 그분께 네가 든 상자를 건넸다. 안내 데스크의 직원은 상담을 도와주겠다며 우리를 상담실로 안내했다. 그 사이 장례지도사는 상자를 열었다. 가족들을 먼저 들여보낸 채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침내 네가 보였다. 잠든 것처럼 편안한 얼굴로 네가 거기 누워 있었다.


장례지도사가 상자를 치우러 간 사이 가만히 너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너의 몸은 여전히 보드라웠지만 싸늘했다. 그 냉기가 더 이상 네가 우리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네가 떠났다는 게. 마지막 인사를 건넬 기회조차 없이. 목구멍이 뜨거웠다. 한발 늦은 울음이 그제야 터져 나왔다. 마스크를 쓰고 와서 참 다행이었다.


장례식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모르겠다.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속이 황망했다. 모든 게 끝났을 때 바깥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보드랍던 너의 몸이 흰 가루가 되어 작은 함에 담겼다. 장례지도사는 너를 납골함에 넣고 봉했다. 이젠 정말 안녕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내내 너를 생각했다. 혼자 있는 걸 싫어했던 아이. 어둠을 무서워했던 아이. 그래서 모두가 잠든 새벽이면 너는 거실에서 구슬프게 울며 가족들을 찾았다. 그러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으면 내 침대에 올라와 놀아달라며(혹은 밥을 달라며) 나를 깨웠다. 그럼 나는 꼼짝없이 일어나 너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네가 외로워하지 않도록. 무서워하지 않도록. 그런데 그런 너를 거기에 홀로 두고 이렇게 우리만 돌아가야 한다니. 많이 외로울 텐데. 많이 무서울 텐데.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현실이 참 서러웠다.


다음날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기차를 예매했다. 그렇게 도망치듯이 집을 떠났다. 토요일이었기에 하루 더 있다 가도 상관은 없었지만 네가 없는 그곳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5.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예고한 대로 회사를 떠났다. 이직이 아니라 아파서 떠난 거라 당분간은 본가에 머물며 쉴 작정이다. 서울 집은 더 이상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했다.


본가에서의 시간은 느릿하게 흘러간다. 나를 재촉하던 메일도, 전화도 없으니 마음이 평화롭다. 다만 흠이 있다면 네가 없다는 것뿐. 아침에 일어나면 나도 모르게 안방을 바라보게 된다. 안방 침대에서 잠들기를 좋아했던 네가 여전히 거기 있을 것만 같아서. 물론 그 기대는 문을 여는 순간 박살이 나겠지만 습관이란 건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13년간 우리가 너를 길들인 줄 알았는데, 너 역시 우리를 길들이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요즘이다.


너를 보내고 처음 맞이한 밤을 기억한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방문 너머 거실에서 여전히 네가 돌아다니고 있을 것 같았다. 조금 있으면 네가 방문을 밀고 들어와 나를 찾을 것만 같았다. 허나 그런 기적은 일어날 리가 없었다.


누군가의 빈자리는 시각이 아닌 청각으로 먼저 다가왔다. 겁도 많고 외로움도 많았던 너는 가족들이 모두 자러 들어간 새벽녘이면 거실에서 울며 온 가족을 깨워댔다. 그런데 이제 네가 없으니 밤새 조용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소음은 다름 아닌 ‘침묵’이라는 걸. 그건 귀를 막아서 해결될 수 있는 종류의 소음이 아니었다. 그 소음의 주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상실감이었으므로.

 

 

 

6.


 

소방서에서 일하는 동안 거의 매일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떠나간 이의 사연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지나간 과거에 연연할 게 아니라, 다가올지도 모르는 미래에 기대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그래야 언젠가 다가올지 모르는 그날에 조금이라도 덜 후회할 수 있을 거라고. 소방서를 떠난 후에도 그 결심이 달라진 적은 없었다. 그런 이유로 감히 죽음에 대해 모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잘 안다고 자부했다. 


허나 막상 다가온 그날 앞에서 나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미처 전하지 못한 말과 행동들이 가시가 되어 내 속을 쿡쿡 찔렀다. 좀 더 잘해줄걸. 더 많이 놀아줄걸.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걸. 네가 새벽에 나를 깨웠을 때 짜증 부리는 대신 꼭 안아줄걸. 이럴 줄 알았으면 퇴사를 미루는 게 아니었는데. 너를 데리고 한 번이라도 병원에 가보는 거였는데. 너와의 순간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벌로 나에겐 마지막 인사를 건넬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았구나.


가족들은 이제 너의 부재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모양이다. 그러나 지난주 내려온 나에게 너의 부재는 여전히 낯설고 힘들다. 오늘도 벌써 두 번이나 나도 모르게 널 찾았다. 아무래도 나에겐 시간이 좀 더 필요한 모양이다. 견디는 과정이 쉽지 않긴 한데 그래도 다행이지 싶다. 사실 나는 아직 너를 완전히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거든.


책상 밑 서랍 안엔 네가 종종 베고 자던 인형이 있다. 3년 전쯤 기차역 근처 펫숍에서 직접 사서 네게 선물했던 바로 그 인형이다. 다음에 너를 만나러 가면 네 봉안실에 이 인형을 넣어주려 한다. 잠이 많은 네가 이 인형을 베면 조금이라도 편히 자지 않을까 싶어서.


보리야. 우리 이쁜 보리야. 너와 함께 했던 13년이 우리에겐 인생 최대의 행운이었어. 우리에게 와줘서 고마워. 나의 행운이 되어줘서 고마워. 언젠가 나도 그곳에 가면 너를 제일 먼저 찾을게. 그러니까 우리 그때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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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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