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직업이란 무엇일까. 어려운 질문이다. 사람마다 좋은 직업을 매기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소득을, 다른 누군가는 명예를 중요하게 여길 수 있다. 적성이나 흥미를 우선적으로 보는 사람도, 개인의 신념이나 사회적인 영향력을 더 높게 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어렸을 땐 적성이나 흥미를 더 중요하게 보았다. 그래서 작곡가가 되고 싶었다. 물론 그 꿈은 실패했지만 그 영향으로 대학에서는 문화콘텐츠를 전공했다. 반면 대학에 와서는 소득 같은 현실적인 조건들을 더 따져보았던 것 같다. 당시 나는 영화나 출판 쪽에 관심이 많았지만 애석하게도 이것들은 대학생인 내가 보기에도 이미 사양산업이었다. 그렇게 조건들을 하나둘씩 따져보니 남은 게 ‘광고’였고, 덕분에 지금까지도 광고로 먹고살고 있다.
물론 사람의 마음이란 갈대 같아서 진로를 결정한 이후에도 이 일이 나에게 정말 맞는 일인지, 괜찮은 일인지 계속 고민했다. 그래서 건강 때문에 일을 잠시 쉬었던 작년에는 아예 직종을 바꾸려는 고민도 했었다. 그때 내가 눈여겨보았던 건 소방공무원이었다. 군 복무를 소방서에서 하기도 했었고, 무엇보다 일에서 오는 보람감이 좋았기 때문이다(허나 아쉽게도 내가 오래 쉬는 걸 두고 보지 못했던 지인 덕분에 또 다른 회사로 끌려가서 여전히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이렇듯 좋은 직업에 대한 기준은 나에게도 항상 고민이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정말 괜찮은 일인지, 만약 그만둔다면 무얼 하며 먹고살아야 하는지. 남들보다 일을 빨리 시작했기 때문일까. 앞에서 말한 것처럼 돌이켜 보면 항상 이러한 고민들에 매달려 있고, 지금도 여전히 답을 구하는 중이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고민들이 무의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답이 없는 일에 정답을 찾으려는 무모한 시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모든 직업은 이롭다. 특정 직업이 존재할 수 있는 건 그 일을 돈을 주고서라도 누군가 해줬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의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인식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모든 직업은 나름대로의 유용함과, 다른 직업으로는 대체하기 어려운 고유성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좋은 직업’ 대신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건 무엇일까. 이 물음에 답해줄, 내가 겪은 일화가 하나 있다. 소방서에서 일할 때였다. 퇴근길에 통근버스가 언덕 밑으로 굴러떨어졌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십수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여 인근의 여러 병원에 환자를 나눠 수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내가 탄 구급차는 귀가 찢어진 열상 환자를 이송했는데 첫 번째 병원에서 해프닝이 발생했다. 당시 해당 병원은 응급실 입구가 공사 중이라는 이유로 웬만하면 수용을 거절하고 있었다. 이에 우리가 이곳 말고는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원이 없다며 사정을 설명했지만 의료진은 끝내 우리를 거부했다(사실 이전에도 해당 병원과는 종종 트러블이 있었다). 결국 우리는 다른 지역에 있는 의료원으로 환자를 이송할 수밖에 없었고, 환자는 약 두 시간 동안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함께 일한 소방관들 중에서도 이상한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소소한 부정(?)과 직장 내 괴롭힘 등등. 특정될까 두려워 자세히 말은 못 하지만 모든 소방관이 영웅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이러한 일들을 겪으며 내 마음속엔 한 가지 기준이 세워졌다. 좋은 직업을 갖는 것보다 좋은 직업인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 의사, 간호사, 소방관 모두 숭고하고 가치 있는 일이지만. 그 일을 하는 건 결국 사람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쯤에서 ‘직업윤리’를 꺼내들 수밖에 없다.
(출처 - 워너브라더스)
‘직업윤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떠올리는 좋은 영화가 있다. 바로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이다. 지난 2009년, US 에어웨이즈 1549호가 버드 스트라이크 후 허드슨강에 비상 착수한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다. 개인적으로 가장 백미로 여기는 장면은 NTSB(미국 연방 교통안전위원회)의 청문회 시퀀스다. 여기서 설리는 허드슨강에 비상 착수한 결정이 정말 옳았는지, 오히려 승객들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린 건 아닌지 강도 높은 조사를 받는다. 영웅이 핍박을 받는, 고구마가 가득한 시퀀스라 영화를 본 대부분의 이들은 아마도 이 장면을 싫어할 것이다.
허나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른데 그 이유는 다른 영화들과 달리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있다. 일반적인 영화감독이었다면 설리와 NTSB의 갈등을 부각시키기 위해 조사위원들 중 한 사람은 설리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다는 설정을 추가했을 것이다. 아니면 설리가 회사와 갈등이 있었고, 이참에 회사가 눈엣가시인 설리를 내쫓기 위해 NTSB와 음모를 꾸미는 장면이라도 넣었을 것이다. 허나 이 영화에는 그런 요소들이 일절 없다. 회사와 직장 동료들은 설리가 조사를 잘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의 도움을 제공하고, NTSB의 조사위원들도 청문회 과정에서 언성을 높이는 등의 감정적인 면모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오히려 그들은 청문회가 끝난 후 설리를 진정한 영웅이라며 치켜세웠다).
그렇다면 NTSB는 왜 그렇게 설리를 가혹하게 대했던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게 바로 그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혹시 모를 과실의 가능성을 철저히 조사하고 검토하여, 이후에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조종사들에게 최적의 선택지(매뉴얼)을 제공하는 것. 그게 바로 NTSB의 일이고, 영웅을 핍박한다는 비난을 들을지언정 반드시 지켜야 하는 ‘직업윤리’다. 사고 당시 부기장인 스카일스가 열심히 뒤져보던 ‘긴급참조교본’도 NTSB의 지난한 조사를 통해 탄생한 결과물일 것이다. 그리고 이번 조사를 통해 설리의 비상 착수 사례도 교본에 실려 이후의 사고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출처 - 워너브라더스)
영화 말미, 기장님이 없었다면 실패했을 거라는 한 조사위원의 말에 설리는 이렇게 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 같이 해낸 겁니다.” 다시 말해 그날 허드슨강에서 벌어진 기적은 한 사람의 노력으로 탄생한 결과물이 아니었다. 설리를 비롯해 마지막까지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졌던 US 에어웨이즈 1549호의 승무원들, 비상 착륙을 돕기 위해 마지막까지 US 에어웨이즈 1549호와 교신을 시도했던 항공관제사, 사고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구조대 민간선박의 선원들. 마지막으로 철저한 검증을 통해 보다 완벽한 매뉴얼을 만드는 NTSB까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직업윤리가 모여 전원 생존이라는 허드슨강의 기적을 만든 것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좋은 직업이란 무엇일까. 거기엔 정답이 없다. 소득, 명예, 개인의 적성, 흥미 등등의 이름을 가진 자동차를 타고 각자가 알아서 도달할 영역이기 때문이다. 대신 거기까지 가는 동안 사고가 나지 않도록, 신호를 위반하거나 누군가가 다치는 일이 없도록 안전벨트가 필요한데 그건 직업윤리의 몫이다. 그리고 우리가 되어야 하는 건, 또한 우리 사회 가져야 하는 건 그런 직업윤리를 지닌 ‘좋은 직업인’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정말 괜찮은 일일까. 만약 그만둔다면 무얼 하며 먹고살아야 할까.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이 고민들은 앞으로도 계속 안고 갈 것 같다. 다만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평하기 전에, 그 일을 하고 있는 나부터가 좋은 직업인인지. 나의 직업윤리는 여전히 무사한지(내가 정의한 나의 직업윤리는 ‘모두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다. 광고주와 소비자가 모두 만족해야 내게 일이 끊기지 않을 거고, 그래야 나도 이익을 볼 수 있을 테니). 다행히 아직까진 그러려고 노력은 하는 것 같다. 내가 찾은 답(직업윤리)이 아직은 유효한 것 같다. 그리고 그덕에 이렇게 또 하루를 무사히 넘긴다.
살만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결국 저마다의 직업윤리. - 이동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