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끝나지 않을 희망과 사랑을 노래하는 음악극 '섬:1933~2019'

글 입력 2024.06.15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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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시대에 걸친 편견과 차별의 역사


 

지난 2019년, 우란문화재단과 목소리 프로젝트가 초연을 올렸던 음악극 <섬:1933~2019>. 이 작품은 역사 속 인물의 삶을 조명하며, 우리가 간직해야 할 동시대 목소리를 전해 찬사를 받았다. 약 5년 만에 국립정동극장과 라이브러리컴퍼니가 재연하는 음악극 <섬:1933~2019>는 그날의 뜨거운 감동을 다시금 전하고 있다.

 

여기서 목소리 프로젝트는 '선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귀감이 될 수 있는 삶'을 살았던 인물들의 어문 자료를 통해 해당 인물의 삶과 사상을 무대에 복원하려는 취지로 장우성 작가, 이선영 작곡가, 박소영 연출가가 결성했다.

 

이러한 목적에 맞게 '소록도 천사'로 불리며 1966년부터 2005년까지 40여 년간 한센인들을 위한 희생과 헌신을 아끼지 않았던 실존 인물 '마리안느 스퇴거'와 고(故) '마가렛 피사렉' 간호사의 이야기를 중점으로 풀어나간다.

 

 

[국립정동극장] 섬1933-2019_공연사진 (2) ⓒ국립정동극장, 라이브러리컴퍼니.jpg

 

 

음악극 <섬:1933~2019>는 세 개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우리 삶 속에서 편견과 차별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보여준다. 1933년부터는 '소록도'로 강제 이주를 당한 한센인들의 삶, 1966년부터는 고통받는 한센인들을 따스하게 보살폈던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삶, 2019년부터는 '장애도'라는 섬에서 사는 발달장애 아동 가족들의 삶이 교차적으로 펼쳐진다.

 

더불어 1인 다역 합창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극으로, 무대 위 12명의 배우는 30여 명의 목소리를 소화한다. 이에 이선영 작곡가는 "목소리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폭력의 목격자로, 사랑의 증언자로, 도전의 응원자로 곁에 선다."라고 설명한다. 그렇게 서로 다른 목소리들은 섬에서 하나로 모여 끝나지 않을 사랑과 희망을 노래한다.

 

 


설명이 필요 없는 작품


 

음악극 <섬:1933~2019>을 보고 나온 후, 좋은 작품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뇌리를 스쳤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확고한 의사 표현인 "좋다"가 절로 입 밖에 내밀어졌다. 그동안 호(好)를 표했던 작품들만큼 충격적이고 압도적이진 않았으나, 극을 구성한 모든 언어가 마냥 좋게 느껴졌다.

 

아울러 좋은 작품에 좋은 배우들이 뒤따라오듯 섬에 사는 인물들은 따로 또 같이 호흡하며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특정한 누군가를 연기하는 느낌보다는 실로 각자의 시간대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목소리 높여 말하는 듯했다. 그 정도로 몰입감 있고 생동감 넘치는 퍼포먼스에 감탄을 연발했다.

 

섬은 1인칭 시점이 아닌 3인칭 시점으로 흘러간다. 다른 시간에 존재하는 네 명의 인물(백수선, 마가렛과 마리안느, 고지선)을 가까이 지켜보는 목소리가 그들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관객의 입장에서는 각각의 인물과 이를 아우른 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사고하게 된다. 특히 2010년대에 진행되는 특수학교 설립에 대한 찬반 토론은 현실과 더욱 맞닿아 있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국립정동극장] 섬1933-2019_공연사진 (5) ⓒ국립정동극장, 라이브러리컴퍼니.jpg

 

 

찬반 토론은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를 심판하는 게 아니다. 하나의 안건에 대해 입장 차이만 있을 뿐 감히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렵다. 물론 장애인 아동을 둔 학부모에게 가시 돋친 발언을 하는 반대 측 사람들을 고운 시선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반대 측 사람들도 각자만의 이유가 있다. 그것이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정의로운 선택은 아닐지라도 정당한 대가를 거머쥐면서 좀 더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찬성 측에서 울부짖는 고지선의 경우에도 발달장애를 가진 지원이를 낳기 전에는 장애인에 대해 공감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러다 자신이 같은 입장에 처하자, 과거에 한 행동을 후회하며 전면적으로 달라졌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지하철에서 시끄럽게 달리는 지원이를 제지하지 않고, 외려 자신도 함께 뛰어다니며 온몸으로 아이를 체득했다.

 

그리고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때 지원이와 자기를 본 사람들은 처음에는 흘깃했지만, 얼마 안 있어서 관심을 거두기 시작했다고. 그러니까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이러한 상황에 적응한다면, 우리 모두가 잘 지낼 수 있다고 호소한다.

 

실상 사람은 진화론적 관점에 따라 본능적으로 낯선 것을 거부하는 습성이 있다. 그렇기에 1930년대에는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을 소록도로 추방했고, 2010년대에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장애도로 밀어냈다. 고지선의 목소리가 말하는 '다름', 즉 차이를 인정하는 세상이 온다면 찬반 토론 없이도 더 많은 장애 아동이 교육받을 기회가 생길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의 무게


 

지상낙원이라 속인 섬에 갇힌 사람들의 삶은 아름다우면서도 애통한 합창을 통해 표현된다.

 

먼저 '바람을 등지고'는 갱생원을 배경으로 한다. 이곳에서는 병균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한센병에 걸린 부모와 아이를 분리했다. 오직 한 달에 한 번, 아이들은 바람을 등진 채로 부모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어느 누구보다 가까울 그들이 거리를 둔 채 안부 인사를 묻다가 작별할 시간이 되어 그간 하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내는 장면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서로에게 잘 지내고 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이것이 착한 거짓말이란 걸 알기에 더욱 눈물겹다.

 

다음으로 '세 번 죽는다'"몰라서 3년, 알고서 3년, 썩어서 3년"이라는 가사가 원망과 분노가 섞인 배우들의 목소리로 표현된다. 극에서는 본인의 감염 부위에 따라 스카프 색깔, 종류, 위치가 조금씩 다르다. 이러한 스카프를 한 명에게 얼기설기 묶어서 못 움직이게 만드는 안무로부터 '천국도'가 아닌 '지옥도'에서 하루하루 버티는 한센인들의 처지를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시작과 끝을 장식하며 극의 메시지를 가득 담고 있는 '사랑이 머물던 시간'은 섬에 머물면서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서로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시간 또한 존재했음을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소록도에서, 다음에는 서울에서 펼쳐지는 '사랑이 머물던 시간'은 시대를 뛰어넘어 사랑이란 소중하고 보편적인 가치는 어떤 누구에게나 있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을 지킬 수 있던 건 긴 시간 한센인들을 위해 살았던 마가렛과 마리안느의 노력 덕분이다. 머나먼 오스트리아에서 와서 병에 걸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흔쾌히 다가서며 희망을 불어넣어 준 그들은 한센병에 대한 인식까지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인생의 절반인 40년 넘게 월급까지 아껴가며 환자를 위해 매일 따스한 우유 한잔을 건넨 두 간호사의 사랑의 무게는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다.

   


[국립정동극장] 섬1933-2019_공연사진 (1) ⓒ국립정동극장, 라이브러리컴퍼니.jpg

 

 

"불멸의 희망은 보고 느껴져야 하며 우리는 희망 속에 살아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입증했던 마가렛과 마리안느는 수많은 한센인의 생명을 구했다. 이러한 용기의 목소리는 시공간을 넘어 현재를 사는 고지선의 귓가에도 닿았을 것이다.

 

물론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아픈 이들을 향한 냉소적인 시선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얼룩진 세상에서도 단 하나의 빛을 찾아 나서는 목소리 또한 끊이지 않았다. 2010년대의 백수선이 고지선에게 할 수 있는 걸 하라고 외치는 것처럼, 우리네 섬의 사람들은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사진 출처: 국립정동극장, 라이브러리컴퍼니

 

   

[최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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