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문득 드는 후회가 있다. 남들의 부름 한 번에 퍼뜩 정신 차리고 털어낼 수 있는 가벼운 후회부터, 자기 전 꼭 밤잠을 설치게 되는 진하고 깊은 후회까지.
후회의 범위도 다양하다. 하루를 보내고 나서, ‘오늘 십 분만 더 일찍 일어나서 여유 있게 나갈걸’‘아, 오늘 그 말은 굳이 하지 말걸’ 하는 후회를 한다. 오늘이 지나면 대개 해결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후회의 시계를 더 과거로 돌린다면? 일주일 전, 한 달, 일 년, 십 년 전까지 두고두고 후회되는 일들을 떠올리다 보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무릇 후회라는 것은 시간이 쌓이는 만큼 그 무게가 늘어나는 속성을 가졌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그렇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생물학적으로 나이를 먹고, 점점 스스로 더 많은 것들에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듦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는 음악이 항상 그랬다.
남들보다 더 잘나고 싶어 열심히 공부했고, 다행히도 운이 좋아 서울의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런 행운이 무색하게도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꽤나 긴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취업은 해야 하는데, 마땅한 내 자리가 없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지금 와 생각하면 당연한 것도 같다. 내가 미치게 좋아하는 것이 노래밖에 없었다.
늘 mp3에 노래를 꽉 꽉 채워 다니던. 나이에 맞지 않게 슬픈 가사의 발라드를 음미하며 눈물흘리던 초등학생. 하루라도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목에 가시가 돋친 듯 굴던 별난 아이. 그게 나였다. 학교가 끝나고 나면 네이버에 들어가 당시 인기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게 가장 큰 오락이자 즐거움이었던 그런 기억이 있다.
그냥 그렇게 혼자서 죽 노래를 좋아하고 동경해 왔다. 오디션에 지원해 본다던가 노래를 잘한다고 나선다던가 그런 일은 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런 걸 하려면 모든 게 다 완벽해야 하는 줄만 알았으니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이미 충분했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별게 다 걱정됐는지 모르겠다. 나의 첫 번째 후회이다.
시간이 흘러 중학생,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나의 노래사랑은 계속되었다. 아무리 풀기 싫은 수학 문제라도 나의 ‘최애’ 플레이리스트가 있다면 그저 즐거웠다. 5분 남짓한 등굣길에는 고르고 고른 노래 하나를 들으면서 그날 하루의 행복을 시작했다. 그때에도 막연히 ‘언젠가는 TV에 나오는 가수들처럼 노래를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막상 현실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음에도.
고등학생이 되어 입시를 준비하던 고 3.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그만한 고역이 없었다. 내가 지금껏 좋아해 온 건 노래뿐인데, 이제는 많고 많은 학과 중에서 하나를 골라 없던 ‘진심’을 만들어내야만 했다. 학과에 이러이러한 이유로 관심이 생겼고, 그래서 꼭 진학하여 어떤 꿈을 이루고 싶다는 개연성 있는 이야기가 필요했다. 나의 진심은 온통 다른 곳에 있는데 말이다.
그렇게 색다른 ‘창작’의 고통에 시달릴 바에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차라리 용기 내 말할 것을 그랬다. 이게 나의 두 번째 후회다. 학교에서 나는 공부를 곧잘 하는 조용한 학생, 그리고 집에서는 나름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야무진 딸이었다. 음악을 하고 싶다고 선언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부담처럼 느껴졌다.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그때 부모님이 기대하는 것의 전부이자 가장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나를 제외한 모두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나의 길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대학생활을 할 때까지만 해도 나의 꿈은 여전히 살아 있었는데. 인턴으로 근무하고, 본격적인 취업을 준비하면서 점점 내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동경은 언제까지고 환상 같은 네버랜드로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의 발걸음이 이미 그와는 정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으니까. 인턴 경험이 많아질수록 더 그럴듯하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려면 시험을 잘 봐야 했고, 또 그러려면 다시 고 3이 된 것처럼 치열하게 공부해야만 했다.
현실의 우선순위가 마음의 우선순위와 일치하지 않는 날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괴리가 해소되지 못하고 오랜 기간 지속되다 보면 마음의 체력이 떨어지기 쉽다. 그렇게 쌓이는 후회와 마음의 체력고갈로 나는 꽤 힘든 취업기간을 보내야 했다. 자그마치 2년을.
이 글을 쓰는 나도 답답한데, 이 글을 읽는 다른 누군가는 오죽할까.
하지만 얼마 전 이런 후회를 종결할 수 있는 자체적인 결론 보고서를 발간했다. 제목은 ‘초심자의 행운’. 초심자의 행운은 어떤 분야에 막 입문한 초보자가 일반적인 확률 이상의 성공을 거두거나, 심지어 그 분야의 전문가를 상대로 승리하기도 하는 기묘한 행운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까 인생에 비유하자면 대부분 첫 생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이런 엄청난 초심자의 행운 위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원래가 그렇지 않나. 꼭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손 가는 대로 플레이했던 슈팅 게임에서 첫 판에는 생각보다도 고득점을 얻는다. 그런데 당연히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임한 둘째, 셋째 판에서는 첫째 판 만큼의 소득을 얻지 못한다. 나는 우리네 인생도 그와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필연과도 같은 수많은 선택의 기로를 만났다. 그 선택들이 모여 만든 것이 지금의 나라면, 초심자의 행운을 가진 나는 분명히 첫 게임에서 가장 선방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 내가 조금 더 적극적이었더라면’, ‘ 그때 내가 지금처럼 더 단단한 사람이었다면’ 하고 후회하지만, 결국 그때의 내가 한 선택이 최선이었음을 이제는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됐다. 사실, ‘이보다 더 어떻게 잘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과야 어땠든 나는 내 인생에서만큼은 언제나 가장 많은 시간과 최선의 노력을 투자하는 플레이어였다.
언제나 가장 좋아하는 음악보다는 다른 것들만 1순위로 세우면서 살아왔다는 후회로 살아왔다. 하지만 대신에 다른 선택을 했던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인정하며, 또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 들어 어렴풋이 깨달았다. 취업 준비를 하며 헤매는 동안 아무것도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봉사활동에 매진했고, 나는 나의 이타성을 발견했다. 그래서 사회복지학을 새로이 공부한 결과 지금까지와는 또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게임을 플레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이 퍽 마음에 든다.
나의 성격, 말투, 행동, 습관, 콤플렉스까지 내가 사랑하는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나의 그 모든 선택들이었고, 그중 무의미한 것은 없었다. 그것의 가치와 의미를 부정하는 것은 결국 지금의 나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과도 같은 일일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렇게 깊은 후회가 들 때에 우리에게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아주 중요한 변수가 있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된다. 아무것도 모른 채 게임판에 뛰어들었지만, 그 기세로 가장 좋은 흐름의 경기를 펼쳐가고 있는 나와 우리의 수많은 인생이 이제는 어렴풋이 보인다.
후회하더라도 괜찮다. 결국 우리의 선택은 우연이든 운명이든 우리가 가장 원하는 곳, 가장 원하는 자신의 모습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고 말 테니까.
그것이 우리가 이 인생 게임에서 바라는 완벽한 해피엔딩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