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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합주실 425호에는 흰 꽃도 새파란 잎사귀도 있다 - Youn Class Semester Final Recital [공연]

금요일 저녁 7시, 합주실 안쪽 자리에서

by 장유진 에디터
2026.05.3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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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일은 알 수가 없다지만, 이렇게 갑자기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4월 말, 설마 되겠어 했던 곳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고, 그날 바로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나는 얼결에 5월 중순부터 출근하게 된 사람이 되었다.


오랜만에 주어진 짧은 봄방학이었다. 갑작스레 주어진 자유시간 앞에서 나는 뭘 해야 하나 싶었다. 어떻게든 잘 쉬어보자, 하고 운동도 자주 나가고, 가족, 친구들과도 시간을 보내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다닐 곳이 생긴다는 것에 신이 났던가? 글쎄. 그냥 이렇게 되었구나, 싶었고, 오히려 자유시간이 주어지니 왠지 모를 불안감이 더 많이 생겼다.

 

그렇게 출근을 약속한 날이 되었고, 아마 오전 10시쯤부터 크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내가 은연중에 판단했던 업무가 아니었고, 전임자의 퇴사일은 생각보다 빨랐다.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만 하고 있기보다 짧은 시일 내에 반드시 적응해내야만 했다. 그날부터 매 순간을 박제하고, 눈앞에 놓인 서류에 눈독을 들였다.


종종 대화를 나누던 친구들과의 연락도 끊겼고, 집에 오면 꾹꾹 저녁밥을 챙겨 먹었다. 침대에 잠깐 몸을 뉘이면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주말 아침만 되면 어떻게든 산책을 나갔다. 아무 일 없었던 그때처럼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대가 없는 포근함이 때마다 필요했다.


내가 이럴 줄 미리 알고 있었던 듯—뭐 하나 놓칠 새라 촉각을 곤두세우는—5월 초의 나는 이번 달은 직장의 일에만 신경 쓰겠다고 다짐했다. 글도 쓰지 말자고 스스로 말했던 것 같은데, 이달을 다 보내고 난 나는 어째선지 글을 쓰고 있다.


그새 적응을 마쳤나 싶겠지만, 여전히 불안감은 마음 안에 둥둥 떠 있다. 시간이 해결해줄 터인데 뭐 그리 생각이 많나, 싶겠지만. 그래도 당장 발붙일 곳이 없는 느낌을 견뎌내고 있는 건 현재의 나라서, 나는 내게 해줄 수 있는 “조급해하지 말자. 급하게 판단하지 말자. 모르면 물어보면 되지.” 식의 문장만 나열할 수밖에 없었다. 왜 나는 이리도 작은 일에 크게 놀라고 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29일 금요일, 해야 하는 일 중 두 번째로 겁이 났던 업무를 오전 중에 처리하고 나면 일찍 집에 갈 수 있는 날이었다. 다만, 그날은 이상하게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괜한 불안감에 원래 가려고 했던 카페에 가지 않고, 회사 근처에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아마 대략 오후 4시까지 업무 전화를 받았다. 전임자가 퇴사 전 공유하지 않은 사항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다행히 별 탈 없이 잘 해결되었다는 마지막 전화를 끝마치고, 나는 카페 밖 골목길에 그대로 주저앉아 한참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전화하는 동안 내 앞으로 연두색 눈의 하얀 고양이가 지나갔다. 핸드폰을 귀에서 떼고 나니 검은 고양이가 나를 빤히—쳐다보며 지나갔다.


머리가 띵했다. 내 입으로 “제가 잘못한 건 없는 거죠” 묻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고, 그제야 내게 남은 시간이 보였다. 날씨 좋은 금요일을 어떻게 보내지.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러다 문득 인스타그램에서 봤던 게시물 하나가 생각이 났다. 윤홍천 피아니스트의 제자들이 공연을 한다지. 금요일 저녁, 잠깐 들러주는 느낌으로 편하게 음악을 들으러 오라고 했었지. 어디였더라. 한국예술종합학교 합주실 425호였지. 가볼까.


그렇게 5분을 넘게 고민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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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음악당 출입문은 그렇게 열기가 쉬운데, 이상하게 그 옆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문은 괜스레 무겁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외부인 출입 금지라고 출입문에 턱—하니 붙어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까 생각도 했지만, 요새 운동도 못했는데 몸을 움직이자 싶어 왼편의 계단으로 발을 옮겼다.


3층에 올라가자마자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리가 들렸고, 번뜩 핸드폰 화면을 응시했다. 그날의 나는 거의 반나절 동안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고 있었다. 이어폰을 빼는 그 순간까지도 어느 한 구절을 듣고 있어서, 내가 재생 버튼을 잘못 눌렀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고개를 다시 들어보니 계단 바로 앞 문 쪽에서 누군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잠시잠깐 놀란 마음에, 또 이럴 수가 있구나 싶은 마음에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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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에 올라가서는 합주실이 어딜까 하고 헤매다, 복도 끝 열린 문 앞 책상 위 흰색 A4 종이에 적힌 ‘윤클래스’라는 이름을 보고 ‘여기구나’ 생각했다. 넓은 공간 중앙에는 피아노 두 대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관중을 위한 검은색 의자가 4열로 놓여 있었다. 시간을 딱 맞춰 온 덕에 의자에는 사람들이 꽤 차 있었다.


합주실에 발을 들이는 순간, 운동화를 신은 내 발밑으로 또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내게는 너무나도 크게 들려 어떻게든 작게 보이려 애쓰며, 나는 맨 뒷자리, 그러나 피아노의 건반이 한눈에 보이는 곳으로 꾹꾹—걸어갔다. 공연이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지가 곧은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소리가 단정할 수 없고, 관객에게 이만큼 고요한 확신을 선사할 수 없다.


음과 음 사이를 괜히 흐리거나 감정으로 덮어두지 않은 채, 매번 다음을 같은 무게로 건네고 있었다. 건반 하나가 눌린 뒤 나타나는 안개만 같은 잔향은 길게 음미해도 좋을 만큼 은은한데, 음표 중앙은 빈틈없이 새카맣다. 이러니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


[PRESS] 음악원 334호 선생님, 피아노가 뭐예요? - 금호아트홀 아름다운 목요일 : 윤홍천 Piano [공연]

 



Youn Class Semester Final Rec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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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Schumann - Carnaval, Op. 9 중 I. Préambule, II. Pierrot, III. Arlequin, IV. Valse noble, V. Eusebius

피아니스트 이준원


손수건으로 피아노를 스윽스윽 닦은 뒤, 명쾌하게 친다. 아, 이때부터 피로감에서 눈을 뗄 수 있었다. 활기가 엿보인다. 내 마음 안에 웃음이 돋아난다. 부드럽게 재간거려 주네.


어떤 광대려나.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으려나? 걷는 발자국만 보면 꽤 말을 안 들을 것만 같은데, 타고난 성정이 따뜻해 마냥 그러하지도 못하네. 음의 체온이 높은 건 아닌데,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겉표면이 따뜻해. 온정 어리게 단단하기도 해.


똑. 음이 물방울을 닮은 채 이쪽으로 떨어지는 순간에 엿보인 짧고 기다란 다정함. 조금 전 따뜻하다 작게 일러두었던 고른 표면에 반들반들 솜이 자라나 부드럽게 노래했다. 이 곡이 내면적이고 서정적인 그 곡인가 보다.


Frédéric Chopin - Ballade No. 1 in G minor, Op. 23

피아니스트 김현호


여기도 경쾌하네. 김현호 피아니스트의 소리 중심도 이만큼 단단하구나.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따라가는 길이 든든해. 몰아치는 순간과 가라앉는 순간을 이렇게 음미해볼 수 있네. 손이 오른편의 건반으로 향했을 때의 이야기.


두 손에 널따란 파장을 들고 옆으로, 혹은 앞으로. 바르게 또 바르게. 건반이 개구쟁이처럼 밝은 표정을 짓고 있을 적에는? 유리로 만들어진 복도를 걸어 다닐 때에는. 격랑의 파도 곁을 지날 때에는? 그만의 파편으로 재미난 흔적을 남겨놓아야지. 지나온 때의 온순함은? 일관된 마음 하나로 시선을 일렁일렁 이어 붙여놓는다지.


유려하되 가볍지 않게, 경쾌하고 흩날리되 중심을 얇게 잡아주는구나. 신명 난다. 이별도 깔끔하다.


Camille Saint-Saëns - Piano Concerto No. 2 in G minor, Op. 22 중 I. Andante sostenuto

피아니스트 신민규 (반주: 이지호)


짙다. 소리 아래의 진동이 길게 머물러주네. 음을 퍼뜨려놓을 때에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으려나. 힘 있게 내려놓는구나. 방금 전까진 그렇게 웃어줘 놓고서는, 건반 앞에서는 다른 얼굴을 보여주네. 그냥 연주할 때에만 볼 수 있는 그 얼굴. 많은 감정이 머물러 있는 곳을 걷고 또 걷는구나. 볕이 있고 바람이 머무는 공원길 한가운데에서 차분하게, 또 경쾌하게 종종걸음 친다.


또 건반 오른편의 이야기. 윤클래스의 피아니스트분들의 오른쪽은 왜 이리 윤이 날까?


박진감을 양손 안에 들여놓을 때는? 맹렬하다. 흐르는 길에 보여주는 모난 구석 없이 순수한 서정. 오른편에서 짧고 부드럽게 카랑거리던 그 소리가 여전히 기억난다.


Claude Debussy - Estampes, L. 100 중 I. Pagodes

피아니스트 김지우


시작이 메아리가 되어 그다음 종소리로 이어 붙여지니, 자연히 눈을 건반 위로 향하게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시원하네. 투명히 맑다. 그림자가 회색빛이네. 은은하다. 오렌지색 스카프가 한들한들. 연하늘색 깃발이 한들한들. 저기서 이곳으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소리가 오고 감이 음표의 크기로 이렇게 눈에 담기는구나. 이 안에도 꽤 다양한 감정들이 담겨 있구나. 마냥 천진할 수는 없나 보다. 시냇물에 에메랄드가 스며 있네.


Frédéric Chopin - Piano Concerto No. 2 in F minor, Op. 21 중 III. Allegro vivace

피아니스트 송은채 (반주: 박혜림)


또각또각. 쇼피협을 소품집으로 들어보는 기분. 큰 마음이 작은 선물 상자에 꾹꾹 담겨 있다. 쇼팽의 구슬이 저리로 갔다 이리로 오는 때, 장난감 병정이 오늘의 일을 대신해준다. 즐거운 마음. 어여쁜 선. 씩씩한 주먹. 반짝이는 건반. 단정한 모양. 듣기 좋은 소리가 돌아올 적에 보이는 재미난 각도. 즐거운 속삭임. 경쾌한 안녕까지!


Johannes Brahms - Piano Concerto No. 1 in D minor, Op. 15 중 III. Rondo: Allegro non troppo

피아니스트 유하준 (반주: 박혜림)


확실히! 대곡적인 느낌이라더니 확실히 누르는 힘이 보다 강렬하구나! 강건함이 있네. 일렁이는 게 아니라 울렁이는구나. 복잡해지기보다 더 솔직하게 가네. 쾌활한 진중함이 있네. 깨끗하게 이 방향으로 휘몰아칠 수 있구나. 생기가 각지게 땡글땡글거려. 또잉거릴 때마다 내 흥이 다 올라.


여태 브람스 바이올린 곡만 들어보다가 협주곡은 처음 들어보네. 진작에 들어볼걸. 나긋해질 때는 또 어깨를 낮출 줄 아는구나. 밀어붙이는 텐션이 엄청 좋다. 진득함도 곁에 두고 있네. 계단에서 사람을 끌고 내려오는 힘이 좋아. 이렇게 우직한 별이 있었나? 브람스 품 안이라 더 그런가. 쉬어갈 때는 또 힘을 감춘 고요함이 느껴지니 좋네. 여기가 콘서트홀이었던가? 강한 힘이 부담스럽지 않은 건, 향하는 길에 이유가 엿보이기 때문일까나.


Johann Sebastian Bach - Prelude and Fugue No. 16 in G minor, BWV 861

Robert Schumann / Franz Liszt - Widmung

피아니스트 이윤희


반짝반짝. 유들유들. 요리조리. 오르골이 작은 춤을 출 수 있도록. 보다 안쪽으로. 편안하게 말할 수 있도록. 그저 가만히 듣기 좋은. 대화하듯이 일러주듯이 마음이 오다가도 다시 떠날 수 있도록. 입안에 오래 녹여 먹을 수 있는 알사탕을 꼭 하나 물고 있는 시간. 사랑하는 이의 흩날리는 머릿결을 그 방향 그대로 응시하는 순간. 언제든 포근히 안겨 있을 수 있음을 아는 이의 은은한 만족감.


Robert Schumann - Davidsbündlertänze, Op. 6, Book I

피아니스트 이지호


말투는 부드러웠는데 음색은 차갑네. 잔뜩 소리가 깨어 있네. 나름의 즐거움을 노래하네. 쓸쓸함보다도 조금 더 웃는 얼굴로. 따뜻한 말을 전해야 할 때는 어떨까? 언제든 깨질세라 두렵게만 느껴지는 행복이 아니라, 이곳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행복감.


극적인 전환의 순간에서 번뜩번뜩 연습실의 장면이 떠오른다. 그 찰나에 어떤 고민거리가 담겼을까? 본능에 맡겨야 할까. 생각 안에서 두 손을 움직여야 할까? 이리저리 복잡한 일을 다 겪고 난 뒤에 만나는 바닥선에 가까운 안정됨은 반갑기도 하면서 원망스럽기도 하다. 늘 그 자리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이다.


다만 그렇다고 마냥 속삭이는 때를 흠모하는 것은 아니다. 양손이 빠르게 움직이는 때, 흐름을 쟁취하는 그 재미를 어찌 포기할 수 있을까? 함께 음을 기다리는 시간. 웃는 얼굴로 마음을 맞대어도 보고, 가면을 바꿔 껴보는 즐거움.


이지호 피아니스트가 공연을 마치고 자리를 찾다 마침 옆에 앉으셨는데, 이마에 땀이 가득했다. 듣는 이는 개운하고 오히려 시원하게 탐미했는데, 연주하는 동안에는 그리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누가 뭔가를 잘하면 마냥 쉬워 보인다더니 바로 이런 건가 보다.


Clara Schumann - Drei Romanzen, Op. 21 중 I. Andante

Ludwig van Beethoven - Piano Sonata No. 23 in F minor, Op. 57 “Appassionata” 중 III. Allegro ma non troppo - Presto

피아니스트 장준호


진하네, 진해. 이때부터 뭔가 음악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선생님의 단정한 밝음을 온전히 담기보다 자기의 색을 섞어내기 시작하니 톤이 자연히 달라지게 되는 걸까? 마냥 취해 있지 않고, 휘둘리지 않는. 내 손 안에서만 담을 수 있는 온전한 낭만이 건반 곳곳에 피어난다. 지금 당장 살아나는 아름다움이 있다. 떠나는 발자국 가장 끝에 해 질 녘이 은은히 스며 있다. 아침의 인사가 아니라 작별을 앞둔 때의 아주 작은 비애가 보일 테니.


확실히 고동빛인 걸 보니 베토벤인가 봐. 쉽게 쉽게 이끌어가는데 놓치는 음이 없네. 또렷하기보다 뚜렷하네. 차갑게 연주하나 봐. 섣부른 감정이 없어서 따라가기 좋아. 각이 바로 선 듣기 좋은 종종걸음을 상상해보면 어떨까? 약간 날이 밝은 때에 듣는 마왕이 생각나기도 해. 근거 있는 자신감이 마음에 들어. 뚝심 있나 봐.


Maurice Ravel - Miroirs, M. 43 중 IV. Alborada del gracioso

피아니스트 조빈


와, 리드미컬하다. 밀크 초콜릿을 들고 있는 요정이 뛰어다니는 것 같아. 가볍게 달큰한 기운을 흩뿌리네. 이 피아노에서도 오른쪽에 윤이 나네. 이게 스페인의 리듬이구나. 어려운 스텝을 추는 무용수를 가만히 지켜볼 수 있어 기쁘네. 눈을 감아도, 떠도 흔들림이 없으니 마음이 놓이네. 노란 드레스려나.


Ludwig van Beethoven - Piano Sonata No. 31 in A-flat major, Op. 110 중 I. Moderato cantabile molto espressivo, II. Allegro molto

피아니스트 이채원


3악장을 언젠간 들어볼 수 있기를.


조용히, 그리고 들뜨게 첫 시작을 기다리던 순간. 어둠에서, 또 공백에서 음을 드러내어주는. 커튼을 조심스레 거둬내는. 오른편에서 유달리 눈에 띄던 것들이 이 건반에서는 전면에 드리워져 있는. 베토벤의 품이라 그런 걸까? 뭔가 힘을 내려놓아둘 타이밍을 아는 사람만 같은. 가만히 타고 흐르게 되는. 은근히 살아 있으면서도 고즈넉해서 좋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는 이런 매력이구나. 이런 게 뭘까? 그냥—태어난 것들에 막 피어난 어여쁨들이 건반 하나에 녹아 있으니, 음표 하나가 피어날 때마다 관객이 함께 시작점을 붙잡고 길을 따라갈 수 있다. 재미나고 흥겨운 피아노 세상.


Franz Schubert - 3 Klavierstücke, D. 946 중 II. Allegretto

피아니스트 안민혁


시작에 슈베르트의 온정이 얼마나 느껴지던지. 전해져오네. 속도를 재촉할 때에는? 그때도 그리 급하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 없이. 딱 미약하게 두근두근할 정도로. 고요함이 되돌아왔을 땐 언제 그랬냐는 듯 차분하게 길을 인도해주니 좋다. 슈베르트가 살아왔던, 그 안에 조곤조곤 피어난 침잠한 사랑이 여러 갈래로 다가온다. 차근차근. 나긋나긋. 이 두 시간 반을 회상하기에, 마음 편히 이별하기에 딱 좋은 선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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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맨발로 동—호수 표면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언제든 발이 수면 아래로 빠져들 것만 같은데, 동그란 원을 그리며 그 선을 지킨다. 따뜻한 햇살 아래이니 발아래가 반짝, 반짝 윤이 난다. 그 모습이 흰 꽃만 같다.


아이들이 피아노로 노래하면 그 곁에 쏴아—하는 물소리가 났다. 때로는 매미 우는 소리 같기도 했다. 한 번은 새가 지저귀기도 했다. 이번 6월에는 계촌클래식축제에 가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런데 보지 못할 줄 알았던 새파란 잎사귀가 이곳에도 있었다.


오늘 오길 잘했다. 그리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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