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본의 아니게 휴가

글 입력 2022.08.1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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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쓴다. 지난 한 달은 내게 정말이지 긴 터널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한다는 게 이렇게 반갑고 소중한 일상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여느 때처럼 회사 일을 하기 위해 노트북을 켜고 자리에 앉았다. 유독 뻐근한 허리가 마음에 걸렸지만, 당장은 쌓여있는 일이 신경을 쏟아야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바삐 움직이던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몸속 아주 깊은 곳에서 불안한 신호가 피어올랐다.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누군가 마치 방망이로 가격한 듯 강력한 통증이 허리에서부터 몰려왔다.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숨을 쉬기도 어려울 정도의 고통이 온몸의 신경선을 타고 질주했다. 손발은 저려왔고, 온몸은 마치 감전된 것처럼 계속 떨렸다.

 

의사는 내게 허리 디스크를 진단했다. 사실 이미 몇 개월 전에 그 병을 진단받았기 때문에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다만 돌이켜서 생각해 보니 스스로 조금 오만했던 것 같다. 아직 젊으니까 적당히 운동하고 약 좀 먹으면 나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나의 게으름과 오만은 기어코 일을 터뜨려 내 몸을 쓰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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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4일은 침대에서 누워 지냈다. 밥을 먹는 것도, 심지어 화장실을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몸을 조금만 뒤척여도 다리 쪽으로 심한 통증이 몰려왔기 때문이다(덕분에 어쩔 수 없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꼭 휠체어를 타야 했다). 회사에는 사정을 말하고 휴가를 냈다. 3번의 주사를 맞았고, 거의 매일 물리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도 지금은 기본적인 일상생활은 가능할 정도로 많이 회복된 상태다. 회사도 얼마 전 다시 복귀했다. 물론 앞으로도 몇 달간은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처음 쓰러졌던 때를 떠올리면 이것도 감지덕지다(비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 휴가를 이런 식으로 병원에서 보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

 

사람은 아프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나 역시도 그랬다. 당연한 일이었다.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그렇다고 좋아하는 게임을 할 수 있는 몸 상태도 아니었다. 그저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다 보니 시간이 남아돌았다(그런 의미에서 스마트폰은 정말 위대한 발명품이었다. 이것마저 없었다면 아파서가 아니라 무료해서 죽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잠을 자는 것도 통증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루하고 지난한 시간이었다.

 

덕분에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보냈다. 물론 스스로에 대한 자책도 했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이렇게 되기 전에 미리 몸 좀 잘 챙길걸. 한편 몸이 아프니 짜증도 걸핏하면 올라왔다. 미처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휴가를 내다보니 사정 모르는 클라이언트들은 내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들을 물으며 내 속을 긁어댔다. 사랑하는 가족들 역시 부끄럽게도 나의 짜증으로부터 예외는 되지 못했다. 그리고 이렇게 짜증 속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면 자연스레 그 끝에서 서러워진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꼭 서러웠던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우리는 위로를 받기도 한다. 무료하고 무망한 시간을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을 보는 것이다. 나 역시 대부분의 시간을 스마트폰의 자그마한 화면과 함께 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요즘 한창 인기가 있다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에피소드를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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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에피소드는 배우 구교환씨가 등장하는 9화였다. 이 에피소드에서 주인공들은 스스로를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이라 소개하는 남자를 변호한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학원의 원생들을 데리고 몰래 산으로 놀러 갔다가 미성년자 약취유인죄로 기소된 상태였다. 문제는 그가 전혀 자신의 행동에 반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에 주인공들은 난감해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의 어머니의 학원이 아이들을 밤늦게까지 학원에 가둬두고 공부만 시키는 가혹한 학습 스케줄을 운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런 아이들에게 하루라도 즐거운 추억을 선물하려 했다는 피고인의 진심을 이해하게 된다.

 

이 에피소드에서 나의 눈길을 끌었던 마지막 장면이었다. 재판관으로부터 최후 진술을 할 기회를 받은 남자는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합니다. 나중엔 늦습니다. 대학에 간 후, 취업을 한 후, 결혼을 한 후에는 너무 늦습니다. 비석치기, 술래잡기, 말뚝박기, 고무줄놀이. 나중엔 너무 늦습니다. 불안이 가득한 삶 속에서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을 찾기에는 너무 늦습니다.”
 
 
“하나, 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 둘, 어린이는 지금 당장 건강해야 한다. 셋, 어린이는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
 

 

유독 이 장면이 내게 인상 깊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지금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잘 보여줘서? 글쎄, 꼭 그것만은 아니다. 내가 그 장면에서 뭉클함을 느꼈던 진짜 이유는 그것이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의미심장한 대사였기 때문이다(실제로 해당 장면이 편집된 유튜브 클립의 댓글을 보면 직장인들도 당장 행복해야 한다는 등의 어른들의 푸념 섞인 농담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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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커뮤니티에서 월급 200만원 받던 직장인이 갖은 노력 끝에 불과 2년만에 3000만원이 넘는 돈을 모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비결인즉 자기 월급의 70% 가까이를 저축했다는 것이었다(실제로 유튜브나 책 등을 조금만 찾아봐도 사회 초년생들에게 월급의 7-80%를 저축하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똑같이 월급 받으며 사는 사람으로써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행복으로 가는 길이 맞는 건지 불온한 의심이 들기도 한다.

 

물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지나치게 희생해야 한다면 그것 역시 나름대로 문제가 된다. 나중에 행복한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 행복한 것도 그것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소개한 직장인의 사연은 내게 자기 미래를 위해 현재의 70%를 희생한 이야기로 읽힌다. 이는 따지고 보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밤늦게까지 학원을 돌리는 부모님들의 논리와 사실 별다를 게 없다.

 

군 생활 명목으로 2년간 소방서에 갇혀 지내면서 깨달은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내게 남아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번처럼)병으로 쓰러질 수도 있고,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해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원치 않은 이별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당장 살아가는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 지금 당장 스스로의 행복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한동안은 이때 깨달앗던 것들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 누워있으면서, <이상한 변호하 우영우>를 보면서 그것들을 다시 한 번 떠올릴 수 있었다. 언젠가 다가올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 당장의 행복을 유예하고 희생시키는 삶. 이로 인해 지금 당장은 불행한 사람들로 가득한 사회. 우리는 그걸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찬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글쎄, 내눈엔 그냥 불행한 사회다.

 

그렇기에 우리는 미래도 좋지만 현재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불안이 가득한 삶 속에서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을 찾기에는 너무 늦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이번에 뜻밖의 여름 휴가를 보내며 다시 한 번 깨달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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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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