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에 압도당한다는 것은 - 듄: 파트2 [영화]

뒤집혀버린 메시아
글 입력 2024.03.08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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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원작 소설 Dune이 아닌

영화 기준의 글이며,

스포일러가 다수 존재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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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듄: 파트2>가 많은 사람의 기대 속에서 개봉하였다. 나 또한 이 영화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사람 중 하나였다. <듄>은 <마블>의 시리즈가 막을 내려 관객들의 판타지 영화 시리즈의 만족도가 다소 떨어지던 시기에 등장하여 꽤 적절한 시기에 개봉했다고 평을 받는다.

 

지금은 이 시리즈의 기대가 매우 크지만, 사실 이 영화의 첫 만남은 다소 싱겁게 시작됐다. <듄>이 개봉했던 21년도는 코로나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였는데, 지인이 선물해준 영화 표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던 상태였었다. 주로 OTT 서비스를 통해 영화를 시청하지만, 극장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터라 이런 기회를 놓치기 싫어 무작정 영화관에 갔고, 마침 Call Me by Your Name으로 인상 깊었던 배우 티모시 살라메의 주연 영화인 <듄>이 개봉했길래 그대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를 다 보고든 감정은 경악과 충격이었다. SF 장르를 선호하지 않았지만, 영화의 완성도가 이러한 취향을 깨부쉈었다. 영상적인 측면으로는 미래의 이색적인 장소, 화면에 꽉 차는 새로움과 우리의 상상을 음악과 함께 과하지 않고 깔끔하게 잘 구현해냈다고 생각했고, 스토리적인 측면으로는 거대한 서사를 잘 덜어내 거대한 줄거리의 한 부분을 잘 보여줬다.

 

 

 

한 사람이 인류를 이끌 영웅이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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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큰 주제는 ‘한 사람이 인류를 이끌 영웅이 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한다.

 

<듄>의 이야기는 하코넨과 황제의 계략으로 아버지를 잃고 가문이 몰락한 폴이 복수하기 위한 여정을 그리는 성장 소설인데, 여기에 종교적 색채를 더해 폴이 종교적 수장, 즉 일종의 ‘신’으로 추앙받는다는 설정이 섞인 일명 ‘메시아’ 작품이다.

 

["두려워 하지 말라. 두려움은 정신을 죽이고, 세계를 소멸시키는 작은 죽음이다."] - <듄> 제시카 대사中

 

‘메시아’는 종교적인 부분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용어로 ‘구원자’, ‘해방자’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즉, 한 사람이 세상의 혼란을 잠재우고 평화와 사랑을 가져온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듄>의 특별한 점은 이러한 ‘메시아’ 설정을 뒤틀었다는 점에 있다.

 

주인공인 폴에게는 미래를 볼 수 있는 특별한 힘이 있다. 이는 강력한 정치적 종교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성 단체 ‘베니 제서리트’가 인류를 황금기로 이끌기 위해 만들어낸 ‘퀴사츠 헤더락’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베니 제서리트는 인류 문명의 영원을 위해 초인을 만들어냈고, 이것이 바로 퀴사츠 헤더락인데, 퀴사츠 헤더락은 초인적인 인지 능력을 갖추고 있어 과거 조상의 모든 기억을 가지기도 하고, 수많은 미래의 갈래를 볼 수 있기도 하다. 이러한 미래를 보는 능력으로 인류를 가장 좋은 길로 이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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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폴은 세상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줄 신성한 존재로서 영웅적인 존재로 영화에 등장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에 여기에서 <듄>의 특별함이 보인다. 폴은 자신이 메시아로서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세상에 혼란이 찾아오고 종교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기에 1편에서는 폴은 자신이 메시아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가문의 복수를 위해 이 힘을 이용해야 할지 아니면 많은 이들이 죽는 것을 막아야 할지 말이다. 폴의 예지 능력을 통해 보는 미래는 고정된 미래가 아닌 수많은 미래의 일부분을 보기 때문에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떠올릴 수 있다. ‘누군가의 삶을 뒤흔들 수 있는 거대한 힘을 개인에게 쥐여주는 것이 과연 옳은 행동일까?’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누구나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 거기에, 폴은 이러한 미래를 활용하여 세상을 뒤흔들 수 있는 종교적으로 큰 힘을 가지고 있기에 더더욱 큰 고민을 하게 만든다.

 

듄의 작가 프랭크 허버트는 이러한 고민을 소설에 녹여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인간의 미신적이고 야수 같은 본능이 통제될 수 있을까, 인간을 너무 과신하는 것이 아닐까 의문을 가졌다. 그렇기에 그는 뒤집힌 메시아 작품을 만들게 된다. 보통의 메시아 작품에서는 혼란의 세상 속에 영웅이 등장해 평화를 가져오는 내용일 것이다. 하지만 듄에서는 유지되는 제국을 공격하는 변방의 이민족이 주인공이 되어 세상에 혼란을 가져온다. 특히나, 침략자의 중심인 폴에게 인류를 위해 만들어진 힘을 쥐여주면서 인간은 거대한 힘을 통제할 수 없고, 결국에는 어떠한 재앙을 불러일으키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폴 아트레이데스에서 폴 무앗딥 우슬이 되기까지


 

["네가 너 자신으로 남는 한 난 절대로 안 떠나."] - <듄: 파트2> 챠니 대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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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폴은 상당히 인간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아직 아무런 시련을 겪지 않았을 때는 대가문의 도련님으로서 어리숙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몰락 후에는 자신의 힘과 존재에 혼란을 겪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평범한 인간에게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힘을 주게 된다면, 인류는 과연 더 나아질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사람이라면 감정에 휘둘리며 실수를 하기도 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 하나가 실수 하나가 세상을 뒤엎고 누군가를 죽이게 된다면, 한 사람에게 세상이 멸망할 수도 있는 것 또한 당연해진다. 특히나, 영화에서 신적인 존재인 퀴사츠 헤더락은 물리적인 힘으로 강한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보고 종교적으로 강한 힘을 얻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베니 제서리트는 퀴사츠 헤더락이 등장할 때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각 행성에 이와 관련된 종교를 만들어서 뿌려두었다. 그래서 폴은 자신이 원치 않더라도 동료들과 지인들에게 숭배를 받게 된다. 폴 그 자체로 봐주는 것이 아닌 일족들을 번영의 길로 이끌어줄 절대적인 존재로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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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2편에서 이야기가 흐르면 흐를수록 폴이 고독해지는 부분이 정말 잘 드러났다고 생각했다. 초반 프레맨들에게서 생존 방식을 배웠을 때는 사람들과 우정을 쌓고 애인인 챠니와 사랑을 나누는 듯 개인으로 사는 삶이 잘 드러났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사람들이 자신을 숭배하고 어머니 또한 변해버렸으며 마지막에 결국 챠니 또한 떠났기에 주위에 사람이 많았지만 혼자가 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퀴사츠 해더락이 되면 갈수록 인간성을 잃게 되는데, 영화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폴이 인간성과 감정을 잃어가는 것이 정말 잘 보였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마지막에 폴이 성전을 개시하는 의미로 사람들에게 “그들을 낙원으로”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이러한 모습의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한다. 작품 초반에는 자신이 사람들의 절대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거부하고 종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했는데, 이제는 자신이 이들을 황금으로 이끌 수 있으며 거대한 전쟁 또한 그저 수단일 뿐 낙원으로 데려다준다고 하는 부분에서 소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폴이 인간성을 잃게 된 것을 어찌 보면 당연한 순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앞서 퀴사츠 헤더락은 수많은 과거와 미래를 본다고 했다. 사람이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경험을 갖게 된다면 그런데도 똑같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은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기도 하고, 신념을 정하기도 성격이 바뀌기도 한다. 그렇기에 다른 수많은 이들의 경험이 뒤섞이게 되면 본인의 정체성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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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의 어머니인 제시카 또한 이러한 모습이 잘 보이는 인물이다. 제시카는 1편에서 가족을 아끼고 폴을 위해 큰 노력을 하는 존재로 그려졌다. 그러나, 2편에 와서 역대 대모들의 기억을 받게 되는 ‘생명의 물’을 마시게 된 이후로는 폴을 퀴사츠 헤더락으로 만들기 위해 사람들에게 신앙을 퍼트리며 이용하고 폴을 다그치는 등 마치 ‘빌런’으로서의 모습을 보인다. 아마 역대 대모들의 기억을 받으면서 아들을 우선으로 생각했던 ‘어머니’의 정체성에서 일족을 위해 헌신하는 ‘대모’의 정체성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기억’은 사람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 중 하나이다. 폴 또한 선조들의 수많은 기억을 받았고, 보이는 미래 중 자신에게 최선을 선택하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버렸기에 인간성 또한 잃어버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폴은 점차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있었지만 위태로워 보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기댈 곳, 쉬어갈 곳 없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가는 ‘폴 아트레이데스’의 삶을 포기한 모습에 그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하는 마음과 함께 지켜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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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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