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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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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의 지하철에서 친구와 부끄러움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발표할 때 부끄러움을 잘 느끼는 사람이냐는 질문에서 대충 시작한 대화는 누군가 넘어지는 걸 보고 웃는 심리는 무엇일까로 흘러갔다. 진지하게 고민해 봤다. 그러게 정말 왜 웃는 걸까? 내가 넘어졌을 때 누군가가 심각하게 걱정해 주기보단 웃고 넘기는 게 덜 부끄러우니까, 혹은 그저 예측 불가능한 그 모양새 자체가 웃겨서, 몸 개그라는 전문적인 분야가 있으니 우리가 웃게 되는 원초적인 어떤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이것저것 추측을 던지다 금세 도착했고, 지하철에서 내리자,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웨인 케스텐바움의 <굴욕>이 궁금해진 건 그 대화의 공이 크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혹은 <녹천에는 똥이 많다.>, 그리고 내가 봐온 수많은 기상천외한 영화들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 추함의 미학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할까. 모욕적이고 더럽고 추잡스러운 것들이 왜 그렇게 느껴지는지,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들은 어쨌든 우리의 삶에 필연적이고, 어쩌면 가장 원초적인 것들이니 껴안아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례로 보는 굴욕


 

굴욕에 대해 저자는, 푸가의 형식을 빌려 전개해 나간다. 흐름이 없는 듯 이어지는 글의 조각들을 병치하여 풀어나가는 방식은 추상적인 개념들을 비교적 편안한 호흡으로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는 라틴어 굴욕(humiliatio)과 인간(humanus)이 접두사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제시하며, 인간에게 있어서 굴욕이란 것은 필수적임을 말한다. 심지어는 필수적인 것을 뛰어넘어, 굴욕이란 ‘자아’의 자기 인식을 위한 길을 내는 선행 사건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굴욕을 겪어냄으로써 우리는 속뚫림을 경험할 수 있다. 굴욕감을 재연하는 과정을 통해 억압된 감정을 야기한 경험을 반추하고, 그 감정을 표출함으로써 해소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이고 보편적인 예로는 글쓰기가 있겠다.)


우리에게 속뚫림의 순간을 선사해 주고 싶은 건지, 저자는 수많은 굴욕의 사례를 내세운다. 포르노부터 퀴어, 인종차별, 체벌, 배설, 아우슈비츠까지 그 사례의 범위는 굉장히 넓다. 마이클 잭슨이 당한 모욕적인 몸수색, 엘리엇 스피처의 성매매 사죄, 동성애 척결을 주장하다 과일 파이를 맞은 애니타 브라이언트, 앨릭 볼드윈이 딸에게 남긴 욕설 음성 메시지 등 TV를 통해 방송되는 여러 스캔들을 다루면서 타인의 굴욕을 전시하고 소비하는 미디어 문화를 꼬집는다.


또한, 미국 예능 프로그램 <스완>과 <아메리칸 아이돌>을 통해 집단 폭소라는 도덕적으로 무감각한 오락성의 표현을 증오한다고 밝히기도 한다. (지하철 친구가 좋아할 만한 표현이다) 거트루드 바니셰프스키와 린디 잉글랜드의 짐크로 눈총(짐크로 눈총은 상대가 인간이라고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냉담하고 무신경한 눈이다)을 언급하며 굴욕의 가해라는 것이 꼭 소란스럽지만은 않음을 단단히 상기시킨다. 또한, 굴욕이란 것은 절대 지울 수 없는 것과 같아서 그 역사성을 언제나 주의해야 한다는 것도.


TV가 아닌 책에서도 저자는 굴욕을 포착한다. 언어와 굴욕의 관련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대목은 아주 어렵지만 아주 흥미롭다. 어형과 어의에서 지배와 종속의 관계성을 읽어내는 크리스테바, 볼드체로 휘갈기고 찍찍 그어 지워버리는 바스키아, 종이에 구멍을 뚫어버린 아르토. 언어가 조용히 주고 있던 굴욕감에 마냥 굴복하지 않고 언어를 골탕 먹인다는 건데, 정숙한 독자인 나는 작가인 저자의 관점을 아주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었다.

 

 

 

굴욕이란?


 

 
굴욕이란 괴로움, 취약함, 욕구, 몸의 풀리지 않는 매듭이라는 사적 차원을 사람들의 시선이라는 공적 차원으로 끌어냄으로써 안이 밖으로 나오게 하고 밖이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 그 순간, 피해자는 안에 있던 것이 밖으로 밀려 나오는 역겨운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된다. (155p)
 

 

이게 굴욕에 대한 정확한 정의라고 느껴진다. 굴욕이란, 개인적인 것. 몸에 관한 것. 깨끗한 피아노 건반 위의 토사물 같은 것. 접은 주름과 같은 것.


조르조 아감벤은 굴욕이란, 원치 않는 물질이나 작용력에 의해 무방비의 육체가 침범당해서 주체가 주체이기를 멈추고, 작용 당하는 대상, 훼손당하는 지형이 되는 ‘탈주체화’ 과정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테레자(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거울을 빌려 이야기하자면, 굴욕이란 건 나의 몸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 그래서 주체성을 정신이 아니라 몸이 가져가 버리는 것, 그래서 내 몸이 내 정신을 밀고 밖으로 나와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주 사소한 예로는 잘 보이고 싶은 상대 앞에서도 조절할 수 없는 뱃속의 꾸르륵 소리가 있겠다. (굴욕이라기보단 수치에 가깝지만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맹세하자. 남에게 일부러 굴욕을 주는 일은 삼가겠다고. 내가 그런 끔찍한 일에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되면, 당장 그만두고 입장을 바꾸고 죄를 바로잡겠다고 (28p)
 

 

굴욕이란, 부끄러움과는 달리 어떤 감정이라기보다는 무대이다. 삼각관계와 같은 것이라서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가 필수적이다. 저자는 수많은 굴욕의 사례를 다루면서, 그 굴욕의 가해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물론 그러기도 그랬다) 수많은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에게 생경한 무언가를 느끼게 해주고 싶어 하는 듯하다.


반드시 내가 직접적으로 굴욕의 가해자가 되지 않더라도, 굴욕과 관련되어 있을 경우는 아주 높은 확률로 존재한다. 혹부리의 예시만 봐도 그러하다. 저자는 식료품점 여성에게 굴욕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나라는 존재가 그 아이에게 알게 모르게 굴욕을 가하는 사회적 엔진의 일부였다고 이야기한다. 그녀의 것이 아닌 굴욕을 그녀에게 뒤집어씌우고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자신의 아주 개인적인 그렇기에 아주 창의적인 (마틴 스코세이지) 굴욕 목록을 작성했다. 전혀 위험하지 않고, 대담하지 않은, 그러나 아주 정확하고, 다양한 굴욕들을 읽다 보면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괜히 마음이 아리기도 한다. (난 결국 타인의 굴욕을 보며 또 웃고 있다) 하지만, 공항에서 섹시한 아빠에게 엉덩이를 맞은 다 큰 딸의 굴욕을 보며 웃지는 않았다. 엉덩이라는 자신의 내밀한 부위에서 발생한 굴욕은 결국 딸로 하여금 그 행동을 내면화할 수밖에 없이 만들었으니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저자 또한 그 딸에게, 그리고 앞으로 매초 발생할 수많은 굴욕 피해자들에게 그 기억의 편린들을 헌정하며 그렇게 마지막 장을 마무리했다.


어쨌든 방관자로서 그 굴욕을 완성한 (완성할 수밖에 없었던) 저자는, 굴욕이라는 폭력을 비-타자화해보라고 제안하는 듯하다. 굴욕은 끔찍하지만, 곧 굴욕의 중지를 위한 길이라고. 자아를 인식하도록 만들어준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굴욕을 가해하지는 말자고, 그 굴욕 생태계를 항상 주의해야만 한다고- 예리하고 강렬하게 그리고 아주 아주 유쾌하게 (유머 코드가 맞아서 정말 재밌었다)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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