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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위대한 작가’ 찰스 부코스키는 생계를 위해 낮에는 우체국에서 일하고 밤에는 글을 썼다. 그렇게 10여 년을 일한 후, 그는 전업 작가가 되었다.
작가를 꿈꾸는 대다수의 삶도 그렇다. 글 쓰는 것만으로는 생계를 꾸려갈 수 없기에 ‘글 쓰는 나’를 먹여 살리는 또 다른 일을 하게 된다.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꼭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면서.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찰스 부코스키가 되지 못한다. 영화 <나의 사적인 예술가> 속 주인공의 삶도 그렇다.
문학청년이었던 과거를 잊고 우체국 직원으로 살아가던 노인 에드 색스버거에게 한 청년이 찾아온다. 당신의 시를 읽었는데 너무나 대단한 걸작이라고, 어제 쓴 것처럼 시대를 초월하는 작품이라며 극찬한다. 청년은 에드를 자신이 운영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 ‘열의의 사회’에 초대해 낭독회에서 새로운 시를 발표해달라고 부탁한다.
청년들을 만난 후 우체국과 집, 술집만을 오가는 삶을 살아가던 에드의 일상이 변한다. 그는 50여 년 만에 다시 시를 써보기로 결심한다. 젊은 시절에 그랬듯 거리를 떠돌며 문장을 떠올리려 애를 쓰고, 백지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영화가 아주 낭만적으로 보인다. 젊은 시절 한 권의 시집을 낸 무명의 노인에게 뒤늦게 재능을 알아보는 이가 나타났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하지만 에드는 너무나 오랜 세월 시를 잊고 살았다. 거리를 걸으며 생각에 잠겨봐도 떠오르는 게 없다. 낭독회 날이 점점 다가오지만 여전히 백지상태 그대로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하나만으로는 시를 쓸 수 없는 것이다. 쓰고 싶은 것이 넘치던 문학청년은 이제 없다.
‘열의의 사회’ 모임의 예술가 지망생들은 창작을 하기보다 모여서 수다를 떠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 듯하다. 이들은 AI와 핸드폰에 뇌를 빼앗긴 현시대 청년들을 비난하고 인플루언서 모임을 한심하게 여기지만, 창작보다 ‘명성’에 더 관심이 많다. 남들이 자신의 예술적 감각과 재능을 알아봐 주길, 그래서 유명해지길 바란다. 이들은 예술을 하고 싶은 마음보다 예술적 감각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 보인다.
시집 한 권을 낸다고 해서 인생이 바뀌지 않고, 재능이 좀 있다고 해서 그 재능으로 먹고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 지망생도 등단 작가도 그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그래도 난 좀 다르지 않을까. 사람들이 내 재능을 알아봐 주지 않을까. 그 욕망을 내려놓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그래서 묻게 된다. “제게 재능이 있나요?” 신도 아니고 성공한 작가도 아닌, 어떤 글을 쓰는지도 잘 모르는 ‘무명작가’에게 말이다.

이들 중 진짜 예술을 하고 있는 사람은 글로리아뿐이다. 글로리아도 ‘열의의 사회’ 모임의 남자들처럼 예술적 허영심이 있고 환상 속에 사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몰라주는 세상을 불평할 때, 글로리아는 무대에 선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연기하고 현실에도 어느 정도 타협해 가면서 무대 위를 지킨다. 글로리아가 얼마나 더 무대에 서게 될지, 그 재능으로 충분히 먹고살 수 있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글로리아는 예술을 하고 있다.
재능이 있는지 물을 시간에 글을 쓰고 사람들 앞에 내보여야 작가가 된다. 그렇게 계속 쓰는 자만이 작가로 살아갈 수 있다. 쓰고 싶은 것이 없어지고 예술에서 멀어지게 되면 뭐 어떤가. 매일 성실히 일할 곳이 있고 함께 당구를 칠 친구들이 있다면, 그것도 꽤 괜찮은 삶이다.
이루지 못한 꿈이 가끔 떠오를 때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