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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도둑맞은 미술관 (근데 이제 먼저 훔친) [도서]

수지 호지 『도둑맞은 미술관』을 읽고

by 최은파 에디터
2026.09.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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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둑맞은 미술관 도서 표지.jpg

       

       

       

      1. 담뱃갑 속 펜던트


       

      몬트리올 미술관 직원이 공중전화 부스 앞에 선다. 익명의 전화가 시킨 대로 걸어왔더니 부스 안 전화가 울리고 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근처에 두고 간 담뱃갑을 집어 들라고 한다. 담뱃갑 안에는 며칠 전 도둑맞은 펜던트 하나가 들어 있다(88쪽). 작품을 돌려줄 테니 협상하자는 도둑들의 인사다. 그렇게 시작된 줄다리기가 몇 년을 간다.


      이 책, 생각보다 훨씬 빨리 읽힌다. 스물네 건이 하나같이 이런 장면으로 채워져 있다. 면도날로 제단 위 캔버스를 도려내 카펫에 둘둘 말아 사라진 카라바조 도둑들(71쪽), 아들을 감옥에 보내지 않으려고 모네와 피카소를 난롯불에 넣은 어머니(197쪽). 사건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 읽는 게 미술사 책이라는 사실을 자꾸 잊는다.

       

       

       

      2. 두 칸짜리 장부


       

      목차는 장부처럼 생겼다. 1부 LOST에 17건, 2부 FOUND에 7건. 사라진 작품은 왼쪽 칸에, 돌아온 작품은 오른쪽 칸에 적힌다. 칸을 가르는 기준은 하나다. 도둑맞은 곳이 작품을 다시 손에 넣었느냐.


      서문에서 수지 호지는 도난의 피해가 "우리 모두"에게 돌아간다고 쓴다(16쪽). 미술품은 인류가 함께 물려받은 과거이자 유산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이 장부의 주인은 인류 전체여야 한다. 그런데 목차를 따라 읽어 보면 칸을 채우는 손은 늘 작품을 도둑맞은 소장처 쪽에 있다.


      장부가 하나일 때는 문제될 게 없다. 미술관이 잃었고, 미술관이 되찾았다. 작품 하나에 장부가 둘 이상 붙는 순간부터 칸이 흔들린다. 이 책에는 그런 작품이 생각보다 많다.

       

       

       

      3. FOUND 칸, 첫 줄부터 장부가 둘


       

      2부를 여는 건 <모나리자>다. 1911년 8월 21일, 루브르에서 일하던 스물아홉 살 이탈리아인 잡역부 빈첸초 페루지아는 청소 도구 보관함에 숨어 있다가 그림을 작업복에 싸서 들고 나왔다. 나가려던 문이 잠겨 있어 당황했는데, 마침 지나가던 배관공이 문을 열어 줬다(218쪽).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배관공의 친절 덕에 루브르를 빠져나간 셈이다. 2년 뒤, 페루지아는 피렌체에서 그림을 팔려다 붙잡혔다.


      법정에서 페루지아는 훔친 게 아니라 돌려주려 했다고 말했다. 나폴레옹이 이탈리아에서 빼앗아 간 그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언론 일부는 그를 애국자라 불렀고, 1년 남짓 선고받은 형량은 항소심에서 7개월로 줄었다. 루브르의 장부에는 LOST 다음에 FOUND가 적혔다. 페루지아의 장부에는 정반대 순서로 적혀 있었다는 것, 법정이 끝내 펼쳐 보지 않은 두 번째 장부다.


      다만 페루지아는 틀렸다. 레오나르도는 말년에 이 그림을 직접 들고 프랑스로 건너갔고, 그림은 프랑수아 1세의 소장품이 됐다. 나폴레옹과는 상관없다. 되찾겠다는 명분이 늘 옳은 건 아니다. 그렇다고 장부가 하나뿐인 것도 아니다. 어느 장부가 맞는지는 역사를 따져 봐야 안다. 호지의 목차는 그 따지는 과정을 건너뛰고 루브르의 장부만 펼친다.

       

       

       

      4. 한 유물, 두 장부


       

      따져 볼 역사가 분명한 경우도 있다. CASE 13은 유럽 여러 박물관에서 중국 미술품만 골라 사라진 연쇄 도난이다. 호지는 이렇게 쓴다. "매 사건에서 도난당한 미술품과 유물은 모두 중국에서 온 것이었고, 특히 제2차 아편전쟁 때 외국 군대가 중국에서 약탈해 가져온 것이 많았다."(176쪽) 호지는 약탈이라는 단어를 숨기지 않는다. 이 글이 붙잡은 실마리는 전부 책 안에 있다.


      책 밖의 사례 하나를 겹쳐 보면 이 문장이 더 선명해진다. 1860년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베이징 원명원을 약탈하고 불태웠다. 그때 실려 간 유물 일부가 프랑스 퐁텐블로 궁의 중국 박물관에 들어갔다. 중국의 장부에는 LOST, 프랑스의 장부에는 입수. 이듬해 빅토르 위고는 이 일을 두고 영국과 프랑스를 두 도적이라 불렀다.


      2015년 3월, 퐁텐블로에서 유물 15점이 사라졌다. 이번엔 프랑스의 장부에 LOST가 적혔다. 호지는 이 연쇄 도난을 잃어버린 중국 유물을 되찾으려는 대규모 작전의 일부로 보는 전문가들이 있다고 전한다. 입증된 적은 없다. 다만 그 가설이 맞는다면, 같은 날 중국의 장부에는 FOUND가 적힌다.


      책은 이 사건을 LOST 칸에 넣고 풀리지 않은 난제로 남긴다. 난제는 범인의 얼굴이 아니다. 어느 장부를 펼치느냐다.

       

       

       

      5. 전쟁이 끝날 때마다 고쳐 쓰는 장부


       

      장부가 둘로 갈리는 일은 유럽 안에서도 벌어졌다. CASE 02의 헨트 제단화가 그렇다. 호지는 이 제단화가 600년 가까이 도난과 위조와 검열을 겪었다고 쓴다.


      1794년 프랑스 혁명군이 중앙 패널을 떼어 루브르로 가져갔다. 1815년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지고 나서야 헨트로 돌아왔다. 이듬해에는 성당 측이 양쪽 날개 패널을 팔았다. 날개는 여러 손을 거쳐 프로이센 왕의 소장품이 되어 베를린에 걸렸다. 돈을 주고 샀으니 베를린의 장부에는 정당한 입수였다. 그 입수를 뒤집은 건 1919년 베르사유 조약이다. 전쟁에 진 독일은 날개 패널을 벨기에에 넘겨야 했다. 1942년에는 나치가 제단화를 통째로 가져갔고, 1945년 오스트리아 알타우제 소금 광산에서 연합군이 찾아냈다.


      같은 패널이 150년 동안 LOST와 FOUND 사이를 몇 번이나 오갔다. 칸을 옮긴 건 매번 전쟁의 결과였다. 이긴 쪽이 장부를 고쳐 썼다는 것, 제단화의 수난사가 되풀이해 보여주는 사실이다.

       

       

       

      6. 첫 번째 칸의 첫 번째 사건


       

      그 고쳐 쓰기가 가장 크게 일어난 곳이 1부를 여는 CASE 01, 나치의 약탈이다. 1933년부터 12년 동안 빼앗은 미술품이 65만여 점, 유럽 대륙 전체 미술품의 20퍼센트에 달한다(24쪽). 빼앗긴 쪽은 유럽의 미술관과 유대인 수집가 가문이었고, 이 약탈은 LOST 칸 맨 윗줄에 적혔다.


      전쟁이 끝나고도 장부 정리는 이어졌다. 1998년 44개국 정부가 워싱턴에 모여 나치 약탈 미술품을 찾아 돌려주기 위한 원칙에 합의했다. 누가 빼앗겼는지 기록하고, 찾으면 돌려준다는 약속이다.


      원명원에는 그런 원칙이 없다. 176쪽의 한 문장, 유물의 출처를 설명하는 구절 안에 들어갔을 뿐이다. 군대가 남의 나라 미술품을 가져갔다는 점은 같다. 한쪽은 칸을 받았고 국제 원칙까지 얻었다. 다른 쪽은 칸을 받지 못했다. 둘을 가른 건 누구의 장부냐였다.

       

       

       

      7. 돌아왔지만 되찾지 못한 것


       

      한국사 시험을 준비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외웠을 한 줄이 있다. 병인양요, 외규장각 의궤 약탈. 원명원 약탈 6년 뒤,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가 조선에 함대를 보낸 일이다. 1866년 강화도에서 물러나던 프랑스군은 외규장각에 불을 지르고 의궤 297책을 배에 실었다. 의궤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들어갔고, 1975년 박병선 박사가 도서관 별관 창고에서 찾아냈다.


      돌려받기까지는 또 36년이 걸렸다. 2011년, 297책이 한국에 돌아왔다. 형식은 5년마다 갱신하는 대여였다. 프랑스 법은 국가 소장품을 팔거나 넘길 수 없게 정해 두었고, 그 법이 반환 대신 대여라는 형식을 만들었다. 소유권은 지금도 프랑스에 있다.


      이 책의 장부에 의궤를 적어 보면 칸이 없다. LOST는 아니다. 어디 있는지 안다.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다. FOUND도 아니다. 서류상 주인은 파리에 있다. 책 끝에 실린 미회수 작품 50점의 리스트는 행방을 모르는 작품의 명단이라, 행방이 분명한 의궤는 거기에도 들지 못한다. 어디 있는지 알고 누가 가져갔는지도 아는데 적을 칸이 없다는 것, 이 장부에서 가장 넓은 빈칸이다.


      그 빈칸이 이 책을 두 번 읽게 만든다. 처음엔 253장의 도판과 수배 포스터를 따라 사건 파일로 읽고, 두 번째엔 연필을 쥐고 장부로 읽는다.


      다시 그 한 줄로 돌아간다. 시험지 위에서 병인양요는 네 단어면 끝난다. 『도둑맞은 미술관』을 덮고 나면 그 한 줄 옆에 칸 하나를 더 긋고 싶어진다. 리스트는 50번에서 끝나지만, 51번에 적을 이름은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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