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작가, 가난의 세계를 그리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첫 작품인 『가난한 사람들』에서 한 번에 자신의 작품 세계를 독자들에게 선물을 한다. 그의 작품 세계는 인간을 내면, 러시아의 시대적 상황을 다채롭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극찬받는다. 나 역시 『가난한 사람들』을 읽으며 한 명의 작가가 쓴 첫 작품이 이 정도로 당대의 사회상을 잘 표현했다는 점과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바를 완벽한 가난한 사람들의 세계로 창조하여 전달했다.
『가난한 사람들』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사회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 중편 소설, 서간체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평생 가난과 도박, 질병과 같은 불행한 인간사에 시달리던 그가 만들어낸 하나의 찬란한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이 세계가 담고 있는 바는 무엇이며 독자는 무엇을 자신의 마음속에 담아가게 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자.
또한, 우리 역시 『가난한 사람들』 속 그들처럼 가난한 사람이 아닌지에 대해서 스스로 내린 답과 도스토옙스키가 자신의 첫 작품을 서간체 형식으로 작성했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궁극적으로 내가 가난한 사람이 아닌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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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도스토옙스키가 만들어낸 『가난한 사람들』 속 세계를 둘러보자. 이곳은 가난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장소이며 오로지 돈만을 외치는 탐욕적인 사람들과 그 탐욕에 수긍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장소이다. 밝은 미래라곤 당장 내일의 삶을 상상해 보아도 찾을 수 없는 이곳에서 작은 사랑이 싹을 틔우고 있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나에 대한 사랑처럼 가난한 자신을 보고 있음에도 누군가에 대한 사랑은 피어난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첫 번째 사랑은 바르바라와 포크롭스키이다. 바르바라와 포크롭스키는 책을 매개체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바르바라는 그에게 ‘푸시킨 전집’을 선물할 정도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 물론 그 선물은 그의 아버지의 이름으로 전달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포크롭스키가 건강이 나빠지게 되면서 그들의 사랑은 바르바라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두 번째 사랑은 바르바라와 마카르이다.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마카르는 바르바라를 아버지와 딸의 관계로써 사랑을 표현한다. 그러나 마카르가 반대를 했음에도 바르바라가 비코프와 결혼을 하게 되면서 마카르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두 가지 경우의 사랑이 어떤 의미의 사랑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첫 번째 사랑의 경우 정신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로에 대한 애정을 다정한 말과 정성 어린 배려로 표현하면서 정신적인 교류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 사랑의 경우 가족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마카르는 소설 속에서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은 아버지가 딸에게 갖는 애정과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바르바라 역시 마카르를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존경하며 따르고 그를 걱정한다.
이는 편지에서 서로를 지칭하는 단어를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 마카르는 바르바라에게 ‘더할 나위 없이 나의 소중한’이나 ‘진심으로 당신의 행복을 기원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소중한’ 등으로 표현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바르바라는 마카르에게 ‘존경하는’이나 ‘당신의 V. D.’, ‘다정한 벗이자 은인이신’과 같이 그에게 진정한 딸의 모습을 보여준다. 즉, 『가난한 사람들』 속의 사랑 이야기는 가난에 좌절하지 않으며 그 속에서 자신들의 삶을 찾는 사람들의 의지와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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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번역에 따라서 이러한 애칭이 미묘하게 다른 점이 있다는 것과 편지에 내용에 따라서 차갑고 딱딱하게 칭하거나 사랑과 애정을 담아서 칭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출판사 새움에서는 비둘기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변역한 것을 보았다.
또한, 이와 같은 사랑은 반드시 죽음과 동반되어서 나타난다. 바르바라가 사랑하던 이인 포크롭스키의 죽음과 고르시코프가 사랑하던 아들의 죽음과 같이 우리는 소설에서 죽음을 여러 번 경험하게 된다. 나는 도스토옙스키가 사랑과 죽음을 『가난한 사람들』에 등장시킨 이유는 인간은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죽음을 진정으로 애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 사랑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서 의미 있는 행동이다. 사랑 없는 죽음은 가치 없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사랑하고 죽음을 슬퍼하는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누구보다 친절하게 맞이해야 한다. 그러면서 도스토옙스키는 가난이라는 세상과 사랑, 죽음을 일직선상에 두면서 독자에게 당신의 삶은 가난과 사랑, 죽음이 존재하는 가치 있는 삶인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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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하나의 의문점이자 이 감상문의 주제를 떠올렸다. 과연 나는 가난한 사람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가난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한다. 가난이란 그 누구도 자기 삶에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이다. 그러나 가난 없는 삶이란 존재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가난은 전염되기 때문이다. 소설 속 하숙집의 사람들처럼 가난한 사람 주위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 마련이다.
소설의 25쪽을 보면 “하지만 그다지 대수로운 것은 아닙니다. 20~30분만 지나면 그 냄새를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어느새 그 냄새가 옷이나 손발, 그리고 몸 전체에 스며들어 똑같은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지요.”라는 문장이 있다. 이처럼 가난은 몸에 스며들고 전염된다.
이러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바르바라처럼 자신이 가난해 처해있는 상황, 그 공간을 떠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다른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 바르바라처럼 순간의 가난에서 벗어나는 일은 몸속에 스며든 가난을 잠시 외면하는 일에 불과하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도피가 아닌 마음가짐을 다잡는 일이 중요하다.
다소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마음가짐에 따라서 변화하기 마련이다. 주변 환경 역시 마찬가지이다. 가난에 대해서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면 더 나아지는 것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가난을 정의하고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따라서 가난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다.
2.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은 누구인가? 사실 나일지도.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깊게 탐구한 독자라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사소한 궁금증이 떠오르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 속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은 누구인가? 정신적으로 가난한 사람과 신체적으로 가난한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정신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신체적으로는 부유해 보인다. 소설 속에서는 안나 표도로브나가 해당된다.
반대로 바르바라는 정신적으로는 부유하지만 신체적으로는 가난하다. 그녀는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정신적인 소양을 쌓았고 결국 이는 가난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은 부유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바르바라가 사랑했던 남자, 포크롭스키를 떠올려보자. 소설 52쪽에서 “아들의 가장 큰 결점은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없다는 점이었다.”라고 언급하는 문장이 있다. 포크롭스키의 결점은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정신적으로 책을 많이 읽기 때문에 일부 부유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족의 측면에서는 가난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서 진정으로 부유한 사람은 각하다. 각하는 마카르에게 돈을 주면서 격려를 해주고 그를 비난하지 않는 부유한 사람이다. 마카르는 각하를 숭배의 느낌으로 극찬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를 통해서 결국 우리는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부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나에게 가장 큰 결점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해당 결점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어떻게 작용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3. 작품이 말하는 것은 문장 형식에도 숨겨져 있다.
다음으로,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첫 작품을 편지의 형식으로 쓴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서간체 형식을 활용해서 독자에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한다. 서간체는 편지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문체로 『가난한 사람들』에서 서간체는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작가와 독자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편지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가깝게 만들며 소설 속 등장인물의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놓게 한다. 이를 통해서 독자는 소설 속 도스토옙스키가 제시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감정적으로 몰입하는 효과를 느끼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서간체 형식의 단점으로 지나친 감정 이입을 말하곤 한다. 물론 『가난한 사람들』 에서도 이와 같은 문제점이 드러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감정을 지나치게 몰입해서 보기에 그들에게 공감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상황에 대입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이는 읽는 독자에 따라서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소설 127쪽에서 바르바라가 마카르에게 “당신의 편지에는 지나치게 과격한 문장이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거나 139쪽에서 마카르가 “너무 길게 늘어놓은 것 같군요. 이제 수염이나 깎아야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평서문에서는 드러나지 못하는 그들의 속 이야기를 편지로 제시하면서 독자에게 공감을 이끌어온다.
한편으로는 도스토옙스키와 같이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마카르의 허술한 편지 형식을 이렇게나 잘 구상했다는 점에서 작품의 흥미 포인트를 찾았다. 즉, 작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서간체 형식으로 작성하면서 독자에게 러시아 당시 사회에 만연했던 가난이라는 키워드를 보다 사실적으로 드러냈으며 이에 독자들이 깊게 공감하게끔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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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적으로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바르바라는 소설 106쪽에서 “외투라는 소설만은 꼭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고골의 「외투」를 읽어본 사람으로서 굉장히 반가운 문장이었다. 마치 마카르의 이야기가 「외투」 속 아카키의 이야기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마카르와 아카키는 가난한 삶을 살고 있으며 멀쩡한 외투 한 벌 마련하기 힘들고 가난한 삶을 벗어나기 위한 자금을 자신의 상사에게서 받는 모습과 정서를 직업으로 삼고 있다는 점 등 공통점이 많다. 『가난한 사람들』의 주인공이 마카르가 아닌 아카키었다면 어떨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읽으면서 도스토옙스키가 인간의 심리를 잘 포착하는 작가라는 걸 뇌리에 박히게 한 문장이 있다. 14쪽의 “불안한 환경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저를 무척 힘들게 합니다. 지난날을 회상하는 것 역시 무서워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슬픈 일들로 가득한 날들이었으니까요.”와 127쪽의 “저는 당신이 부질없는 것에 너무 괴로워하시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이다. 불안에 잠식되는 사람의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작가의 능력을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심리를 공감의 글로 적는 작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던 이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러니 여러분도 어서 한 번 읽어 보시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