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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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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콜라가 하나 있다.

   

저것을 캔이라 해야 할까 깡통이라 해야 할까. 그 안에 콜라가 담겼다면 캔이라 할 것이고 담기지 않았다면 깡통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콜라 뒤에 나는 무엇인가. 캔인가 깡통인가. 내 꼴은 허영인가 지분(知分)인가. 그 꼴은 진심인가 가식인가. 누군가는 캔이라고 누군가는 깡통이라고 쉽게들 정의하는 나를, 나는 정작 내가 무엇인지 모른다.

 

나는 냉소적이고 객관적인 것이 좋아 그런 사람으로 산다. 냉소가 없는 낙천은 멸시하고, 객관이 없는 주관은 묵살한다. 쉽고 빠르게 사람을 재고 분류한다. 모든 준거는 명확하고 간결하다. 나는 그렇게 타인의 말을 말씀과 헛소리로 구분하고 그 말로 똑똑이와 헛똑똑이를 구분한다. 캔과 깡통을 구분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시점에 화살은 나에게 돌아온다. 그런 너는 캔이냐 깡통이냐. 똑똑이냐 헛똑똑이냐. 냉소적이고 객관적이라던 종전의 자기소개는 어디 가고 속수무책으로 벙찐다.

 

나는 이중적이고 이질적이다. 캔이기도 하고 깡통이기도 하다. 공학을 전공했지만 공학의 정의는 모른다. 수년째 글을 써왔지만 여태 맞춤법이 엉망이다. 성적 장학금을 받았지만 교수의 간단한 질문 하나를 대답 못 한다. 대낮에는 모범 시민이지만 새벽에는 가끔 무단횡단을 한다. 올림픽대로에서 끼어들기를 욕하지만 강변북로에서 끼어들기를 강행한다.

 

이중적이고 이질적인 모습을 들키지 않는다면, 나는 캔이 되고. 들키고 말았다면, 나는 깡통이 된다. 어느 날은 캔이 되었다, 어느 날은 깡통이 되었다. 들켰다, 들키지 않았다. 매일 같은 무한반복에 이제는 나도 내 본질을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내가 무엇인지 모른다. 객관적이고 냉소적으로 나를 바라보지 못한다.

 

다시 내 앞에 콜라가 하나 있다. 저것을 캔이라 해야 할까 깡통이라 해야 할까. 그 안에 콜라가 담겼다면 캔이라 할 것이고 담기지 않았다면 깡통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콜라 뒤에 나는 무엇인가. 캔인가 깡통인가. 내가 캔이라면 캔이고, 깡통이라면 깡통인 것인가. 당신이 캔이라면 캔이고, 깡통이라면 깡통인 것인가. 어떠한 냉소적임이 어떠한 객관적임이 어떠한 명확함이 어떠한 간결함이 캔과 깡통을 구분하는 것인가

 

정답은 없고 남은 건 바람뿐이다. 나는 그저 내가 캔이기를 바랄 뿐이다. 깡통이 된 졸지는 대개 형편없고, 캔이 된 순간은 대개 근사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때문에 가슴 한편 켕김이 있더라도, 염치불고(廉恥不顧) 나는 그저 내가 캔이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그저 내가 바라는 대로 나를 표현하기를 바라고, 내가 바라는 대로 내가 표현되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나에 대해 아는 건 결국, 나의 바람뿐이다.

 

이 글이 읽히는 시점에 나는 캔일까 깡통일까.

 

그런 당신은 캔일까 깡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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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계속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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