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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도시를 좋아하는 사람, 도시의 조각을 수집하면서 크고 작은 환희를 느끼는 사람을 ‘도시주의자’라고 하자. 세상에는 내가 사랑하는 도시들이 있고 나는 언제든 그곳으로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그 도시들에서 나는 무한하게 자유롭다. 이를테면 파리와 베를린.

    

최인훈의 『회색인』에는 이런 대화가 나온다.

“형은 고향을 사랑해?”

“아니, 고향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

 

파리와 베를린은 나의 고향이 아니지만, 어쩌면 나는 고향보다 그곳을 사랑하고 그 도시 역시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안다. 도시주의자는 그의 고향만을 사랑하지 않는다. 세계의 모든 도시가 그의 고향이 될 수 있다.

 

나는 최근에서야 내가 좋아하는 많은 작가와 감독이 도시주의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 짐 자무쉬의 영화를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인데, 그는 어떤 이유에선지 내게 빔 벤더스를 떠올리게 했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등과 1960~70년대 무렵 뉴 저먼 시네마를 이끈 벤더스는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독일 감독이기도 한데, 2024년 <퍼펙트 데이즈>라는 영화를 만들었으며, 이듬해 팔십 세 생일을 맞았다.

 

벤더스가 도시주의자라는 것은 그의 작품명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도시의 여름>(1971), <도시의 앨리스>(1974), <파리, 텍사스>(1984), <도쿄가>(1985), <베를린 천사의 시>(1987), <도시와 옷에 놓인 공책>(1989), <리스본 스토리>(1994) 등이 대표적이다. 1974년부터 1976년까지 매년 차례로 발표된 <도시의 앨리스> <빗나간 행동> <시간의 흐름 속으로>로 대표되는 로드무비 3부작은 그가 ‘로드 무비의 대가’ ‘길 위의 예술가’라고 불리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것은 물론 사실이지만 나는 벤더스가 길 위를 떠도는 인물들(의 무상과 허무)뿐만 아니라 그가 도시를 얼마나 섬세하게 포착하고 그려내는지에 대한 평가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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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무쉬의 영화는 어떨까. 마찬가지로 장소는 그의 영화에서 (거의) 언제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자무쉬의 데뷔작인 <영원한 휴가>(1980)는 뉴욕을 배경으로 하며 <천국보다 낯선>(1984)에서는 그 배경이 뉴욕과 클리블랜드, 플로리다로 확장된다.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를 배경으로 하는 <미스테리 트레인>(1989)은 또 어떠한가. 급기야 <지상의 밤>(1991)에 이르러 자무쉬는 다섯 개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 옴니버스 영화를 찍는다. 여전히 동시대 활동하고 있는 그의 최근 작품은 벤더스가 팔십 세가 된 해 개봉한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2025)인데 이 영화 역시 세 개의 장소 및 도시 – 미국 북동부와 아일랜드 더블린,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옴니버스 영화다.

 

두 감독의 영화에서 인물들은 도시를 정처 없이 배회하며 이따금 그 경계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간다. 자무쉬의 영화를 보면서 벤더스가 떠오른 것은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하여, 자무쉬가 뉴욕대에 다니던 시절 <물 위의 번개>(1980)의 조연출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무척 놀랐다. <물 위의 번개>는 <이유없는 반항>(1955) 등을 찍은 니콜라스 레이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데 말기 암에 걸린 레이가 영화를 완성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뉴욕으로 와 영화를 함께 제작한 사람이 바로 벤더스이기 때문이다. 자무쉬와 벤더스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의 활동기가 겹치기 시작한 1980년대는 물론, 그 이후로도 꾸준히 벤더스와 자무쉬는 경계를 넘나드는 인물들, 말하자면 도시에서, 도시로부터, 도시로, 도시를 이동하는 이들을 포착하고 응시한다. 도시의 얼굴을 한 화면에 담는 것까지 잊지 않으면서. 어떨 때 그들의 영화에서 도시는 신이 빚은 피조물보다 더욱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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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 또 다른 도시주의자가 있다. 비비언 고닉.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저작은 너무나 뻔하고 당연하게도 『짝 없는 여자와 도시』인데 독자는 그 책의 아주 일부만 읽고도 그가 뉴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고닉은 “응어리진 쓰린 가슴을 달래주는 건 오직 도시를 가로지르는 산책뿐”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이 거리에서, 시간을 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번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관념인가.” 이 문장을 읽고 전율한 것은 우리의 손에서 언제나 빠져나가기 바쁜 ‘시간’을 번다는 것이 애초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내가 고닉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있는 특정 도시들을 왜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 나는 시간을 잃는 동시에 벌고 있었던 것이다. 혹은, 거리가 나를 위해 시간을 멈출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때 나는 시간을 잃지도 벌지도 않으면서, 그저 나 자신으로서 그곳에 존재할 뿐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고닉의 고백은 더욱 깊고 진실해진다. “나는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도시를 있는 그대로 느낀다. 내가 지금까지 몸으로 살아낸 것은 온갖 갈등이지 환상이 아니었으며, 뉴욕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하나다.” 도시와 내가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우리는 최인훈의 문장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

 

다시 『짝 없는 여자와 도시』로 돌아와서. “우리를 그토록 사로잡았던 것은 사방에 넘쳐나는 그 대담한 몸짓과 표정이었다. 세련되게 수작을 부리고 수완 좋게 거래를 하며, 그렇게 상대에게서나 자기 자신에게서나 재기발랄하고 생생한 반응을 끌어내던 사람들.” 나는 고닉과 함께 뉴욕의 거리를 걸으며 “사방에 넘쳐나는 그 대담한 몸짓과 표정”을 자주 상상해 보았다. 그러자 그 도시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는데 비단 나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도시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 앞서 언급한 대로, 고닉의 도시는 자무쉬가 찍은 첫 번째 장편 영화 <영원한 휴가>의 배경이기도 하다. 그가 뉴욕대를 다니면서 졸업 작품으로 찍었다는.


<영원한 휴가>가 뉴욕을 떠나 파리로 향하는 인물을 그리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면, <천국보다 낯선>에서 우리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뉴욕은 내가 관념적으로 사랑하는 도시일 뿐이어서 그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여전히 낯설 뿐이고. 어쩌면 도시주의자로서의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은 <지상의 밤>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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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밤>은 로스앤젤레스, 뉴욕, 파리, 로마, 헬싱키를 배경으로 다섯 개의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화를 나열한 옴니버스 영화다. 도시는 달라도 관객이 마주하는 공간은 한결같은데, 바로 택시 안이다. 따라서 주인공은 운전자와 승객, 두 사람(혹은 그 이상)이 된다. 영화는 지상의 밤에 다양한 상황과 위치에 놓인 인물들이 어떻게 엮이게 되는지, 나아가 잠시 동안 도시를 함께 가로질러야 하는 운명 공동체로 묶인 이들이 서로에게 어떤 스파크를 일으키는지 재기발랄하고 생생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나는 궁금해지는 것이다. 왜 자무쉬의 영화를 보면서 벤더스의 영화가 떠올랐나. 질문을 좀 더 좁혀보자면, 왜 <지상의 밤>을 보면서 특별히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가 생각난 것인지. 요컨대 두 사람이 실제로 작업을 같이 한 적 있다는 사실을 차지하고, 내가 그것을 알기 전 어떻게 두 감독의 영화가 겹쳐 보였는지. 그 실마리를 나는 이제부터 더듬어 나가고픈 것이다.

 

 

–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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