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극장은 영원하다 - 2024 부산국제영화제 ②

글 입력 2024.12.1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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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부>, Ta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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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나누는 순간 어디선가

부적격자들은 잉태된다


- 『우주적인 안녕』 중

 

 

사랑을 나누는 순간 어디선가 부적격자들은 잉태된다, 고 한 시인은 말했다. 영화 <타부>(2012)를 보면서 그 말을 떠올린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 영화가 부적격자들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들이 아프리카의 모퉁이에서 사랑을 나누는-그리하여 금지된 사랑이 잉태되는-순간을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타부>는 한 남자가 아프리카의 정글 혹은 오지로 보이는 곳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삶을 향한 어떠한 열의나 열정도 느껴지지 않는 무감한 표정. 그 식민지 탐험가는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아프리카까지 흘러왔지만, 결국 아내의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악어가 있는 강에 투신한다.


이후 삘라르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장면이 이어지면서 관객은 앞서 투신한 남자의 이야기가 영화 속의 영화라는 사실을 인지한다. 이윽고 삘라르의 머리 위로 “1부 실낙원”이라는 새로운 이정표가 관객에게 제시된다. Lost paradise. 잃어버린 낙원, 에는 삘라르와 그의 이웃 아우로라, 그리고 아우로라의 시중을 드는 가사도우미 산따가 등장한다. 1부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객은 백발의 아우로라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카지노에서 가진 돈을 몽땅 잃은 아우로라는 그를 데리러 온 삘라르(부인, 여긴 다시 안 온다고 했잖아요) 앞에서 꿈 때문에 이곳에 왔다고 실토한다. 원숭이 한 마리가 말을 했어요. 가만 보니 친구의 남편이었지요. 생각해 보면 털이 많은 남자였어요. 원숭이였다가 남편이었다가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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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로라가 병원에 실려 가기 전날 밤, 삘라르는 –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그러나 삘라르 자신은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듯한 – 남자와 극장에 간다. 꾸벅꾸벅 조는 남자 옆에서 삘라르는 눈물 흘린다. 배경음으로 Les Surfs의 Tu Serás Mi Baby가 흐른다. ♬ 누군지도 모르고 사랑에 빠졌어요.... 어디서 왔는지 묻지 않았어요.... 당신은 나만의 사랑 베이비.... 하늘의 태양이 변할지라도 당신을 향한 마음은 변치 않아요.... 당신이 없으면 살 수 없어요.... 고백의 밤이 저물고 새해가 밝아온다. 병원에 입원한 아우로라는 삘라르 앞에서 여전히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아프리카는 근사하지만 올해는 더위가 기승을 부려요. 산따, 악어 잘 단속해. (악어라뇨?) 그놈이 툭하면 지안 루카씨 집에 들어가요. 아우로라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말을 잃었을 때 그는 산따의 손에 무언가를 적는다. 지안 루카 벤투라... 삘라르는 아우로라의 청으로 그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아우로라만큼 머리가 센 백발의 노인을 만나 아우로라의 과거를 듣게 되는데...

 

아우로라는 아프리카에 농장이 있었어요. 지안 루카 벤투라의 말을 시작으로 “2부 낙원”이 시작된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까지 잃은 아우로라는 가정 교사와 흑인 하녀 사이에서 자란다. 영어를 쓰는 학교에 다니면서 독일어를 배운 그는 졸업 무도회에서 남편을 만난다. 두 사람은 타부 산기슭에 신혼살림을 차린다. 남편은 아우로라에게 새끼 악어를 선물한다. 아우로라의 잠들어 있던 모험심이 깨어난다. 조상의 혼이 산안개를 타고 내려온다고 여기는 곳에서 아우로라는 남편의 친구를 만난다. 농장의 연못에서 빠져나간 새끼 악어를 찾기 위해 남편과 평소 알고 지내던 이웃을 찾아간 것이 계기였다. 악어는 남편의 친구인 지안 루카 벤투라의 집에서 발견되었고-부적격자들의 사랑이 잉태되는 순간-악어의 탈출이 잦아지면서 두 사람도 더 자주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욕망이 사랑이 되는 순간을 진정 알 수 있을까? (...) 이런 관계가 결국 후회만 남을 바보 짓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품에서 미래는 모호하고 어리석은 개념처럼 보였다”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 너머로 벤투라의 (과거를 회상하는) 내레이션이 흐른다.

 

우리는 영화의 제목이 ‘타부’라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영화에서 타부(Tabu)는 아우로라가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자 남편과 벤투라를 만난 아프리카의 한 지역으로 그려진다. 문학비평용어사전에 따르면 그와 발음이 같은 타부(Taboo)는 폴리네시아어 터부(tabu)에서 유래했다. 폴리네시아의 여러 언어에서 타부와 비슷한 의미를 지닌 터푸, 카푸, 아푸 등은 ‘금지하다’ 혹은 ‘금지되다’ 등의 뜻을 포함한다. 특히 프로이트(S. Freud)는 타부 현상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접근을 시도하는데 그는 타부가 ‘신성한 것’이면서 동시에 ‘부정한 것’이라는 양면성을 지닌다는 점에 주목한다. 아울러 문학 비평에서 타부 개념은, 작중 인물의 복합적인 욕망을 분석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강렬한 욕망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거부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타부는 모순적으로 보이는 욕망의 메커니즘을 양가성이라는 틀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타부>에서 금기를 넘는 건 여인일까, 악어일까? 죽음의 한 쌍이라는 점에서 둘은 금기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일까? 아름다운 사랑의, 낙원의, 역사의 비극적 순간을 <타부>는 쓸쓸하고도 담담하게, 격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 And Their Children After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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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나누는 순간 어디선가

부적격자들은 잉태된다


옛 세계를 떠나 우리들은

새로운 행성을 불모지로 만들 뿐


나의 아가미로 들이쉰 호흡이

너의 폐에 전달되며 우리는 흑점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차가워지고


- 『우주적인 안녕』 중


 

세계 3대 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공쿠르상에 주목하게 된 것은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의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이라는 책을 접하고 나서였다. 2021 공쿠르 수상작. “천재로 추앙되었다가 처참하게 공격받고 사라진 작가 T.C. 엘리만과 그가 남긴 위대한 소설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를 쫓는 또 한 명의 작가 디에간의 여정을 그린 압도적인 작품”이라는 화려한 미사여구가 전혀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그것은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을 파고드는 압도적인 작품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2024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당해의 영화제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작품 가운데 하나로 남은 이 영화가 동명의 원작을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을, 그것이 2018 공쿠르상 수상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영화제가 끝나고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소설은 네 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제1장. 1992

Smells Like Teen Spirit


영화에 흐르던 너바나의 곡이, 건즈 앤 로지스의 노래가 각 장의 이정표로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제1장의 각주를 통해서야 왜 이 작품에 너바나의 곡이 쓰일 수밖에 없었는지 가늠한다.

 


미국의 록 밴드 너바나가 1991년 발표한 2집 앨범 「Nevermind」의 오프닝 곡. 파티에서 만난 아가씨가 보컬인 커트에게 ‘틴 스피릿(Teen Spirit)’ 냄새가 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틴 스피릿이 탈취제 이름인 줄 몰랐던 커트는 곡을 쓰다 문득 그때의 일을 떠올리고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틴 스피릿은 십 대의 반항적인 기질과 향수 이름을 동시에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 책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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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세계를 떠나 우리들은 새로운 행성을 불모지로 만들 뿐, 이라고 한 시인은 말했다. 영화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을 보면서 그 말을 떠올린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 영화가 옛 세계를 떠나는 우리들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들이 프랑스의 한 외딴 도시에서 방황하고 사랑하는-그리하여 새로운 행성을 불모지로 만드는-순간을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은 1990년대 프랑스 북동부의 가상 도시 에일랑 주를 배경으로 한다. 구체적으로 열다섯 살 소년 앙토니가 1992년부터 네 번의 여름을 겪으며-1992년, 1994년, 1996년, 1998년-성인이 되어 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고작 열다섯 살에 지나지 않던 소년이 간신히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생이 되고 군대에 자원입대한 뒤 의병으로 제대하고 저소득층 사회인으로 편입하는 과정이 낯설지만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네 번의 여름을 통해 형상화되는 앙토니의 삶에서-새로운 행성을 불모지로 만드는-우리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장소설은 곧 환멸의 소설이라는 작품의 소개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이 외진 도시에 사는 사춘기 청소년들의 성장기가 특별하게 읽히는 이유는 이야기의 중심 공간과 인물들이 가지는 문학적 보편성 때문일 것이다. 작가 스스로도 작품 서두에 적고 있듯 이 작품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곳에서 마치 ‘존재한 적이 없었던 듯 사라져 버린’ 이들과 ‘그들이 남기고 간 자녀들’,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1990년대의 사회상을 추억하는 연대기이지만, 1990년대에 인생의 어떤 시기를 살았던 독자라면 누구든 작가가 말하고자 한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다. (...)


그 인물들의 사회적 입장에서 각자가 가질 수밖에 없는 삶의 태도에 대해 우리는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인생의 슬픔과 처절함을 공유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1990년대 프랑스를 읽고, 거기에 공감하며, 같이 분노하고 쓸쓸해하다가 주인공 앙토니와 함께 성장한다. 가난과 무료함에 하루 종일 천장만 바라보는 청춘, 그리고 이루어질 듯 말 듯하다가도 결국 어그러지고 마는 사랑 탓에 좌절하는 청춘, 올라갈 수 없는 높은 사다리 앞에서 좌절하는 ‘흙수저 소년’ 앙토니가 우리가 보낸 청춘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 영광도서(榮光圖書) 책 소개 중

 

 

[윤아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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