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도시의 유령을 소환하다 - 애니웨어 애니타임, 밀라드 탕시르 감독

글 입력 2024.10.26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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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열된 죽음 앞에 무감각한 모든 일상이야말로 두려움의 대상이다.’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펼친, 조동범의 시집 『카니발』의 첫 장에는 그런 문장이 쓰여 있었다. 부산으로 떠날 당일이 되어서야 급하게 짐을 싸면서 내용을 채 훑어보지 못하고 들고 온 그 푸른 표지의 책은 – 여행지에서 읽기 적합하다고는 할 수 없는 – 온갖 죽음의 순간과 잔해, 그림자로 뒤덮여 있었다. 이 시집의 해설을 쓴 고봉준은 말한다. “조동범의 시가 보여주는 것은 죽음의 끔찍함이 아니라 사소함이며, 그것이 생명의 자연적인 소멸 과정이 아니라 사건 사고에 의해 급작스럽게 도래하는 현대적인 생의 단절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도시적 삶의 태도로서의 무관심”을 언급하며 시편 「유령」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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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드 탕시르 감독

 


이란 출생의 이탈리아 감독 밀라드 탕시르의 첫 장편 영화 <애니웨어 애니타임>은 그런 ‘도시적 삶의 태도로서의 무관심’을 전면에 내세운다. 비토리아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1948)을 오마주한 이 작품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정신을 이어받아 도시의 유령들을 소환하고 ‘진열된 죽음 앞에 무감각한 모든 일상’을 파고든다. 구체적으로 <자전거 도둑>의 전후 실업자는 세네갈 출신의 불법 이민자 청년 ‘이사’가 되어 토리노의 거리를 떠돈다. 경찰 단속으로 일터에서 해고당한 이사는 친구의 도움으로 배달 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희망을 품는 것도 잠시 생계 수단인 자전거를 도둑맞아 더는 배달을 할 수 없게 되는데... <애니웨어 애니타임>은 이처럼 원작의 흐름을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불법 이민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주인공에게 부여하여 데 시카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밀라드 탕시르는 여러 인터뷰에서 ‘이사’를 비롯한 도시의 배달 기사가 일종의 ‘투명인간’이라고 말한다. 거기 분명히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우리의 시야에 좀체 붙잡히지 않고 배경처럼 흘러가는. 나는 밀라드가 언급한 ‘투명인간’이 조동범의 시에서 소환되는 ‘유령’과 대치(代置)될 수 있다고 믿으며 그들은 모두 “존재하지만 현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재의 시간에 균열을 만들어내는 존재이다”(같은 책, 150쪽). 따라서 우리는 밀라드가 어떤 식으로 현재의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그 틈새를 어떻게 파고들고 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란에서 록 밴드 ‘Ahoora’로 세 장의 앨범을 발표한 음악가이자 이탈리아로 이주한 뒤 단편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이탈리아 및 다수의 국제 영화제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밀라드 탕시르는 2019년 연출한 단편 다큐멘터리 ‘VR Free’로 베니스영화제와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되어 이름을 알린다. 그의 첫 장편 극영화 연출작이면서 2024 베니스영화제 비평가주간 경쟁부문, 토론토영화제 센터피스 부문에 선정된 <애니웨어 애니타임>이 29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이탈리아 불멸의 고전 <자전거 도둑>을 불법 이민자의 시선으로 섬세하게 재해석한 밀라드 탕시르를 해운대에서 만나보았다. 영화에 관한 질문과 답변을 이어가면서 “현재의 시간에 균열을 만들어내는” 그의 작품 세계를 한층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넘나들고 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밀라드의 다음 세계가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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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TIFF



- 지난 9월 베니스영화제와 토론토영화제에 이어 아시아에서 상영되는 건 처음으로 알고 있다. 영화가 국경을 넘어 세계의 관객과 만나고 있는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아, 부산을 방문한 소감도 궁금하다. (웃음)


부산에서의 첫 상영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 관객과 아시아 관객이 영화를 어떻게 보고 느낄지 궁금하다. 토론토에서의 경험은 베니스의 그것과 상당히 달랐다. 영화를 보면서 탄성과 한숨이 나오는 지점이라든지. 뭐랄까, 문화적 배경에 따라 관객이 영화에 조금씩 다르게 반응한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영화를 본 한국 관객들의 피드백을 듣고 (그 차이를) 느끼는 시간을 고대하고 있다.


나는 이란 사람이지만 지금은 이탈리아에 살고 있다. 몇 년에 걸쳐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영광이다. 아직 부산에 온 지 이틀밖에 안 됐지만, 부산 너무 좋다. (웃음)

 


- <애니웨어 애니타임>을 제작하기 전, 여덟 편의 단편 및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첫 장편 영화를 다큐멘터리가 아닌 픽션으로 제작한 이유는.


이 영화를 다큐멘터리로 이야기하는 건 불가능했다.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히 정해져 있었고 그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픽션이어야 했다. 그렇지만 내게 다큐멘터리에서 픽션으로의 전환은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느껴졌다. (다큐멘터리라고 해서) 영화의 본질이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비전문 배우와도 계속 작업을 이어갔다. 또 영화 제작을 위해 아프리카 출신 작가와 교류하고 이민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배달 작업을 하는 등 몇 년에 걸쳐 조사에 조사를 거듭했다. 그러니까 이건 현실의 영화(cinema of reality)인 셈이다.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현실에 단단히 뿌리내린.


개인적으로 두 장르가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모두 인간의 영혼을 담고 있으니까. 영화 업계와 관객이 편의상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와 픽션이라는 용어로 분류했을 뿐이지 내게 그 둘은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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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니웨어 애니타임> 스틸컷

 

 

- 맞다. <애니웨어 애니타임>은 완전한 픽션이라고 보기 어렵다. 영화에서 주인공 ‘이사’ 역을 맡은 이브라히마 삼보우는 비전문 배우다. 그는 2015년 가족 없이 홀로 세네갈을 떠나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캐스팅과 관련해 “나는 알맞은 배우(right actor)가 아니라 알맞은 사람(right person)을 찾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브라히마를 만났을 때 그가 ‘right person’이라고 확신하게 된 결정적인 순간이나 자질이 있나.


우선 영화에서 관객이 보는, 최소한 90%의 에피소드는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거나 그 일을 겪은 누군가가 내게 말해준 것이다. 나는 조사에 집착하는 편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연약한(vulnerable) 사람들이나 소외 계층을 다룰 때 경계하는 건 피상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다. 따라서 (감독은) 스스로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며 내게 이런 종류의 (심층적인) 접근이 가능하도록 자신감을 심어준 것은 몇 년에 걸친 조사였다.


언급한 것처럼 이브라히마는 14살 때 세네갈을 떠나서 소수자의 신분으로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아시아 사람들이 (난민 이동에 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로 넘어오는 과정은 무척 힘들다. 알제리로, 리비아로, 그리고 지중해 한가운데로 계속해서 이동해야 하는 이 여정에는 죽음을 무릅써야 하는 위험이 따른다. 그러니까 영화의 캐릭터와 매우 유사하게 이브라히마는 그 모든 과정을 이미 겪은 산증인인 것이다.


그래서 이브라히마를 만나 솔직한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는 ‘기억의 지도화’ 작업에 착수했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기억과 감정의 궤적을 지도로 그려본 것이다. 이것은 현실의 인물(이브라히마)이 허구적 캐릭터(이사)에 내려앉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겪은 특수한 감정이나 기억을 지도화함으로써 영화의 특정 장면에서 이브라히마가 자신의 지도를 펼칠 수 있도록 도왔다.


비전문 배우와 일할 때 (감독은)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배우의 눈을 들여다보고 그와 함께 (다음 장면으로) 점프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영화에서 이브라히마는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한다. 그 없이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적으로 배우를 믿고 애정을 가지며 함께 작업하는 과정이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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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니웨어 애니타임> 스틸컷

 

 

-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이탈리아의 토리노라는 도시다. 전작 ‘VR FREE’ 역시 토리노의 한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다. 또 토리노 대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한 것으로 아는데. 당신에게 토리노는 어떤 의미인지.


일단은... 내가 사는 곳이다. (웃음) 영화에서 도시는 주인공(protagonist)이다. 영화는 이브라히마의 얼굴과 도시의 다른 얼굴들로 구성되어있다. 토리노는 18세기 후반 바로크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도시다. 비엔나와 로마 같은 유럽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촬영하러 올 정도로 뛰어난 역사적 유적을 자랑한다. 그렇지만 그곳에는 또 다른 이웃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내가 사는 동네는 분명히 아름답지만, 그럼에도 상기한 아름다움과 동떨어진, 전혀 다른 얼굴을 지니고 있기도 있다. 그곳은 항상 ‘부재한’ 곳으로 존재한다. 미디어에서 좀체 비추어지지 않는, 그 이면의 현실이랄지 도시의 다른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도시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한편으로 어떤 익명성을 드러내고도 싶었다. (영화에 드러나는) 도시는 프랑스나 벨기에의 어떤 도시든 될 수 있다. 이 영화는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투쟁하는 어떤 불행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음식을 배달하면서 겨우 삶을 연명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영화의 제목처럼 지금-여기를 포함해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나는 도시를 통해 드러날 수 있는 어떤 보편성에 관심을 두었다. 토리노라는 특정 도시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비단 이곳에만 국한되지 않는 이야기, 즉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의 제목은 그것을 암시한다.



- 토리노를 배경으로 하는 두 작품 <애니웨어 애니타임>과 ‘VR FREE’에서 흥미로웠던 건 영화에 드러나는 ‘공간에 대한 감각’이었다. 전자는 도시를 비추면서 시작한다. 그 뒤로 카메라는 인물을 따라다니며 도시의 모든 곳을 헤집고 다닐 듯이 움직인다. 후자는 가상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교도소 수감자들이 VR 체험을 통해 감옥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현실이라는 바깥 세계, 나아가서는 가상 현실이라는 무한한 세계로 공간이 확장된다. 장소가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계속 변화하고 움직인다. 당신의 영화에서 공간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혹은 공간이 영화와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하길 바라는가.


좋은 지적이다. 영화를 제작할 때나 작품이 완성된 후 그에 대해 논의할 때 사람들은 플롯에만 관심을 두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최소한 내게 영화는 시간과 공간을 다루는 예술이다. 어떤 대화나 장면에 관한 것일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시간과 공간 그 자체다. 내게 있어 공간은 무척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가상 현실을 다룬 ‘VR FREE’를 만들 때 나는 VR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도전을 직면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이 장난감(toy)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나아가서는 공간과 시간과 편집과 배우에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


말하자면 VR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공간이었다. 구체적으로 그것이 공간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관심이 있었다. 따라서 ‘VR FREE’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어떻게 극적인 공간을 구현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수감자는 벽 너머에 존재할 특정 이미지나 상황을 통해 자유하다는 감각을 느끼고자 VR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사적인 기억을 불러들여서 말이다. 이를테면 아내나 딸, 공원과 스타리움 같은. 또 내가 ‘VR FREE’에서 주목한 건 교도소는 이미지가 금지된 공간이라는 것이다. 평범한 거울조차 부재한 그곳에서 이미지는 철저히 금지된다. 그런 의미에서 ‘VR FREE’는 공간의 확장을 실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애니웨어 애니타임>은 언급한 대로 도시를 횡단하는 영화다. 인물과 함께 도시를 방랑하는(wandering) 것이다. 도시의 기차역이나 도보, 거리를 지날 때 우리는 빈곤에 처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 상황에 놓이기까지 그는 어떤 과정을 지나온 것이다. 그 과정은 (도시의) 공간과 시간을 가로지른다. 말하자면... 공간은 도시다. 이를 전제로 도시를 횡단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아이디어였다. 도시는 사람을 변화하게 만드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도시에 들어오면서 빈곤해지고 그곳에서 살아가면서 빈곤에 처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 바로 공간-도시로부터 비롯한다. 그것이 영화에서 도시를 횡단하게 된 이유다.

 

 

- ‘VR FREE’는 수감자들에게 외부 세계를 대리 체험하게 한다. <애니웨어 애니타임>의 자전거와 ‘VR FREE’의 VR이 변방의 사람들을 사회와 연결하는, 일종의 정신적·물리적 자유와 해방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영화와 한 발짝 떨어져 시네마라는 도구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싶다. <애니웨어 애니타임>은 도시에서 투명인간 취급되는 라이더들의 세계를 스크린 너머의 관객, 즉 세계에 알린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는 것 같다.

 

 

 

 

동감한다. 이 영화를 구상하고 준비하고 촬영하기까지 6년이 걸렸다. 사실 이탈리아에서 예술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를 만든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데 인생의 6년을 쓴다는 건... 적어도 내게 ‘이것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이야기를 다루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언급한 대로 시네마는 인간의 영혼을 담는 도구다. 혹은 나의 존재와 사유를 표출하는 도구도 될 수 있다. 그것은 표현의 필요성을 전제한다.


언급한 투명인간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이 영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invisible)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유럽에서는 기차역이나 보도, 거리의 많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채 존재한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보는 동시에 보지 않는다. 나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그들의 세계에 작은 빛을 비추고 싶었다.


영화는 3일 안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빈곤한 사람들이 최악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3일이면 충분하다. ‘나쁜’ 주말 한 번으로 인생이 통째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사회의 보호막은 물론, 가족이나 친구조차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으면 – 요즘 그런 사람이 아주 많다는 걸 알고 있다 –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우리는 인지하지 못한다. 3일 안에 그 사람이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게 되는. 그것이 나의 의도이자 목표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 사람이 바닥을 찍는 데 3일이면 충분하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인 ‘이사’의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써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관해 잠깐이라도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싶은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 ‘VR FREE’와 <애니웨어 애니타임> 사이 두 편의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 모두 우주를 배경으로 한다. 다큐멘터리는 가상 현실이나 우주처럼 거대한 세계관을 주로 배경으로 하는 한편 첫 픽션 영화 <애니웨어 애니타임>은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리얼리즘에 기반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앞으로의 행보가 무척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한데. 다큐멘터리 제작자로서 활동한 이력이 이번 영화를 만드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스타 스터프 Star Stuff>의 경우, 코로나 초기 발표해서 많은 이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당신의 지적이 맞고 틀린 부분이 있는 게 다큐멘터리 <스타 스터프>는 세 대륙에서의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별을 연구하고 광활한 우주를 관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한편 연구자들이 잠들 때는 그 광활한 지역에서 혼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두 갈래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셈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스타 스터프>는 <애니웨어 애니타임>과 비슷한 지점을 공유한다.


그리고 두 영화 모두 인간주의적 접근을 취했다고 할까. 나는 다큐멘터리나 픽션 필름이 같은 맥락을 공유한다고 생각한다. <애니웨어 애니타임>이 구별되는 점이라면, 영화의 심적인 강도가 점점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영화에 3일이라는 시간의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어떤 긴장감이 따를 수밖에 없다. 또 <애니웨어 애니타임>에서는 롱테이크가 많이 쓰인다. 롱테이크라는 건 영화에서의 20초와 현실에서의 20초가 같다는 뜻이다. 나는 20초라는 이 짧은 시간이 누군가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예를 들어 이사가 자전거를 훔쳐서 도망갈 때 롱테이크가 쓰였다. 20초 남짓한 시간 동안 어떤 극적인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적인 시간과 실제적인 시간을 섞어 표현하고 싶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 (내가 만든) 다큐멘터리와 단편 영화는 공간이나 접근하는 방식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고, <애니웨어 애니타임>의 경우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 그와 달랐다고 볼 수 있다.

 


- <애니웨어 애니타임>의 경우 음악을 들으면서 작업했다고. 영화에는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 세네갈과 에티오피아에서 유행한 아프로쿠반 재즈(Afro-Cuban jazz; 쿠바의 흑인 전통 음악과 재즈 음악이 융합되어 나타난 음악 장르)를 사용했다고 알고 있다. 왜 이 음악을 선택했나.


작품을 만들 때 음악부터 생각하는 편이다. 차기작도 아직 무슨 시나리오를 쓸지 정하지 못했지만, 플레이리스트는 이미 준비되어있다.


우선 재즈는 유럽 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한 장르다. 아프로쿠반 재즈를 사용한 이유는 이것이 아프리카적인 색깔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라는 어떤 거리감과 유럽 사람들에게 친숙한 재즈라는 것. 말하자면 친숙함과 거리감을 동시에 줄 수 있는 멀고도 가까운 음악인 셈이다. 그래서 이 음악을 이탈리아의 도시와 결합하면 어떤 친숙함과 거리감을 동시에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 뻔한 이민자들의 이야기가 아닌,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보이기 위해 해당 음악을 선택한 이유도 있다. 영화에서 음악을 고를 때 그것의 좋고 나쁨보다는 음악이 캐릭터를 형성하는 데 일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영화에서 ‘이사’는 세네갈 출신이다. 그것이 아프리카에서 유래한 아프로쿠반 재즈와 연결되는 지점도 있어서 선택하게 되었다.



- 영화가 질문하는 데서 나아가 관객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내는 영화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마음에 어떤 유형의 질문이 떠오르길 바라는지.


감독을 포함한 모든 예술가는 무언가를 답하기보다는 질문하는 입장이어야 한다. 무슨 질문을 할지 정하는 것도 나의 역할은 아닌 것 같지만 (웃음) 굳이 생각해 본다면 이런 것들이 될 수 있겠다. 왜 이런 보이지 않는(invisible) 투명인간이 생기게 되었을까, 왜 우리는 그 사람들을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가. 좀 더 나아간다면, 왜 정치인들은 이런 시스템을 만들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 질문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이민자가 통합되지 못하는 사회가 될 수밖에 없었나를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럽은 예전에 아프리카로 넘어가서 그곳을 식민지화한 역사가 있다. 지금은 반대로 아프리카 사람들이 유럽으로 넘어오고 있는 상황인데.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왜 여전히 이들은 서로 평화롭게 사는 것이 불가능한가. 그런 부분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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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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