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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사진으로 과연 무얼 할 수 있는가 - 사진의 열굴 [영화]

영화 '사진의 얼굴'에 대한 개인적 단상

by 문경란 에디터
2026.08.2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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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와바라 시세이 씨는 90세의 일본인 포토저널리스트다. 그는 젊을 적 불의의 사고로 한쪽 눈을 잃었지만, 누구보다 초점은 잘 맞춘다고 자부한다. 그 시대의 순간에 멈춰 서서 초점을 맞춰야 하는 포토저널리스트의 운명은 그리 평온하지 않았다. 영화는 포토저널리스트이자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때로는 같은 현장을 두고 다투는 동료 기자들의 경쟁자이기도 했던 시세이 씨의 삶을 보여준다. 그저 사진가로서, 기자로서 저널 한 편에 실렸던 이름 뒤에 어떤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이 숨어 있었는지는, 시세이 씨와 주변인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좁고 소박한 집과 작업 공간에는 그의 삶과 함께 쌓여 온 상자들이 덩굴처럼 책장과 벽을 타고 올라가 있다. 잦은 출장으로 인해 집에 홀로 남겨졌던 한국인 아내의 이야기, 아흔이 넘도록 노장으로 순간을 담아온 아버지의 삶의 말년을 이제는 자신이 담아보고자 하는 아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의 사진에 자신의 과거를 남긴 이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결국 많은 이들의 삶과 이야기가 중첩되어 시세이 씨의 삶, 그의 사진들로 현상된다.


    시세이 씨는 언론인으로서 세계의 이면을 파헤치고, 그와 동시에 예술가로서 자신만의 프레임과 초점으로 작품을 남긴다. 그는 포토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이 잔혹하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한계 상황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찍는 이 또한 전쟁터와 같은 극한 상황에 자신을 던져야 한다. 미나마타병으로 인해 거동을 하지 못하는 환자의 모습부터,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고 하얀 소복을 입은 채 오열하는 유족들의 모습까지. 그가 마주한 참상들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조차 이를 눈과 렌즈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죄책감과 필연적으로 얽힌다. 그럼에도 남겨야 했고 마주해야 했기에, 그는 셔터를 멈출 수 없었던 숙명을 타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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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세이 씨는 1964년 '분단 한국'에 대한 기사를 싣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 그는 이후 수십 년간 한국을 취재하며 분단 이후 한국 현대사를 함께 걸어왔다. 그는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촬영하러 떠난 유일한 외국인 종군 기자로서 함께 전장으로 향했고, 시위의 현장에서는 학생들과 함께 헌병을 피해 도망 다니기도 했다. 그가 한국에 렌즈를 옮겼던 것은 단지 한국인 아내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세이 씨는 한국을 '찍을 것이 무궁무진한 보물창고'와 같다고 표현한다. 그의 사진들은 한국 곳곳을 샅샅이 비추고 있었다.


    시세이 씨가 단지 굵직한 역사의 기둥만을 추적한 것은 아니었다. 부산, 거문도, 거제도, 김포, 의정부 등 그가 발걸음을 옮긴 곳들에는 사람들의 숨결로 채워지고 끈적한 땀으로 완성되는 일상의 조각들이 있었다. 지금은 강물이 일렁이는 청계천이지만, 한때 메말라 있던 그 옛 줄기 옆으로는 판잣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시세이 씨는 그 낡은 집들을 사진으로 담았다. 단지 쓰러져가는 건물들이 아니었다. 그가 집중한 것은 그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삶을 옥죄는 가난 속에서도 환하게 웃던 그들의 미소 어린 표정에서, 그는 진정한 생명력을 포착해냈다.


    일본인 사진가이자 기자로서 한국이란 나라를 취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식민 역사의 참극 속에서 한국을 식민 지배하였던 일본, 그리고 피식민국으로서 그 상처를 마음으로 잊을 수 없는 한국. 이 두 나라의 역사의 흉터 밑에서 일본인인 시세이 씨가 한국에 발을 들인 것은 예고된 힐난과 불신의 시작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한국을 떠날 수 없었던 이유는, 역사의 한순간을 함께 걸어온 한 인간이자 사진가로서 피와 땀이 배어 오늘의 풍요에 이른 한국이라는 나라의 시간을 진심으로 애정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의 위치성이 만들어낸 대체 불가능한 시선이었다. 그가 이방인이었기에 오히려 허락되었던 시선은 더욱 솔직한 결과물을 낳았고, 결국 한국이 스스로 부끄러워 숨기고자 했던 부분들까지 거침없이, 그러나 애정 어린 눈으로 담아낼 수 있는 특별함을 그에게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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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으로 과연 무얼 할 수 있는가."
     

     

    사진기가 발명된 후 근 200년간, 인간은 그들이 지나쳐 온 수많은 세계와 시간을 현상해 왔다. 사진이 주는 시각적 경험은 기록을 위해 탄생한 수많은 매체들 사이에서 단연 두각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글처럼 장황하고 길게 늘어놓을 수 없고, 녹음기처럼 현장의 음성을 절실하게 담아낼 수도 없지만, 사진에는 단 한 장이 있었다. 그 한 장은 지독하리만치 마음에 남아 잊을 수 없는, 지울 수 없는 담백하고 고요한 풍경이 되곤 한다. 사진이 사랑스러우면서도 위태로운 흔적처럼 읽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세이 씨가 평생 붙들어 온 셔터도 결국 이 질문 앞에 서 있다. 그가 남긴 한 장 한 장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그것을 찍어낸 이의 삶과 그가 카메라를 손에 쥐게 된 계기 속에서 더욱 짙은 흔적으로 남는다. 그런 계기는 사진가마다 다르게 새겨지지만, 시세이 씨와 같은 사진가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분명하다. 이들은 사진이라는 매체와 작품을 통해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몸과 그 너머에 있는 또 다른 몸들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관람자의 기억과 사고를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서로 결을 같이한다. 이들의 카메라와 렌즈는 보여주고자 하는 대상의 모습을 더욱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그것을 크고 작은 프레임에 고정시키는 작업을 통해 사회적 발화의 주체로 거듭난다. 이렇게 고정된 이미지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우리가 쉽게 지나쳐 온 장면과 대상을 다시 마주하게 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특히 세계의 양면성을 파헤치는 데 몰두하는 작업일수록, 시각적 재현을 통해 우리가 익숙하다고 여겨 왔던 현실을 낯설게 만들고 색다른 사고와 고찰로 관람자를 이끈다. 이런 작업은 대상에 대한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지 않는다. 그동안 보고 느끼지 못했던 현상과 대상의 이면을 자각시키고, 굳어져 있던 편견과 고정관념을 뒤집어 보는 것. 시세이 씨의 사진이, 그리고 그와 같은 이들의 사진이 결국 향하는 지점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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