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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실패한 별

아무것도 되지 못하면 실패하는 걸까?

by 백소현 에디터
2026.09.0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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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료한 아침 시간을 때우기 위해 포털 사이트 기사란을 전전한다. 그러던 중 한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새롭게 발견된 천체에 대한 기사. 우주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의 고민이 우주 차원으로 넘어가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감각이 좋다. 

       

      가벼운 마음으로 클릭한 기사의 내용에 마음이 동요된 건, 기사 속 '실패'라는 단어가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기사는 천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며 사전 지식 차원으로, '갈색왜성'에 대해 이런 문장을 남겼다.

       

       

      (...) 갈색왜성이란 별이 되려다 만 거대한 천체를 가리킨다. 행성으로 보기엔 너무 무겁고, 별처럼 핵융합을 하기엔 질량이 부족해 '실패한 별'이라고 불리는 천체다.

       

       

      행성과 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실패한 별'이라니. 아무것도 되지 못하면 실패하는 걸까? 괜스레 서글퍼지는 천체의 소개에 시선이 멈춘다. 최근 들어 실패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던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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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뒤처지고 있다는 감각이 온몸을 휘감을 때면 두려워진다. 나름 쉬지 않고 열심히 달려온 거 같은데 왜 나는 여기 있는 걸까 싶을 때면 초조해진다. 내가 들인 노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결과만이 그 노력을 증명해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연스레 성과가 따라오지 않는 시간은 의미 없이 흘러가는, 버려진 시간처럼 여겨진다.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좋아하면 더 잘하고 싶어지니까 시간과 마음을 쏟기 마련이다. '배움'이라는 명목 아래 결과가 나오지 않는 나를 감내해야 하는 지난한 시기. 열매를 맺기 위해선 그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걸 머리로는 알아도 조급해지는 마음은 어쩔 도리가 없다.

       

      앞자리 숫자가 바뀌고 나서는 더욱 심해졌다. 이게 다 주변인들 때문이다. 교수님 성대모사나 따라 하면서 함께 낄낄대던 친구들이 갑자기 미래를 약속했다는 사람을 데려오질 않나, 업데이트되는 프로필 사진으로만 근황을 아는 고등학교 동창은 이제 애가 둘이란다. 개그 밈으로만 소비했던 '아이 둘 있는 친구와 아이돌 좋아하는 나'라는 밈에 더 이상 가짜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세상에는 다양한 모습의 삶이 존재한다지만, 거울 속에 비친 나와 그들을 자꾸 비교하게 된다.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붙들고 있어도 될까?', '앞으로도 계속 지지부진하면 어떡하지' 일을 시작할 때의 반짝거리던 열정과 머릿속에서 쉽게 그려지던 낙관적인 미래는 빛바랜 지 오래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도 그 일을 하는 시간을 실패라고 판단한다면 계속하는 게 쉽지 않다. 당시 나는 내 뜻대로 성과를 얻지 못하면, 그 일을 한 시간을 실패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 둘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성과를 얻느냐 못 얻느냐는 날씨 같은 것이었다. 어떤 날에는 잘 달리고 어떤 날에는 힘들다. 궂은 날과 맑은 날이 지나가지만 나의 하루는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온전하게 거기 늘 '있다.' 계획을 세워 착실하게 준비한다면 성공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도 달리기를 하며 보낸 나의 시간까지 실패한 것은 아니다.

       

      <좋아한다 말하기엔 조금 숨이 차지만>, 김연수 외

       

       

      어느 날 마주한 문장에 밑줄을 박박 그어 가며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결과에 저당 잡힌 채로 살아왔는지 돌아본다. 원하는 결과는커녕 아무것도 되지 못한 내가 미워지는 날이면 스스로 실패라는 스티커를 붙이던 나. 자주 웃음을 잃고 무력함을 호소하던 날들.

       

      다시 갈색왜성에 대해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갈색왜성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별이 되는 것을 하나의 기준으로 정해 놓은 채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존재에게 실패라는 이름을 붙인 거다. 별이 되지 못했다고 해서 존재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갈색왜성은 여전히 우주 어딘가에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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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남들보다 뒤처지는 감각은 유쾌하지 못하다. 친구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내가 너무 느리게 가고 있는 건 아닐지 조급해질 것이다. 좋아하기에 더 괴로운 날들도 이어지겠지. 이 일에 쏟은 시간이 좀처럼 눈에 보이는 결과로 돌아오지 않는 날이면, 또다시 이 길을 계속 가도 되는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영영 별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시간을 실패라는 짧은 단어로 뭉뚱그리고 싶지는 않다. 나 역시 나만의 우주 한가운데에서, 나의 이름으로 존재하고 싶다.

       

       

      * 곽노필, 「행성이냐, 위성이냐… 갈색왜성 공전하는 목성급 천체에 천문학계 발칵」, 한겨레, 2026.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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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2
      곽한별
      백소현 님, 저도 사실 몇 십년 동안 내 인생이 언제나 실패로 가득차 있다고 느껴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실패 후 "멋진 흉터"를 남기는 것에 요즘 집중하고 있어요. 소현 님의 글 안에서 이미 반짝이는 별의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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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20 17:37:54 1
      소현
      멋진 흉터라니! 탐나는 표현이네요. 살면서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면 '실패'를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가져와도 좋겠네요. 한별님 댓글을 읽으니 실패의 과정 속에서 제게 남겨질 멋진 흉터가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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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22 14:32:19 1
      최수경
      안녕하세요 소현님! 저도 최근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며,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변화를 겪는 동안 저만 제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지금의 상태를 ‘실패’라고 정의하게 되었고요. 아직 그 정의에서 완전히 헤어나오지 못하던 중, 이 글을 만나 많은 위로를 얻었습니다.

      사람들이 갈색왜성을 실패로 정의하는 기준은 ‘별이 되지 못했다’는 데 있지만, 그렇다고 그 존재 자체가 실패한 것은 아니죠. 돌아보면 저 역시 몇 가지 성공의 기준들을 세워놓고, 그중 일부를 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종종 제 존재에 대한 평가까지 단정 지었던 것 같아요.

      드넓은 우주에서 저마다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정해진 기준만으로 자신을 재단하지 않고, 각자가 지닌 고유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아갈 수 있기를 바라게 되는 글이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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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21 13:57:11 2
      소현
      수경님, 제 글이 위로가 되었다니..! 오히려 제가 고맙습니다.
      글에서처럼 최근 들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걸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좋은 대학, 번듯한 직장, 경제적인 여유, 단란한 가정… 지금까지 저는 흔히들 이야기하는 ‘정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어요. 어쩌면 큰 고민 없이 누군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 사는 게, ‘잘 사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요.
      이제는 남들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재단하기보다는, 제 삶에서 어떤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살아갈지 좀 더 진득하게 고민해 보고 싶어요. 의견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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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24 21:13:30 0
      장미
      글을 보고 갈색왜성의 의견도 들어봐지, 별이 되고 싶었는데 실패한 건지, 별이 되지 않았더라도 좋았는지 우리는 모르고 실패한 별이라고 이름 붙이는 거 아닌가..했는데 글 후반에 소현님도 비슷한 말을 하셨네요! 당사자(?)가 직접 이름을 붙일 수 있으면 실패한 별, 갈색왜성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죠? 세간의 기준이 아닌 본인의 길을 가는 게 쉽지 않지만, 적어도 남의 말에는 쉽게 휘둘리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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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22 14:46:17 1
      소현
      머리로는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자고 수백 번씩 생각하면서도, 머리에 비해 가슴은 늘 반박자씩 느리게 걷는 걸음 같아요. 언젠가는 제 머리와 가슴이 같은 속도로 나란히 걷는 날이 오겠죠? 그날이 아주 먼 훗날이 되더라도.. 적어도 스스로에게만큼은 실패라는 딱지를 붙이지 말자고 다시 한번 다짐해 보게 되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장미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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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24 21:20:58 0
      윤경주
      저도 주위를 보면 남들은 나아가는데 저만 멈춰있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말로는 각자의 속도가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주변이 눈에 보이면 마음은 자연스럽게 조급해지고 불안해질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실패한 별'이라고 하니 슬프게 들리지만, 이건 누군가가 정한 하나의 기준에 따르는 것일 뿐이기에, 그저 '별'이기만 하면 괜찮지 않을까요? 모두 아무렇지 않게 존재만으로도 괜찮다고 느껴질 때가 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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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27 23:47:10 1
      소현
      경주님, 안녕하세요. 우습게도 누가 제 좌우명을 물으면 ‘각자의 속도’라고 말하고 다니는데요, 막상 비교 앞에서는 매번 마음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버리네요. ^.ㅠ
      경주님의 오늘 하루는 어떠셨을지 궁금하네요. 어떤 하루를 보내셨든 오늘도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괜찮은 하루였기를 바랍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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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28 17:03:34 0
      윱인
      소현 님,

      저도 최근에 뼈아픈 실패(?)를 한 경험이 있어서, 소현 님의 글이 아프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편안하게 다가왔어요. 저도 앞자리가 바뀐 이후로 제가 하려는 도전과 시도에 예민해져 있더라고요.

      내가 하는 이 도전이 이젠 좋아서 하는 건지, 아니면 근거 없는 오기인건지도 모르겠는 이 나날들이 많이 버겁게 느껴지지만, 이 뒤쳐지고 실패한 이 때의 경험은 나와 타인의 인생을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바라보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아요.

      사람은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는 것, 실패의 시기는 다 다를 수 있다는 것.. 등으로부터 타인과 그리고 무엇보다 제 자신에게도 조급해하지 않고 너그러운 시선을 유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갈색왜성과 소현 님과 그리고 저의 의미있는 성공과 행복을 바라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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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27 23:50:40 1
      소현
      유빈님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제가 자주 꺼내보는 문장이 하나 있어요. 여기저기 부딪히고 이리저리 헤맨 너의 길이, 분명 누구보다도 넓어졌을 거라는 말이에요.
      저 역시 한 단어만으로는 꿰어지지 않는, 사방으로 흩어진 지난 발자국들을 돌아보며 ‘왜 나는 이만큼밖에 오지 못했을까’ 하고 자책하곤 했어요. 아마 그건 제가 걸어온 길을 위에서 아래로만 재고 있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위에서 아래'가 아니라 좌우로 더 넓어진 길을 바라보면서, 그 길 위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것 또한 멋진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앞으로 더 넓어질, 유빈님의 여정을 저도 응원할게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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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28 16:55:10 0
      당근이
      소현 에디터님, 안녕하세요. 글 서두에 '실패한 별'이라는 말을 두고, 너무나 입에 붙지 않는 어색한 말처럼 느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평생 별은 존재 그 자체로 별이었는데 .. 실패한 별이 따로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별에게는 감히 실패했다는 말을 붙이지 못하면서 왜 저에게는 그렇게 쉽게 실패의 낙인을 찍어왔는지 스스로 반추하게 됩니다. 저도 주변의 친구들은 거의 취업을 하고, 효도여행을 떠나고, 심심찮게 결혼 소식이 들려오는 지금의 시점에서 많이 뒤처졌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합니다. 뒤처짐의 이유를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내가 해야할 것을 안 했거나, 하지 말아야 할 걸 했겠지'라는 다소 각박한 결론을 내렸던 것 같아요.

      오늘 소현 에디터님의 글을 읽으면서는 이제 함부로 실패의 낙인을 찍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에 붙지 않는 '실패한 별'이라는 말 처럼, 제게도 실패라는 말은 썩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됐어요. 이런 소중한 통찰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주신 소현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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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28 14:14:33 1
      소현
      안녕하세요, 당근이님. 저 역시 같은 의문에서 시작된 글이었습니다. 대개 ‘별’이라고 하면 반짝이는, 은유적으로는 성공한 존재라는 느낌이 드는데 ‘실패'라는 수식어는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아서요.
      돌이켜보면 그동안 저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일정한 기준을 정해놓고 거기에 미치지 못하면 실패, 도달하면 성공이라는 잣대로 말이죠.
      글 말미에 ‘어쩌면 나는 영영 별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썼지만, 사실 이 문장은 여전히도 ‘별이 되고 싶은 마음'을 스스로 다독이고 싶어 적게 된 문장이었어요. 그런데 당근이님을 비롯한 다른 분들이 남겨주신 댓글을 읽으면서, 어쩌면 우리는 이미 별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저도, 당근이님도 더 이상 ‘실패’라는 수식어로 스스로를 가두지 않았으면 해요. 0과 1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별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우주에서 자유롭게 유영하시는 하루 되시길 바랄게요. 좋은 의견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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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28 16:44:29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