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한 아침 시간을 때우기 위해 포털 사이트 기사란을 전전한다. 그러던 중 한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새롭게 발견된 천체에 대한 기사. 우주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의 고민이 우주 차원으로 넘어가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감각이 좋다.
가벼운 마음으로 클릭한 기사의 내용에 마음이 동요된 건, 기사 속 '실패'라는 단어가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기사는 천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며 사전 지식 차원으로, '갈색왜성'에 대해 이런 문장을 남겼다.
(...) 갈색왜성이란 별이 되려다 만 거대한 천체를 가리킨다. 행성으로 보기엔 너무 무겁고, 별처럼 핵융합을 하기엔 질량이 부족해 '실패한 별'이라고 불리는 천체다.
행성과 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실패한 별'이라니. 아무것도 되지 못하면 실패하는 걸까? 괜스레 서글퍼지는 천체의 소개에 시선이 멈춘다. 최근 들어 실패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던 차였다.

내가 뒤처지고 있다는 감각이 온몸을 휘감을 때면 두려워진다. 나름 쉬지 않고 열심히 달려온 거 같은데 왜 나는 여기 있는 걸까 싶을 때면 초조해진다. 내가 들인 노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결과만이 그 노력을 증명해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연스레 성과가 따라오지 않는 시간은 의미 없이 흘러가는, 버려진 시간처럼 여겨진다.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좋아하면 더 잘하고 싶어지니까 시간과 마음을 쏟기 마련이다. '배움'이라는 명목 아래 결과가 나오지 않는 나를 감내해야 하는 지난한 시기. 열매를 맺기 위해선 그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걸 머리로는 알아도 조급해지는 마음은 어쩔 도리가 없다.
앞자리 숫자가 바뀌고 나서는 더욱 심해졌다. 이게 다 주변인들 때문이다. 교수님 성대모사나 따라 하면서 함께 낄낄대던 친구들이 갑자기 미래를 약속했다는 사람을 데려오질 않나, 업데이트되는 프로필 사진으로만 근황을 아는 고등학교 동창은 이제 애가 둘이란다. 개그 밈으로만 소비했던 '아이 둘 있는 친구와 아이돌 좋아하는 나'라는 밈에 더 이상 가짜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세상에는 다양한 모습의 삶이 존재한다지만, 거울 속에 비친 나와 그들을 자꾸 비교하게 된다.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붙들고 있어도 될까?', '앞으로도 계속 지지부진하면 어떡하지' 일을 시작할 때의 반짝거리던 열정과 머릿속에서 쉽게 그려지던 낙관적인 미래는 빛바랜 지 오래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도 그 일을 하는 시간을 실패라고 판단한다면 계속하는 게 쉽지 않다. 당시 나는 내 뜻대로 성과를 얻지 못하면, 그 일을 한 시간을 실패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 둘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성과를 얻느냐 못 얻느냐는 날씨 같은 것이었다. 어떤 날에는 잘 달리고 어떤 날에는 힘들다. 궂은 날과 맑은 날이 지나가지만 나의 하루는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온전하게 거기 늘 '있다.' 계획을 세워 착실하게 준비한다면 성공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도 달리기를 하며 보낸 나의 시간까지 실패한 것은 아니다.
<좋아한다 말하기엔 조금 숨이 차지만>, 김연수 외
어느 날 마주한 문장에 밑줄을 박박 그어 가며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결과에 저당 잡힌 채로 살아왔는지 돌아본다. 원하는 결과는커녕 아무것도 되지 못한 내가 미워지는 날이면 스스로 실패라는 스티커를 붙이던 나. 자주 웃음을 잃고 무력함을 호소하던 날들.
다시 갈색왜성에 대해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갈색왜성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별이 되는 것을 하나의 기준으로 정해 놓은 채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존재에게 실패라는 이름을 붙인 거다. 별이 되지 못했다고 해서 존재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갈색왜성은 여전히 우주 어딘가에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크기변환]sebastian-knoll-ad70OuOCA-c-unsplash.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9/20260905170621_wgxmqsyr.jpg)
여전히 남들보다 뒤처지는 감각은 유쾌하지 못하다. 친구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내가 너무 느리게 가고 있는 건 아닐지 조급해질 것이다. 좋아하기에 더 괴로운 날들도 이어지겠지. 이 일에 쏟은 시간이 좀처럼 눈에 보이는 결과로 돌아오지 않는 날이면, 또다시 이 길을 계속 가도 되는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영영 별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시간을 실패라는 짧은 단어로 뭉뚱그리고 싶지는 않다. 나 역시 나만의 우주 한가운데에서, 나의 이름으로 존재하고 싶다.
* 곽노필, 「행성이냐, 위성이냐… 갈색왜성 공전하는 목성급 천체에 천문학계 발칵」, 한겨레, 2026.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