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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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말 바쁜 삶을 살고 있다. 회사를 다니고 있고, 글도 주기적으로 (사실상 주기적보다는 조금 더) 자주 쓰고 있고, 영상 편집 과정을 배우기 위해 학원도 주말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잘 살고 있는가를 나에게 묻는다면, 그건 또 잘 모르겠는 요즘이다. 직장과 병행하면서 학위 논문을 쓰고 졸업한 지 어언 1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직 그 여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여전히 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계획중에 있던 공연 관련 배움 아카데미를 한 가지 더 배울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합리적으로 판단해보니 한 템포를 더 '미루는' 게 나를 위한 더 나은 선택일 것 같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런데, 그 배움 아카데미의 개강이 거의 한 달 앞으로 닥쳐왔음에도, 그 결심을 하기까지는 거의 그 아카데미의 학기 기간만큼의 걸친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사적인 고백을 한 가지 하자면, 나는 해야 한다는 어떤 일이 생기면 그것에 대해 압박감을 느끼게 되고, 그러면 자꾸만 미루곤 하는 그다지 좋지 않은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런 나의 성격에 대해 자책감을 자주 느끼곤 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다니고 있는 상담 선생님과의 상담 내용에 따르자면, 그 일에 대해서 잘 해내려는 마음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그 말을 듣고 나서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왜냐면 잘하려고 하는 마음은 어쨌거나 그걸 '해내고 싶다'라는 긍정적인 마음이 어느 정도는 있다는 걸 나타내는 것임에도, 결국에는 마음 한 곳에 자책감을 지니면서 미루고는 이내 '하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불편하고 이해되지 않는 이 마음을 애써 좀 더 찬찬히 들여다보니, 결국은 '잘'에 방점이 찍힌 나머지 잘 해내야 한다는 그 마음이 결국엔 문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잘 해내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그 마음은, 내가 나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게 '불안하고 싫다'라는 마음이 함축되어 있던 것이었다. 사실, 정신에 의한 육체의 컨트롤이 어느샌가 예전처럼 잘 되지 않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내가 이걸 해야  해'라는 초자아적 마음이 입력을 해 육체에게 출력을 강력히 요구하면 몸이 그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곤 했지만, 이젠 그 요구를 출력해내지 못한 상태에 내가 도달한 것이다.

 

사실 논문 작성 완료 시기가 임박했을 때는 졸업을 하기만 하면, 이 고됨이 끝나고 해방의 시간이 다가올 것이라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졸업을 해도, 졸업을 한 지 반년이 지나도, 그리고 현재 일 년이 지나도 그렇게 이 몸과 마음의 불균형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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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고된 나날을 보내던 와중의 어느 깊은 밤, 막막한 마음이 들어 잠이 오지 않아 그때 내 마음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니, 또 내 안에 이러한 마음도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잘 해내려는 마음의 경향이 관성이 되다 보니, 어느샌가 그저 단지 하고 싶어서 '그저 시도하곤 했던' 마음은 잘 해내려는 마음에 밀려 숨을 죽이게 된 것이다.

 

이 글에 유독 '사실'이라는 단어를 많이 적곤 하는데, 그건 그만큼 내가 나의 마음에 솔직하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여하튼 '사실', 요즘 들어 무얼 보고 들어도 마음에 즐거운 감정이 잘 들지 않았다. 그런데 또 묵묵히 삶을 견디다 보니, 큰 기대 없이 우연히 보게 된 공연 한편이 오랜만에 나에게 큰 감동의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공연을 보면서 드디어 오랜만에 어떤 감정이라는 것이 느껴졌고,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다시 설레이기 시작했다. 이 얼마만에 느껴보는 설레임인가! 또한 내가 왜 이렇게까지 무언가를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압도되어 내 자신을 괴롭게 했는지에 관해 비로소 그 과정들을 추적하여 재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보면서 설레고 좋아하는 이 공연과 관련된 일을 하기 위해 나는 그렇게 열심히 달려왔던 것이다.

 

다니고자 했던 아카데미를 지금의 충분히 빡빡한 스케줄에도 무리하면서 다니고자 했던 것도, 그 아카데미를 다녀서 하루빨리 그 업계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다는 조급한 마음이 여태껏 쌓이다보니 무리한 계획을 세워서 빨리 도달할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진정으로 나를 위한 계획이란 무엇일지에 대해, 내가 나를 위로해야 할 친구처럼 대상적 존재로서 상정하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현재 나에게 다가온 일들을 묵묵하고 성실하게 해내는 것만해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아카데미 과정을 정말 내가 정성을 다해서 다니고 싶은 것이라면, 영상 편집 과정이 끝나고 나서 아카데미 수업을 이수할 때에 조금 더 그 수업에 에너지를 쏟아서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게 되었다.

 

글의 끝자락에서, 지난 10월부터 시작된 아트인사이트에 글을 기고했던 나날들은 논문을 쓰기 위해 나를 갈아 넣곤 했던 그 여독을 풀어내는 여정이었다는 생각이 이 글을 쓰면서 문득 들었다. 그렇기에 글을 쓴다는 건 단순히 활자를 나열한다는 것이기 보단, 자신의 생각을 더듬어보면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과정이 되기도 한다.

 

오늘도 글을 쓰며 또 한 가지를 배운다. 다시 돌아온 내 설레임에 감사하며, 그리고 그 설레임에 또 나를 너무 몰아넣지 않게 경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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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여름비
유빈 님은 마음 먹은 일을 '잘 '해내기 위해 [미루는 습관]이 있다고 했는데, 저는 그 반대입니다. 무슨 일을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그 일이 제가 생각하는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끊임없이 푸쉬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런데다 마음 먹은 일에 차질이 생길까 모든 요인을 체크해서 컨트롤하려고 엄청 에너지를 쏟다 보니 살아오면서 많이 힘들고 방전될 때가 많았어요. 저 역시도 '잘' 하려는 마음에서 자유롭지 못한 거였죠. 이런 방식이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다보면 유빈 님이 언급한 것처럼 몸이 마음을 따라 가지 못한다는 글에 깊이 공감이 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 무언가로 인해 새로운 설렘을 느끼게 된다는 건 정말 가슴 벅찬 일이죠!.  그 느낌을 즐기되, 다시 나를 몰아붙이지 않도록 성찰하는 유빈 님과 또 저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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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3 16:11:57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