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에비타(Evita)>는 2025년 11월 7일부터 2026년 1월 11일까지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되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창작진인 작사가 팀 라이스와 작곡가 앤드류 로이스 웨버(ALW) 콤비에 의해 창작되었고,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1978년 초연된 이후 한국에서는 2006년 라이선스 초연, 2011년 재연을 거쳐 14년만에 다시 돌아온 작품이다. 제작사 블루스테이지와 에스앤코의 주관으로 새롭게 돌아온 논 레플리카(Non-replica) 버전의 한국 라이선스 공연 <에비타> 3연은 홍승희 연출과 김문정 음악감독의 조합으로 또 다시 ‘리뉴얼’되었으며, 가사 역시 새롭게 번역되었다. 탱고, 라틴 성가, 팝, 록, 왈츠 등 다양한 음악적 장르가 혼합되어 넘버가 구성된 <에비타>는 대사가 없이 노래 가사로만 진행되는 ‘성스루(Sung-through) 뮤지컬’로서, 다른 대극장 뮤지컬보다 상대적으로 더 짧은 135분(인터미션 포함)의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다.
뮤지컬 <에비타>의 제목은 20세기 아르헨티나의 영부인이었던 에바 두아르테 페론(Eva Perón, 전체 이름은 María Eva Duarte de Perón)의 별칭에서 따왔으며, 체(che)라는 허구의 캐릭터를 활용해 에바 페론의 생애를 다양한 방식으로 조명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에바의 부고를 알리는 공식적인 라디오 방송에서 시작해, 가난한 시골 소녀 출신 에바가 배우가 되어 인기를 얻고 정치인 후안 페론과 결혼해 아르헨티나의 영부인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영부인이 되고 난 후 얻은 암으로 사망하기까지의 짧은 생애를 뮤지컬이라는 형식 속에서 재현하고 있다.
죽음에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이야기

뮤지컬 <에비타>의 시작은 에바의 부고를 공식적으로 알리는 라디오 방송의 음성이며, 끝은 실제 죽음을 맞이한 에바의 모습이다. 즉 공적으로 기억되는 죽음으로 시작해서 에바의 생애를 체의 시선으로 되짚어 보며 실제 물리적이고 개인적인 죽음으로 종결되는 것이다. 이러한 두 죽음의 대비는 에바 페론이라는 인물이 ‘성녀’로 기억되는 것과 실제 삶 간의 분열 혹은 괴리를 내포하며, 이 분열은 <에비타>라는 작품을 이끌어가는 내적인 동력이 된다.
주류 정신분석학의 문제적 거장 프로이트는 『애도와 우울증(Mourning and Melancholia)』(1917)에서 애도(Mourning)를 대상에 대한 상실을 내적으로 인정하고 떠나보내며 자아의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개념화했다. 이와 대비되는 우울증(Melancholia)은 대상에 대한 상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아의 내부에서 여전히 분리하지 않은 채로 대상이 고착화되며 동일시와 자기 비난을 겪게 하는 병리적 상태다. 따라서 일반적인 의미의 ‘애도’가 아니라 정신분석학적 의미에서 에바는 애도될 수 없다. 에바는 물리적 죽음 외에도 후안 페론과 지지층인 국민들에게서 분리되지 못했으며, 따라서 ‘우울증’ 형태로 고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에비타가 국민들 사이에서 강력한 상징으로 기능하는 상황 속에서 죽음 이후에도 에바의 후광을 정치적 목적에 활용하기 위해 시신을 방부 처리해 전시했던 후안 페론의 정권이 택했던 전략과도 연관된다.
에바의 죽음 이후, 에바의 시신을 신성함의 상징으로 숭배하는 국민들을 묘사하는 것만 같은 <에비타>의 첫 장면은 모리스 알박스(Maurice Halbwachs)의 ‘집합 기억(collective memory)’이라는 개념을 연상시킨다. 기억은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에 머무르는 것을 넘어 사회적 틀 속에서 형성 및 매개되며, 공동체의 기억은 집단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에 기여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결속은 강화된다. 이는 역사적 사실과 기억되는 것의 괴리와 분열의 가능성을 함의하며, 집합 기억 속에서 상징적인 존재가 된 인물과 그 표상을 추적하는 것은 지배적인 역사 인식에 의문을 표하는 방법이다. 이때 에비타의 죽음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공유하는 공적 기억으로, 에바의 장례식과 추모 의례는 개인적 애도가 사회적 기억으로 전환되는 것을 함의한다. 일반적으로 상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는 과정으로서의 애도와 달리, 아르헨티나의 복잡한 역사 속에서 여전히 에비타의 후광을 필요로 하는 세력 및 다양한 이해관계에 의해 이상화 혹은 신격화된 에바 페론의 이미지는 지속적으로 소환되며 자의적으로 활용되었다. 프로이트의 우울증적 고착과 유사한 이 현상은 공적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존재로 남게 하려는 시도로서, 사회적 차원의 병리적 우울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역사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민중과 노동자 계급을 위해 헌신한 성녀 대 대중 선동의 수사를 활용한 권력욕과 포퓰리즘의 화신이라는 에바에 대한 양가적 평가는 그를 역사적으로 일원화된 이미지로 재현될 수 없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에바는 역사적으로 아직도 ‘논쟁 중’인 인물로 남게 되며, 이는 인간 에바를 향한 애도의 종결을 지속적으로 유예하도록 한다. 이는 뮤지컬 <에비타>가 단순히 아르헨티나 영부인 에바 페론의 이면을 폭로하는 것을 넘어, 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여러 해석을 경합시킴으로써 재현의 불가능성이라는 암묵적 주제에 닿는 배경이다.
이때, <에비타>를 창작한 웨버와 라이스의 전작인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와의 연관성을 살펴본다면 더운 흥미로운 지점을 포착할 수 있다. <에비타>의 에바 페론과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지저스(예수)는 작품의 중심이라는 차원에서 의미론적 동류항으로 기능하며, 이에 대한 반-서사를 지속적으로 유포하고 제시하면서 치열하게 경합하는 ‘안티 테제’인 캐릭터는 각각 체와 유다로 제시된다. 흥미롭게도, 둘 다 모두 (예수의 경우 문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33세에 사망했고, 작품 내에서 체와 유다를 ‘활용’해 에바와 예수를 다루는 방식은 곧 신성함의 등가물로 제시된 상징을 탈신성화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탈신성화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는데, 에비타를 추모하고 향수로 소환하는 국민들 사이에서 에바는 ‘천사’(원문은 스페인어의 santa, 성녀라는 의미)와도 같은 비유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오히려 인격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에바의 죽음은 ‘정신분석학적인 의미에서’ 애도될 수 없다. 이 작품 속에서 체가 에비타를 비판적으로 소환하는 방식은 오히려 실제 인간 에바의 삶을 추적하는 방식을 활용해 인격으로 그를 불러들이는 것으로, 진정한 ‘애도’를 수행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된다.
따라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마지막이 내세(천국)가 묘사되지 않는 허무주의의 끝이었다면 <에비타>의 마지막 역시 마찬가지다. 체의 핑거 스냅으로 암전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악화된 건강 속에서 죽음을 피하기 위해 발악하던 에바 페론의 물리적 신체는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과 달리) 편안하고 고요하게 잠든다. 죽음을 맞이한 에바는 집합 기억 속에서 확고하게 신성함의 상징이 되었지만 실제 역사에서 그 시신은 페론 정권에 의해 미라가 되며 페론의 망명 이후 유럽을 떠돌아다니게 된다. (한국 라이선스 공연 번역에서는 생략되었지만) 원어(영어) 가사를 살펴본다면, 체는 에바가 죽음을 통해 얻은 ‘성녀’ 이미지와 대비되는 미라화된 그의 시체처럼 죽음을 통해 얻은 감히 훼손할 수 없는 신성하고 고귀한 지위가 ‘인간으로서의 에바’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질문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죽은 이의 과를 지우기보다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그를 진정으로 애도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누군가의 이면이 은폐된 채로 수행되는 ‘가짜’ 애도보다 이를 폭로하고 역사에 평가를 맡기는 것이 더욱 그를 존중하는 것이 아닐까? 체의 존재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작품에 필수적이다.
체, 과연 누구인가?

<에비타>의 또 다른 한 축이자 에바의 대립항인 체(che)는 관찰자이자 나레이터(서술자)의 역할을 한다. 가상의 혁명가로 설정되는 ‘체’는 마갈디를 만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가는 10대 소녀 에바가 영부인이 되고 33세의 나이로 죽기까지 작품 전체의 진행을 이끌며, 관객에게 당시의 시대적 맥락과 극중 상황을 설명하는 역할이며, 에바 페론의 선택과 행동을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도록 한다. 에바 페론이라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관객에게 주인공 에바에 대한 ‘거리두기’를 의도적으로 종용하는 체의 존재 덕분에 <에비타>는 주인공의 업적을 나열하는 위인전이 아니라 풍자와 냉소의 방법론을 통한 정치적 가능성을 강하게 지니게 되는 작품이 된다. 또한 1막 초반의 넘버인 ‘what a circus’에서 제시되는 바와 같이 이 작품 내부에서 재현되는 에바 페론의 생애를 하나의 ‘쇼(show)’로 인식한다면 그 형식에서 체는 쇼의 MC이자 진행자가 된다.
<에비타> 창작 당시 체(che)의 이름과 외형은 아르헨티나 출신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Che Guevara, 본명은 Ernesto Rafael Guevara de la Serna)에서 가져왔다고 알려져 있으며, 한국 라이선스 초연을 포함하여 여러 프로덕션에서는 ‘체’를 체 게바라와 동일시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캐릭터 체(che)의 어원인 ‘che’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아르헨티나와 남미 국가의 특수한 맥락이 반영된 어휘로, 영어의 ‘hey’처럼 감탄사의 일환인 추임새이자 (친밀한 관계에 있는) 상대방을 지칭하기 위한 어휘로 쓰인다. 이러한 언어적 맥락 속에서 가지게 된 체 게바라의 ‘체’라는 별명은 직접적으로 <에비타>의 체를 연상시키지만, 작품 속 체는 실제 쿠바 혁명 같은 체 게바라가 발생시킨 역사적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다만 실제 체 게바라의 생애처럼 체가 어린 시절 아르헨티나에서 살았다는 사실과 혁명가라는 점이 기본적인 설정으로 언급되며 캐릭터의 창작에 사용된 체 게바라의 삶의 흔적을 암시할 뿐이다.
세계적으로 저항과 혁명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체 게바라의 외양에서 읽어낼 수 있는 반문화적 코드와 맥락은 체라는 캐릭터를 더욱 매력적으로 조형하며, 권력을 지닌 에바의 대립적 인물로 기능하게 한다. 하지만 체 게바라의 정치적 지향과 역사적 맥락을 감안한다면 체 게바라는 작품에서 드러나는 ‘체’와는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팀과 웨버라는 영국인 창작진들이 이러한 세부적인 특징과 차이를 깊이 감안했다기보다, 에바에 대항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체 게바라의 외양과 특징을 선별적으로 차용해 ‘체’라는 캐릭터를 구성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번 한국 프로덕션을 포함하여 최근 <에비타>의 연출적인 흐름은 체에게서 기존 체 게바라의 특성에서 차용한 수염이나 모자 등의 연출적 특징을 제거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영미권 뮤지컬의 고전 중 하나로 꼽히는 <에비타>를 새롭게 ‘리뉴얼’하는 과정 중 하나다.
체의 시선에 의해 다시 반복되는 에바의 인생 속에서 그는 육체의 능력을 ‘인기’와 명성, 권력과 교환하며 스스로를 소모시키면서 물리적 죽음을 향해 질주한다. <에비타>에서 제시되는 에바의 삶이 모순과 역설의 언어로 설명될 수 있는 이유는 논란의 여지가 다분한 대립적인 역사적 평가, ‘신성한’ 성녀와 ‘오염된’ 창녀라는 가부장제의 이분법, 삶과 죽음이라는 이항 대립으로는 결코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항대립적 코드는 결과적으로 해체된다.) 이때 에바를 숭배하는 노동자 계층이나, 경멸하는 귀족들, 그리고 에바를 통해 정치적 권력을 얻은 후안 페론 같은 캐릭터와 달리 유일하게 에바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서사를 비평하고 반-서사를 유포하는 존재가 체인데, 에바에 관한 모든 것을 의문시하는 체는 유일하게 작품 속에서 다른 캐릭터들에 의해 제시되는 에바를 설명해왔던 담론적 이항대립의 코드를 초월해 있다. (즉, 체의 비판은 단순히 그러한 이분법적 대립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맹목적인 ‘숭배’와 혐오로 인한 ‘적대’ 모두 대상화를 경유하며 발생한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감정이 정치적으로 쉽게 동원될 수 있는 기제임을 감안한다면**, 양자 모두에게서 벗어나 있는 체의 모습은 <에비타>를 에바 페론이라는 인물의 재현 (불)가능성에 대한 텍스트로 만든다.
한국 프로덕션을 포함하여 다소 최근에 이루어지는 <에비타>의 프로덕션의 경우 극 내적으로 제시되는 에바와 체의 교류나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왈츠(‘the waltz for eva and che’) 장면은 체의 존재를 에바와 연결하며 무대의 공간을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이번 공연의 연출에 주목하자면, 체는 에바와 연결되어 존재하면서 동시에 그와 대립하고 에바의 취약성이나 과거의 트라우마로 직결되는 ‘버튼’ 그 자체다. 프로이트의 후예이자 분석심리학의 거장 칼 융(Carl J. Jung)은 의식이 인정하지 않고 무의식의 공간으로 억압하고 은폐한 부정적인 감정 등 어두운 요소의 집합을 의미하는 ‘그림자’와 아니마/아니무스 개념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칼 융의 개념은 <에비타>의 다소 의미심장한 연출을 고려했을 때 체가 에바의 그림자, 혹은 ‘아니무스’(여성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남성의 원형)로 해석될 수 있음을 함의한다. 체는 에바의 과거와 은폐하고 싶어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을 상기시키면서 에바의 활주를 방해하며, 동시에 다른 캐릭터와 달리 에바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존재다. 에바는 자신을 무시하는 귀족을 향한 원한과 증오감을 정치적 대의로 포장하면서 발생하는 모순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외면하려 하고, 자신을 신성시하는 이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는 불안감을 드러내지 않지만, 체는 이것이 에바의 취약성임을 이미 알고 에바에게 경고한다. (체의 비판이 작품에서 제시되는 귀족과 군부의 시선이 보여주는 에바를 향한 단순한 ‘혐오’와 구분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여러 고전 작품들처럼 충분하게 확보된 작품의 여백 속에서 의도적으로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고 ‘거리’를 확보시키는 체의 역할과 그가 유일하게 인격적으로 소통하는 존재가 주인공 에바라는 점은 다양한 해석과 비평의 공간을 개방함으로써 뮤지컬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 작품이 납작하게 박제되고 고정된 ‘표본’이 아니라 재해석과 투사 등 다양한 사고 실험의 가능성이 열린 복잡한 텍스트임을 증명한다.
* 체 게바라의 투쟁은 반-자본주의와 반-제국주의적인 측면이 있는데, 이는 페론 부부로 대표되는 페론주의의 목표와도 ‘큰 틀에서’ 공명하는 부분이 있다. 물론 남미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동시에 비서구의 특성을 감안한 다소 자생적인 혁명을 지향한 체 게바라와, 서구식 식민제국주의와 봉건 및 자본가 계급에 대항한다는 면은 동일하지만 이를 위해 네셔널리즘을 활용하거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유럽 우파 독재정권(프랑코 정권)과 손을 잡기도 했던 모순적인 면모를 보여준 후안 페론과의 정치적 지향 차이야 당연히 존재하고, 실제 역사에서 에바 페론 사후 후안 페론의 스페인 망명 당시 일시적으로 이루어졌던 만남도 조건적이고 불안정한 유대 속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 관련한 논의는 『숭배, 애도, 적대』(천정환, 2021) 참고. 기저에 깔린 배경으로는 『마음의 사회학』(김홍중, 2009)과 주디스 버틀러의 ‘애도’에 관한 후기 논의 참고.
‘재현’의 불가능성과 동시에 존재하는 불완전함의 가능성

뮤지컬 <에비타>는 복잡한 작품이다. 작품 전체가 구사하는 화법인 냉소적 태도와 풍자, 비꼬기 등으로 번역되는 ‘sarcasm’은 물론 극 내부에서 교차하는 다층적 시선, 그리고 의도적으로 몰입을 방해하는 거리두기 등의 방법론이 서사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에비타>는 에바 페론이라는 여성을 하나의 존재로 규정하려는 관점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서사의 발언권을 두고 경합하는 에바와 체를 통해 서사를 전개한다. 극 내부에서 대립되는 것을 직접적으로 충돌시키는 형식은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파편들을 해석의 층위로 끌어올리며 강렬도를 극한으로 밀고 나간다. 또한 캐릭터와 캐릭터 사이, 캐릭터와 관객 사이, 공연과 관객 사이에 의도적으로 배치된 ‘거리’는 동일한 감상을 보장하지 않고, 공연의 관객으로 상정되는 ‘보는 이’의 선험적 지식과 관점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점 역시 흥미로운 포인트다. 모순과 역설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활용한 작품은 서사적 입체성의 전제가 된다.
하지만 웨버와 라이스라는 영국인으로 구성된 창작진의 (작품에 투사될 수밖에 없는) 위치성을 고려한다면 체라는 캐릭터의 구성은 여전히 작동하는 후기 식민 질서 속에서 문화 전유의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체라는 캐릭터 구성에 있어서도 남미의 역사와 문화를 다소 자의적으로 활용했다는 느낌을 준다. (2천년 전에 존재했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유다와 달리, 체 게바라에서 ‘추출’한 체의 특징은 복잡한 근대사 속에서 충분한 시간적 거리가 확보되지 않았다.) 또한 작품 내부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영국은 아르헨티나와 직접적인 식민 지배는 아니더라도 국가 간 경합의 역사가 존재하고, 아르헨티나 관료제 내부 부패의 의혹이나 에바 페론이 출처가 불분명한 혹은 위험한 비자금을 융통했다는 것에 대한 풍자는 자세히 제시되고 있지만 그 부패가 만연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조건을 질문하지는 못한다***. 또한 에바 페론을 포함하여 페론주의의 행보를 단순한 ‘포퓰리즘’(엘리트와 대중이라는 이원화된 구도)이나 복지 체계의 정비 및 노동권 및 투표권의 성취로 간단히 설명하려는 수용자들의 욕망 역시 아르헨티나의 특수한 맥락을 삭제하는 효과를 낳는다. <에비타>라는 작품을 통해 ‘아르헨티나의 성녀’는 영미권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흡수되었지만, 다른 예술 작품이 그러하듯 해석과 비평의 차원에서 또 다른 변주의 가능성을 얻는다.
뮤지컬 <에비타>는 작품 내부의 ‘재현’의 시선뿐만 아니라 외부적 ‘재현’ 역시 문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직접적으로 제시된 ‘쇼’라는 형식과 관객에게 제공된 ‘틈’은 태생적 한계 속에서도 페미니즘과 탈식민주의 비평을 위한 저항의 공간을 남겨 놓으며, 오히려 그러한 불가능성과 한계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독해의 출발점이 된다. 따라서 창작진의 영리한, 다른 말로는 ‘영악한’ 방법론은 그들 자신에게 주어진 혐의와 공모의 지점을 단순히 ‘의혹’의 자리에서 멈추게 만들며, <에비타>는 문제적인 고전이 된다. 완전한 상태로 꽉 닫힌 텍스트가 되느냐, 아니면 재해석과 변주가 가능한 문제적인 텍스트로 남느냐, 그 둘 사이에서 <에비타>는 명백히 후자의 노선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불완전성은 1976년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에비타>가 2026년 현재까지 올라오게 하는 동력이다.
*** 현대 아르헨티나 경제에서 신자유주의화를 촉진시키면서 (후기) 식민주의의 사슬에 더욱 얽히게 만든 IMF와 워싱턴 컨센서스의 영향력을 짚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러한 배경이 배제된 채로 페론주의의 특정 정책(예를 들어, 복지로 재정지출을 높이는 정책)으로 원인을 돌리게 된다면 아르헨티나의 특수한 정치경제적 맥락과 세계 체계 속에서의 위치의 문제를 탈각시키게 된다.
14년의 시차 속 스스로를 변화시킨 <에비타>, 그 연출의 방법론

14년만에 3연으로 돌아온 뮤지컬 <에비타>는 철골 구조물과 계단이라는 재연에서 활용되기도 했던 연출적 특징을 일부분 이어받으며, 더욱 미니멀리즘과 모던함을 지향했다고 밝히고 있다. 동시에, 에바 역할을 표현함에 있어서 기존의 정형화된 의상과 스타일에서 벗어나 다소 라이선스 공연만의 자유도를 높였다. 이는 같은 홍승희 연출의 손길이 담긴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2022-23 이후 공연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데, 그러한 무대적 장치와 의상에 담긴 특정한 역사적 맥락이나 특수성 대신 서사를 보다 현대화하는 시도를 낳기 때문이다. (이는 다소 이중적인 효과를 낳는다.) 번역 역시 원어 (영어) 가사를 그대로 활용한 지점이 많다는 점, 특히 에바가 자기 자신을 꾸미는 장면인 ‘rainbow high’에서 그대로 사용되는 영어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와의 공통점이다.
무대 세트가 단조롭고 화려하지 않은 반면, 앙상블들의 활용을 더욱 높이고 에바의 연설 장면에서 국민들을 표현하는 앙상블의 모습이나 마지막 에바의 연설 장면을 영상으로 송출시키는 등 기존의 무대 미학에서 벗어났거나 혹은 최근에 시도되고 있는 연출적 기법을 활용하면서 실험을 시도한다. 이러한 연출의 기조는 동전의 양면인데, 에바의 유럽 순방(rainbow tour) 장면처럼 공간의 이동이나 변화를 표현하는 스펙타클이 줄 수 있는 이점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해군 제독과 이탈리아 총리, 교황을 같은 앙상블이 아무런 의상이나 소품의 차이 없이 그대로 소화하는 연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전통적인 화려함의 미학을 포기하면서 발생하는 ‘모던함’은 후반부 왈츠 장면(‘waltz for eva and che’)에서는 장점으로 전환된다. 모든 면이 거울인 삼각 기둥을 활용한 연출을 통해 단순히 암시에 그치던 에바와 체의 연결성이 전면화되고 부각되면서 그들은 ‘대화’하게 된다. 체는 일관적으로 작품 내에서 에바의 반대항으로 기능하지만, 이 장면에서는 체와 에바를 연결시키면서 동시에 대조시킨다. 또한 에바가 죽기 직전 자신의 삶을 회상하며 생애의 단면들이 흘러가는 ‘Montage’와 죽음을 표현하는 불빛이 군부 내의 은폐된 죽음을 표현하는 ‘the art of the possible’과 에바의 죽음(‘lament’의 마지막)에 동일하게 활용된다는 점은 상상의 여지를 남겨 놓는다. 논 레플리카 버전으로 수입된 <에비타> 라이선스 공연 연출의 일관성은 (전통적인) 스펙타클의 미학과 여백을 남기는 모던함, 역사적 맥락의 탈구와 심리적 드라마라는 양자 간의 긴장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대신 전자를 포기하고 후자에 집중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호불호’가 갈릴 만한 요소이지만, 정해진 예산 제약과 프로덕션의 상업적 지향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선택과 집중은 다소 ‘최적’의 선택이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