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 요즘 가을 타는 것 같아

가을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 걸까?
글 입력 2023.10.2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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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타?" 나는 그 말을 지긋지긋해하면서, 때로 말장난을 하고 싶다. "승차감이 너무 좋아서 수상해.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가을을 타면 어디로 갈 수 있는 걸까. 얘는 날 어디로 데려가고 싶은 걸까. 그는 슬그머니 찾아와 내 목에 울적과 쓸쓸함을 둘러준다. 어느 날 코끝이 싸리해지는 걸 느끼면, 그제야 네가 날 내려줬구나 깨닫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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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탄다'는 말이 참 야속했다. 내가 해명하기 어려운 이 무거운 몸은 쉽게 설명되어 버린다. 나는 그 표현과 내 감각 사이의 낙차에 항상 몸이 저릿하게 아프다. 때로 언어화는 설명 불가능함에서 오는 고통에서 날 구해주지만, 때로는 설득되지 않고 다 표현되지 않으며 오히려 아픔을 납작하게 만들어서 날 더 괴롭게 한다.

 

나는 늘 말을 곁에 두면서 미워하고 사랑하길 반복했다. 계절성 우울, 나는 그렇게 표현하고 싶지 않다. 이 말은 분명 많은 걸 설명해 주지만, 동시에 나는 그 말에 갇히는 기분을 느낀다. 그걸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는 거. 막연하고 모호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게 전부가 아니야. 나는 뭔가, 좀 더 많은 말이 필요하고, 동시에 아무 말도 원하지 않는다.

 

뭔가를 계속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스터디를 해보고, 책을 사들이고, 강의를 듣고, 쓰고 읽고 보면서, 나는 얼마나 더 풍성해질까. 어느 날부터 내일이 기다려졌다. 설렘은 향긋했다. 나는 향긋함을 두르고 있을 때 무엇을 입었을 때보다 더 나를 아끼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잠드는 시간만을 애타게 기다린다. 오랜 불면증으로 잠에 깊이 드는 날이 손에 꼽다 못해 없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심지어 '나'로 살아있다는 감각마저 아득해지는 그 순간이 기다려졌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나는 더 무거워졌는데, 튼살이 늘어날수록 우울과 무망도 부피가 커졌다. 나는 내 무게보다, 부피보다 뭔가 더 많고 무겁고 두터운 것 같았다. 그게 참 싫었다. 풍성함과는 다른 것이었다.

 

돌이킬 수 없음, 어쩔 수 없음이 지긋지긋했다. 나는 그게 미웠다. 나는 어떤 과거의 지우고 싶은 순간을 끊임없이 떠올렸다. 아니 내 의지와 무관하게 자꾸 떠올랐다. 내 미래와 현재는 그것들이 불쑥 떠오르고 찾아오는 바람에, 나는 과거를 살아가는 기분인데, 실제 시간은 앞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싫었다. 여기에 멈춰있는 기분. 계절은 변하는데, 나는 여기에. 가을은 결국 나를 겨울에 내려놓는 걸까. 앙상해지기만 하는 그 계절에.

 

나는 아프다.

 

분명 처음에 나는 이 글에 전환점을 심어두려고 했다. 가을은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돌볼 수 있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고. 쓰고 싶었다. 맞다. 나는 '가을 탄다'라는 말 덕분에 나를 되돌아보고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왜 이 글은 내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을까.

 

나는 이렇게 의도했다. 1. 글의 목적: 마음 돌아보기―마음 돌아보는 시간의 필요성. 2. 글의 소재: "가을 탄다" 3. 개요: 서론: 가을 탄다는 말과 나의 상황, 본론: 마음 다잡아 보기, 결론: 가을은 '탄다'는 핑계로 마음을 살피고 마음껏 내 마음을 돌보고 아플 수 있는 계절이다. 마음, 돌아보자. 가을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줄까?

 

이 글은 내 뜻대로 가지 않았다. 않는다. 나는 흔들린다. 내 글은 울적함을 두르고 필요 이상으로 피둥피둥 살이 찐다.

 

겨울은 앙상하기만 하지 않다는 걸 알고, 흔히 떠올리는 계절과 관련된 비유들이 단편적이라는 걸 안다. 나는 인생을 사계절로 나누는 걸 거부한다. 언젠가 봄이 찾아올 거라는 말을 거부한다. 어떤 사람의 생에는 분명 다섯 번째, 여섯 번째의 계절이 있을 것이다. 그 계절의 이름과 모양새를 사계절을 사는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앙상해진다는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다. 나는 어딘가에 갇히고 싶지 않고 늘 무언가를 거부하고 싶은데 왜 항상 사로잡힌 이 틀의 외부를 상상하지 못하는 걸까.

 

이 글은 내 마음을 따랐을지도 모르겠다. 글의 의도처럼 그렇게 쉽게 마음을 전환할 수 없다고 힘들다고, 외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글은 내 흔들림이다. 나는 흔들리고 있다. 그래도 나는 이 글을 남기고 싶다. 지우고 싶지 않다. 이것이 내가 지금 가을을 감각하고 느끼는 바니까. 어쩌면 이런 글도 누군가에겐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필요하다는 말이 필요한 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남기고 싶고,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남기는 일은 내가 지금을 느끼는 하나의 방법이다. 내 과거를 다시 쓰지 못하니까. 지금을 글로 현재를 사로잡아 새로운 과거로 만든다. 나는 그렇게 쓰고 있다.

 

이 마음은 어디로 가야 할까. 가을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 걸까. 나는 부딪치고 흔들리며 가을이 품은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 그 탄성을 글에 또 남겨본다. 이미 여기가 종착지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래도 다른 곳이 있으리라고 믿고 싶어.


나는 가을을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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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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