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크기변환]KakaoTalk_20260702_115720900.jpg

 

 

우리는 시를 사랑해.

 

나는 시를 사랑하고 싶어.


뉴스레터를 신청하던 당시 내 마음은 이랬다. 나는 시를 사랑하는 ‘우리’에는 아직 들어가지 못하겠지만, 이 편지들을 읽다 보면 언젠가는 그 ‘우리’에 속할 수 있지 않을까. 칠판에 적힌 시를 보며 화자·정서·주제·표현법을 추측하던 시절을 지나, 나는 시를 사랑하고 싶었다.


때로는 그 사람이 무엇을 사랑하는지보다 무엇을 사랑하고 싶어 하는지가 그 사람을 더 잘 보여준다. 그 사랑이 끝내 사랑하기 위한 사랑으로만 남더라도.

 

 

 

사랑의 작용, 시가 내게 한 일


 

사랑은 작용한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사랑은 그것이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과 감정을 반드시 만들어낸다. 사랑하고 싶다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것에 의해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움직여지고 싶다는 욕망이다. 시는 내게 그렇게 작용했다.


대학과 불화하던 때가 있었다. 어떤 강의를 들어도 외국어처럼 들렸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 피가 흐르는 대신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처럼 팔다리가 간질거려서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럴 때면 메일함을 열어 ‘우리는 시를 사랑해’ 뉴스레터를 읽었다. 조금 살 것 같았다. 특히 고선경 시인의 “어쩌면 내가 어떤 순간을 붙잡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순간이 나를 오래도록 붙잡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문장을 만났을 때는 더욱 그랬다.


그 뉴스레터가 책으로 묶여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처음 독자를 만났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23명의 필진이 보낸 139통의 편지 가운데 40통을 골라 엮었다. 고선경, 백은선, 진은영 같은 시인뿐 아니라 김민하, 박정민, 이주영 같은 배우도 함께했다.

 

필진들은 자신의 안부를 건네듯 인사를 시작한 뒤 한 편의 시를 소개하고, 그 시가 자신에게 남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이어야만 하는 이유, 멈춤


 

뉴스레터를 그대로 책으로 옮긴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 역시 이미 뉴스레터로 읽었으니 굳이 책으로 소장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집기 전까지는. 정확히는, 앞표지에 닿은 엄지손가락과 뒤표지에 닿은 네 손가락이 서로 다른 촉감을 느낀 순간까지는!

 

초록초록한 앞표지는 매끄러웠고 뒤표지는 거칠었다. 뒤집어 보니 편지봉투 모티프로 디자인된 표기가 보였다. 그 촉감이 정말 편지봉투 같았다. 책의 물성을 이렇게까지 섬세하게 활용할 수 있다니!

 

 

[크기변환]KakaoTalk_20260702_115720900_01.jpg



본문도 마찬가지였다. 휴대폰이나 노트북으로 읽을 때는 무심코 스쳐 지나갔던 문장들이 종이 위에서는 훨씬 깊게 들어왔다. 뉴스레터일 때와 책일 때, 각각의 매체가 가진 장점을 이토록 잘 살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사실 시는 휴대폰으로 읽기에 썩 유리한 장르가 아니다. 행과 연이 흐트러지면 호흡도 함께 무너진다. 우시사 팀은 이를 막기 위해 시를 직접 입력한 뒤 이미지로 제작했고, 독자의 기기나 폰트와 관계없이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도록 했다. 책에선 표지와 본문 디자인을 통해 편지 형식을 극대화했고, 화면에서는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글들을 종이 위에 자연스럽게 안착시켰다. 같은 콘텐츠가 매체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살아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특히 좋았던 편지는 백은선 시인의 「슬픔의 대표」였다. 그의 편지는 시를 닮았다. 그의 시처럼 표현 하나, 온점 하나, 물음표 하나로 걸음을 멈추게 한다. “나보다 슬픈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내가 슬플 수 없다면, 세상에 슬픈 사람은 단 한 명뿐이겠네. 가장 슬픈 사람 한 명만 대표로 슬퍼하겠네.” 나는 이 문장에서 멈춰 서야 했다. 그가 소개한 권누리 시인의 「초목과 양떼들―정인에게」 속 “너무 슬픈 소원을 빌고 싶은 인간아, 이제는 내게도 그것을 떠맡겨도 좋아.”라는 문장에서도 다시 멈춰 서야 했다. 책은 사람을 멈춰 세운다. 휴대폰과 노트북은 좀처럼 사람을 멈춰 세우지 못한다.

 

이 멈춤 속에서 나는 40통의 편지가 책으로 묶여야 했던 이유를 발견했다.

 

 

KakaoTalk_20260702_115720900_02.jpg

 

 

 

또 다른 ‘우리’가 되고 싶은 당신에게


 

시인과 배우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질문한다. “아름다움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라 묻고 “울 일이 있는 당신에게” 손을 내밀며 “저도 여러분의 계절에 있을게요”라고 말한다. 이들과 함께라면 ‘우리’여도 괜찮을 것 같다. 아니, ‘우리’이고 싶어진다.

 

오랜만에 정성스럽게 만든 책을 만났다.

 

또 다른 ‘우리’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소중히 권한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