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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나는 이렇게 해서라도 살아야 했기에, 그래야만 살 수 있었기에 [영화]

여자들의 덜그럭거리는 복수극, <경주기행>

by 임유진 에디터
2026.09.04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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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실은 ‘그 새끼’에게 궁금한 점이 참 많았다. 다시 만나게 됐을 때 혹여라도 횡설수설할까 봐 미리 질문지까지 적어 왔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 그게 옥실의 첫 번째 질문이었다.

       

      엔딩 시퀀스, 끝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옥실은 백상현과 단둘이 마주하게 된다.

       

      자신의 완전한 무력감을 깨달은 백상현이 그제야 옥실에게 살려달라고 빈다. 처참한 밑바닥을 인지하고 난 후에야 살려달라고 비는 꼴이 사납기 그지없다. 그의 말에서 우리는 더러운 씁쓸함만을 느낄 수 있다.

       

      옥실은 그런 백상현의 입에 돌을 쑤셔 넣는다. 가해자에게 말할 기회조차 부여하지 않기로 한 결심에서 나는 이 작품이 견지한 태도를 읽을 수 있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져 온 이 태도는 영화의 가치관과 주제를 관철하기에 충분했다.


      백상현은 스크린 안에서 온전한 악인으로 전락한다. 유가족에게 복수하기 위해 출소 후 그들을 찾아다녔다는 전사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명백한 가해자에게 불필요한 서사를 부여하지 않은 점도 경주기행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백상현의 이 말에서 나는 여러 피해자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다 이내 백상현의 모습에서 경주를 떠올린 나 자신에게 자괴감을 느꼈다. 몇 초 후엔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가 완전히 뒤바뀐 관계의 전복에서 왠지 모를 쾌감을 감각하기도 했다. 삽시간에 손바닥 뒤집듯 달라지는 감정에 나조차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이러한 나의 감정처럼 인물의 관계나 상황의 확실한 반전이 드러나는 부분도 여럿 보였다. 더 이상 그가 입 놀리는 꼴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옥실이 결국 그의 목을 매단다. 백상현의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소나무에 그의 몸을 걸기 위해 온몸으로, 온 힘을 다해 절벽 바닥 위를 기는 옥실의 모습에서 나는 끈질긴 생명력을 느꼈다.

       

      이처럼 매력적인 아이러니는 언제나 대환영.


      물론 어딘가 기시감이 느껴지는 가족 구도와 관계성에선 약간의 아쉬움이 남긴 하나 이러한 아쉬움이 상쇄될 만큼 강한 장점을 지닌 작품이다. 보면서 이렇게까지 누군가의 뒤통수를 여러 대 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 작품은 오랜만이다.

       

      이러한 나의 생각을 스크린 안에서 실행으로 옮겨준 여러 여자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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