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새가 날아든다, 온갖 새들이 날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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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얘기 하면 잡아간다는데
나 같은 새 한 마리 잡아서 뭐해
사냥개에게 잡혀가더라도 그 모습이 꼴사나워
말이라도 해야겠다.‘
12월 21일 지난 토요일, 광화문 광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연대를 위해 모였다. 집회 현장은 저마다 미리 준비해 온 깃발과 응원봉을 흔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날은 범국민대행진의 날로, 탄핵 가결 이후 윤석열의 즉각 파면과 처벌을 위해 모인 자리였다. 계속되는 칼바람에 금방이라도 몸이 얼어붙을 것 같았지만, 계속되는 핫팩과 음식 나눔에 얼었던 몸도 금세 풀렸다.
무엇보다 우리가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건 바로 ‘음악’ 덕분이었다. 지칠 틈조차 주지 않은 채 연이어 흘러나오는 음악은 영하의 기온 속 우리의 열의를 더욱 북돋아 주었다. 그중에서도 중간마다 존재하는 공연은 시민들의 촛불·응원봉 물결을 하나로 만들어주었다.
지난 21일 집회에서는 ‘시민과 함께하는 뮤지컬 배우’ 일명 ‘시함뮤’라 불리는 뮤지컬 배우팀이 무대에 올랐다. ‘시함뮤’는 2016년 박근혜 탄핵 집회 당시에도 같은 이름으로 집회에 참여한 적이 있는 팀이다. ‘시민과 함께한다’는 그 이름처럼, 시민들과 연대하기 위해 모인 뮤지컬 배우 연합이다.
이날 시함뮤 팀은 뮤지컬 <판>의 넘버인 ‘새가 날아든다’를 불러 큰 호응을 얻었다.
<판>은 19세기 말 조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서민들 사이에서 세상을 풍자하는 패관소설들이 퍼지던 시기, 나라에서는 이러한 서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새책가를 중심으로 소설을 모두 거둬 태우라는 명령을 내린다. <판>은 이 같은 억압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소설과 이야기를 통해 목소리 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특히 '새가 날아든다'는 패관 소설을 읽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갇히게 된 매설방 사람들이 자신들의 목소리가 더 멀리 울려 퍼질 수 있게끔 부르는 넘버라 더욱 벅차올랐다.
노래 가사 중 '새'는 분노하고 목소리 높이는 백성을 가리킨다. 뮤지컬의 클라이막스에서 배우들은 흰 새가 달린 긴 막대기를 흔들고, 새는 넘버가 진행되는 내내 저항하듯 온몸으로 춤을 춘다. 이날 김지철 배우는 공연 시작 전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여러분을 새라고 불러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이미 뮤지컬을 보고 노래 속 '새'의 의미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나는 김지철 배우의 그 물음에 벅차오르는 감정을 차마 숨길 수가 없었다.
출처 : X(구 트위터) @milflower1111
현장에서는 직접 만든 커다란 새 모형을 흔들던 시민도 있었다. 대형 새는 무대 위에서 노래로 저항하는 배우들, 시린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도 투쟁을 외치던 시민들의 마음을 떠안고 오래도록 하늘을 날았다. 이 외에도 여러 뮤지컬 대사가 적힌 깃발들은 함께 바람에 나부끼며 멀리서도 힘을 보탰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탄핵 반대 시위대의 목소리, 현장 속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도 전부 묻히는 것만 같았다. 이 짧은 순간 덕분에 나는 추위에 떨던 몸을 녹이고, 다시 목소리 높일 힘을 얻었다.
나는 종종 예술이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나라가, 온 국민이 혼란스러운 이 상황에서 나는 다시 한번 나에게 묻는다. 예술이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시함뮤 팀의 무대를 보고 난 후 나는 이 오랜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렸다. 우리가 그렇다고 믿으면 된다. 무엇보다 우리가 그렇다고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충분히 예술로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오늘도 여전히 노력하는 당신, 언제나 투쟁!
[임유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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