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새가 날아든다, 온갖 새들이 날아든다

우리가 연대하는 방법
글 입력 2024.12.2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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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얘기 하면 잡아간다는데

나 같은 새 한 마리 잡아서 뭐해

사냥개에게 잡혀가더라도 그 모습이 꼴사나워

말이라도 해야겠다.‘


12월 21일 지난 토요일, 광화문 광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연대를 위해 모였다. 집회 현장은 저마다 미리 준비해 온 깃발과 응원봉을 흔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날은 범국민대행진의 날로, 탄핵 가결 이후 윤석열의 즉각 파면과 처벌을 위해 모인 자리였다. 계속되는 칼바람에 금방이라도 몸이 얼어붙을 것 같았지만, 계속되는 핫팩과 음식 나눔에 얼었던 몸도 금세 풀렸다.


무엇보다 우리가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건 바로 ‘음악’ 덕분이었다. 지칠 틈조차 주지 않은 채 연이어 흘러나오는 음악은 영하의 기온 속 우리의 열의를 더욱 북돋아 주었다. 그중에서도 중간마다 존재하는 공연은 시민들의 촛불·응원봉 물결을 하나로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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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집회에서는 ‘시민과 함께하는 뮤지컬 배우’ 일명 ‘시함뮤’라 불리는 뮤지컬 배우팀이 무대에 올랐다. ‘시함뮤’는 2016년 박근혜 탄핵 집회 당시에도 같은 이름으로 집회에 참여한 적이 있는 팀이다. ‘시민과 함께한다’는 그 이름처럼, 시민들과 연대하기 위해 모인 뮤지컬 배우 연합이다.


이날 시함뮤 팀은 뮤지컬 <판>의 넘버인 ‘새가 날아든다’를 불러 큰 호응을 얻었다.

 

<판>은 19세기 말 조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서민들 사이에서 세상을 풍자하는 패관소설들이 퍼지던 시기, 나라에서는 이러한 서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새책가를 중심으로 소설을 모두 거둬 태우라는 명령을 내린다. <판>은 이 같은 억압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소설과 이야기를 통해 목소리 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특히 '새가 날아든다'는 패관 소설을 읽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갇히게 된 매설방 사람들이 자신들의 목소리가 더 멀리 울려 퍼질 수 있게끔 부르는 넘버라 더욱 벅차올랐다.

 

노래 가사 중 '새'는 분노하고 목소리 높이는 백성을 가리킨다. 뮤지컬의 클라이막스에서 배우들은 흰 새가 달린 긴 막대기를 흔들고, 새는 넘버가 진행되는 내내 저항하듯 온몸으로 춤을 춘다. 이날 김지철 배우는 공연 시작 전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여러분을 새라고 불러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이미 뮤지컬을 보고 노래 속 '새'의 의미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나는 김지철 배우의 그 물음에 벅차오르는 감정을 차마 숨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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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X(구 트위터) @milflower1111

 

 

현장에서는 직접 만든 커다란 새 모형을 흔들던 시민도 있었다. 대형 새는 무대 위에서 노래로 저항하는 배우들, 시린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도 투쟁을 외치던 시민들의 마음을 떠안고 오래도록 하늘을 날았다. 이 외에도 여러 뮤지컬 대사가 적힌 깃발들은 함께 바람에 나부끼며 멀리서도 힘을 보탰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탄핵 반대 시위대의 목소리, 현장 속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도 전부 묻히는 것만 같았다. 이 짧은 순간 덕분에 나는 추위에 떨던 몸을 녹이고, 다시 목소리 높일 힘을 얻었다.

 

나는 종종 예술이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나라가, 온 국민이 혼란스러운 이 상황에서 나는 다시 한번 나에게 묻는다. 예술이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시함뮤 팀의 무대를 보고 난 후 나는 이 오랜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렸다. 우리가 그렇다고 믿으면 된다. 무엇보다 우리가 그렇다고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충분히 예술로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오늘도 여전히 노력하는 당신, 언제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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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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