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콘텐츠

혐오가 담긴 콘텐츠를 소비하며 가볍게 웃어넘기려는 사람들에게
글 입력 2024.10.2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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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전부터 <미생>이라는 작품을 내 인생 드라마로 소개하곤 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인생 드라마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항상 <미생>이라고 답했다. 몇 년 전,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종영한 지 꽤 된 시기에 이 작품을 정주행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남들이 명대사라고 하는 부분에만, 배우들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장면에만 환호했을 뿐이었다. 왜 극 중 남성 직원들이 여성 직원의 외모를 평가하는지, 성차별적인 발언을 스스럼없이 하는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 이 드라마를 다시 정주행했을 때 나는 얼마 못 가 이런 내 선택을 후회했다. 과거에는 보지 못한 부분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그 작품 세계 안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평가의 대상이 되고,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낄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작품 세계에 내가 머물러야 하는 이유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기에.


이처럼 과거에는 즐겨봤으나 지금은 그저 편한 마음으로만 지켜볼 수 없는 작품들이 꽤 존재한다. 영상물은 시즌을 거듭하며 유동적으로 대본 수정이 가능한 연극이나 뮤지컬과는 달리 한 번 만들어지면 수정이 절대 불가하기에 더욱 그렇다. 더 절망적인 사실은 소수자 차별적인 대사나 창작자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으로 인한 작품 설정 오류는 과거뿐만 아니라 현시대 작품에서도 종종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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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비단 영화나 드라마 같은 서사 콘텐츠에서만 보이는 문제점은 아니다. 지금 이 시점에 생산되고 있는 콘텐츠들 중에서도 시대착오적인 콘텐츠가 분명 존재한다. 만약 없다고 생각된다면, 그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아직 그 콘텐츠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령 대중적으로 많은 밈을 생산한 한 코미디 프로그램이 그렇다. 최근에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하니’가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건으로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이는 여러 언론과 매체에서 화젯거리가 되었다. SNL 시즌6 8화에서는 하니의 국정감사 참고인 조사 장면을 소재로 한 장면을 공개했다. 바로 이 장면이 대중들 사이에서 문제요소로 지적되었다. 하니 역을 연기한 코미디언 배우는 한국어가 서툰 하니 특유의 어투를 흉내냈다. 이는 엄연한 제노포빅이다. 하니의 어눌한 한국어 발음을 의도적으로 과장되게 표현하여 원래 사건의 본질과 의도를 흐리고 있었다.


해당 회차가 방영되고 난 후, SNL은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로서 용기내어 국정감사에 출석한 사람을 희화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였으나 아직까지도 명확한 입장문을 내놓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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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L의 희화화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19일 공개된 회차의 일부 장면에서는 출연 배우 중 한 명이 한강 작가를 패러디한 인물을 연기했다. 해당 배우는 눈을 거의 감은 채 구부정하게 앉아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감을 그대로 따라말했다. 이 장면에서 SNL은 한강 작가의 외적 특징이나 어투를 단순히 따라 하며 희화화하는 것에 그치는, 일차원적이면서도 수준 낮은 개그를 보였다. SNL은 과거에도 이같은 논란에 여러 번 대중으로부터 지적을 받은 바 있으나 그때마다 시종일관 모르쇠로 대응했다.


SNL의 기본 콘셉트는 원조 프로그램처럼 '콩트'와 '현시대의 정치 풍자'이다. 하지만 최근 SNL이 보여주고 있는 몇몇 개그 소재에서는 풍자의 기본조차 되어 있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자고로 풍자란, 기득권층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면서 웃음을 유발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대상을 조롱하며 이를 풍자 내지는 유머라고 포장하는 건 비겁한 행동일 뿐이다. 특히 이번 한강 작가처럼 논란의 여지가 전혀 없는 대상을 조롱하는 건 절대 풍자라고 볼 수 없다. 사회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을 재해석 없이 그저 따라 하기 바쁜, 콘텐츠 제작에 있어 심도 있는 고민 없이 마구잡이로 찍어내는 양산형 개그물을 만드는 국내 코미디 프로그램에 유감을 표한다.


이처럼 사회적 소수자를 소외시키는 콘텐츠들은 여전히 계속해서 생산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콘텐츠들이 SNS에 여러 형태로 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방송사는 혐오 표현이 섞인 대사가 포함된 옛날 드라마의 한 장면을 짧은 클립 형태로 재가공하여 유튜브에 업로드한다. 10·20대의 시청 비율이 높은 이슈 계정에서는 소수자 혐오적인 요소가 다분한 콘텐츠를 재생산하고 있다. 누군가가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을 경우 앞뒤 맥락, 문제 제기 댓글이 달린 배경, 원인 등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그저 ‘프로불편러’라는 단어 하나로 댓글작성자를 짓누른다. 이런 와중에도 여전히 소수자 혐오를 내재한 콘텐츠는 우리나라의 이름을 달고 전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콘텐츠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비판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 아무 판단력 없이, 무엇이 문제점인지도 알지 못한 채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는 이러한 우리나라의 잘못된 인터넷 문화를 똑바로 인지하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단순히 내가 한때 인생 드라마라고 꼽았던 작품을 무작정 구시대적이라며 비난하려는 의도로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차별적인 대사가 아무렇지 않게 쓰이는 영화나 드라마가 존재하고, 이를 무감각하게 소비하는 대중의 인식이 만연하기 때문에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나의 이러한 마음을 누군가는 이해해 주길 바라며, 앞으로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스스로가 소외당하는 듯한 감정을 느끼는 소비자가 없기를 바라며 이 포스팅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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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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