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내에서 아티스트를 '퀴어적'으로 소비하는 문화가 흔해졌다. 특히 소수의 팬덤 인원이 생산하던 CP(커플)는 어느새 주류 문화로 자리했다. 팬덤 내에서 멤버들 간의 친밀한 상호작용을 매력포인트로 활용하여 콘텐츠를 창작하는 것 또한 이제는 익숙한 현상이다. 이러한 점을 아이돌 제작사 또한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특히 동성애 서사를 연출적으로 풀어내는 '퀴어베이팅(Queer bating)'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제작사도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최근 K-POP 산업은 기존 이성애적 서사에만 국한되지 않고 퀴어적인 요소를 앨범 및 자체 콘텐츠에 자연스레 녹여내는 것을 지향하는 추세이다.
엑스러브, 젠더리스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우다
사실 이전부터 K-POP 시장 내에서 젠더리스 콘셉트는 꾸준히 존재해왔다. 사회가 규정한 기존의 남성성을 거부하고 나아가 자신만의 콘셉트를 개척하는 그룹은 생각보다 여럿 존재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는 샤이니 태민이 있다. 태민은 '어드바이스 (Advice)' 활동 당시 단발머리, 링 귀걸이, 크롭티 등 지금껏 남자 아이돌 패션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실험적 코디를 선보였다. 이른바 전 국민에게 '무브병'을 선사했던 타이틀 'MOVE' 또한 태민만의 독창적이면서도 새로운 콘셉트를 확인할 수 있다.
엑스러브는 2025년에 데뷔하였으며, 우무티, 루이, 현, 하루, 총 네 명의 멤버로 구성된 다국적 보이그룹이다. 엑스러브와 지금까지의 젠더리스 콘셉트 아이돌들과의 차이점은 바로 ‘젠더리스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우느냐, 그렇지 않느냐’이다 . 그들은 젠더리스를 자신들의 그룹 핵심 콘셉트로 설명한다. 지금까지 케이팝에서 젠더리스를 차용하거나 부가 콘셉트로 사용한 그룹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지만, 그룹 자체의 핵심 콘셉트로 밀고 나간 아티스트는 엑스러브가 처음이다.
약 일 년 전, 일부 극보수의 시민 단체가 동성애를 미화·조장한다는 이유로 퀴어 소재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의 방영을 반대한 사건이 있었다. SNS 플랫폼에서는 해당 소식에 대한 여러 의견이 오갔고 댓글에는 사건 논지에 벗어나는 말들이 많았다. 댓글창은 퀴어를 향한 일방적인 욕으로 가득했으며, 이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의 젠더 인식이 바르게 잡혀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외에도 잘못된 젠더 인식에서 비롯된 혐오는 여전히 존재하기에 젠더리스라는 혁신적인 콘셉트로 세상에 나온 엑스러브를 처음 봤을 때 응원하면서도 걱정하는 마음이 든 게 사실이다.
지금까지 케이팝 문화가 추구해 온 퀴어성
케이팝 문화에서 지향하는 남자아이돌의 외형적인 모습, 예를 들어 마른 몸, 메이크업 등은 헤게모니적 남성성과는 반대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과거 케이팝 남자아이돌은 자신의 근육을 자랑하며 ‘근육돌’, ‘짐승돌’과 같은 수식어를 얻었다. 그러나 세대가 흐를수록 점차 대부분의 남자아이돌이 남성성의 기준과는 거리가 먼, 성 경계의 구분을 흐리는 듯한 퍼포먼스를 지향했다. 나아가 퀴어를 마케팅 기법으로 사용하는 ‘퀴어베이팅’이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케이팝 산업이 퀴어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사실 케이팝 산업은 굉장히 모순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퀴어베이팅을 통해 소수자성을 콘셉트로서 활용하려는 시도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나 이는 단순히 10·20대 여성 타겟을 위한 마케팅 수단 도구로만 이용될 뿐 이들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여전히 부재한다. 퀴어베이팅 또한 적극적으로 퀴어들의 서사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퀴어성의 넓은 범주 안에 포함되는 장애인·노인·흑인 역시 K-POP 산업 안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걸그룹과 보이그룹을 철저히 분리하며 특정 성별에게 부여하는 사회적 기준 또한 유구하다.
틀을 깨고 융합하고 새롭게 만들기
이러한 케이팝 시장에서 엑스러브의 등장은 무척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엑스러브가 추구하는 음악적 세계는 단순히 남성성과 여성성, 이 두 단어의 범위 안에서는 절대 설명이 불가하다. 엑스러브의 음악적 가치는 오직 남성과 여성, 단 두 개의 성만이 존재하는 이분법적인 세계 안에서 온전할 수 없다.
대중매체에서 엑스러브를 설명하는 수식어로는 흔히 ‘중성적인’이 있다. ‘중성적’은 사전적 정의로, '성적(性的)'인 특징이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이라는 뜻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수식어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그들의 외형이나 안무를 여자 같다고 말하며 마치 조롱하는 어투로 비난한다. 하지만 그들은 능동적으로 경계를 깨부수고 편견을 탈피했다. 특정 성별을 지칭하며 비아냥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우리는 엑스러브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퀴어친화적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전통적 젠더기준이 명확한 모순덩어리 아이돌 시장에서 엑스러브는 그야말로 선구자나 다름없다.
여전히 폭력적인 K-POP 산업에서
가끔 ‘한국의 케이팝 산업이 전 세계 팬들을 담기에는 그릇이 작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돌 그룹의 다채로운 콘셉트만큼이나 케이팝 팬들 역시 다양한 배경과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과연 안전한 환경 속에서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 구조 안에서 그 의문은 더 크게 다가온다. K-POP의 구조는 여전히 폭력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엑스러브라는 팀이 가진 가능성을 보았고 이같은 K-POP 산업에 충분히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