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는 잘 살고 있을까?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닌데
글 입력 2023.09.04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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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지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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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일상을 평범함으로 칠해보겠다고 나섰다. 여전히 평범한 일상을 기록하고 생각하고 이야기한다. 이대로 평범한 초가을로 흘러갈 수도 있고, 평범함이 시시해졌다고 그만둘 수도 있다. 그러다 문득 ‘나는 지금 평범하게 잘 지내고 있는 걸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한 해의 1/3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지나간 날들을 되돌아본다. 연초에 올해는 채워 넣지 말고 비워내자고 다짐했는데 몇 개 되지 않는 목표의 절반도 달성하지 못했다. 덜어내는 건 했는데 덜어내기만 했다. 이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반성하는 마음에서 올해 썼던 글을 다시 읽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다면 그때의 다짐의 유효기간은 지났을 수도 있으니까. 여전히 재미없는 어른의 삶, 직장인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반복, 채워지지 않은 행복 저금통. 내가 꾸준히 해온 거라곤 일상에 힘이 되는 덕질 밖에 없었다. 이게 뭐라도 한 건지, 최소한의 삶은 산건지 조금 알 수 없어졌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감정의 낙차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주 가끔 좋은 일, 가끔 정말 싫은 일이 생기지만 대체적으로 크게 요동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며 규칙적인 생활이 가져다준 일정함이면서 외부 자극에 하나하나 반응하며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은 방어기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감정을 느끼면서 살아가기엔 기력이 부족해서.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게 잘 지내는 걸까?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면서 그 감정들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것과 적당한 감정의 폭을 유지하면서 지내는 것. 살기 편한 게 좋은 건지 무덤덤해지지 않는 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이제 와서 후자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이미 지나온 것이 되어버렸고 되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 그래서 생각하게 된다. 잃어버린 걸까, 변한 걸까. 변했다면 좋은 방향인 걸까 아니면 그저 변하기만 한 걸까.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는 문제는 아닌데 생각하게 된다. 퇴보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

 

그렇게 불시점검의 시간이 되었다.


확신이 없어서 이러는 건지, 자신이 없어서 그런 건지, 결핍된 무언가를 충족시키고 싶은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어서 자꾸 신경 쓰인다. 진화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그냥 방향만 달라지는 변화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 제자리걸음은 하고 싶지 않은데 시간이 지나서 되돌아보면 지나온 발자국이 남아있을지 아닐지 장담할 수가 없다. 주어진 상황에 만족해도 되는지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확실한 한 가지는 이렇게 살고 싶은 건 아니라는 것. 확신이 가득한 삶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어느 방향으로 가든 옳다고 생각할 긍정은 없고, 아님 말고 할 배짱도 없다. 끊임없이 고민하는 게 보통의 삶이라지만,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과 뭐가 보이지 않아서 고민하는 건 결이 다르다. 적어도 나는 이게 나을지 저게 나을지 두 가지를 두고 고민하는 삶을 살고 싶다. 좌도우도 알 수 없는 건 그만하고 싶다. 


생각을 처음으로 돌린다. ‘평범하게 잘 지내고 있는 걸까?’에 대한 답은 아니오. 계획을 이루지 못하는 데서 온 불만족은 아니고, 아무래도 재미없고 행복하지 않은 삶에서 오는 권태로움일 확률이 높다. 재미도 있고 이따금 행복도 찾아오는 일상이었다면 퍽퍽한 일상을 달랠 덕질에 큰 흥미가 없었을 텐데, 만족할 수 없으니 빈 곳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어쩔 수 없음을 안다. 그걸 어떻게 하겠다고 나설 생각은 없다. 끝나지 않는 고민은 없고 사람은 정체되어있지 않으니 이 순간도 오래지 않아 흘러갈 고민이 되겠지. 그래도 고민한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점검한다. 이렇게 살고 있어도 괜찮은 건지, 평범하게라도 살고 있는지 잘 지내고 있는지 나에게 물어본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삶을 사는 건 재미가 없고 행복이 없는 것보다 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니까. 


*

 

그렇다.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고 선택지를 손에 쥐지도 못한 특별할 것은 없고 생각만 많은 시기. 생각이 무언가를 가져다주지 않고 답이 나오지 않은 문제를 두고 시간을 들인다. 수도 없이 반복했으니 이제는 안다. 이 또한 지나가리란 걸. 하지만 지나가더라도 이게 뭔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충분한 고민의 시간을 가지고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개운하면 개운한대로 보내고 싶다. 흘러가는 대로 살더라도 내가 흘러가고 있음은 자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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