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는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글 입력 2023.08.11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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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억울한 상황을 정말 싫어한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 테지만 나는 그게 유독 더 싫다. 흔히 게임을 한다고 속고 속이는 상황 말고, 정말 많은 이들이 나에 대해 오해하는 상황, 그리고 그에 따라 억울해지는 상황 말이다.


누군가가 나를 의심한다고 해도 내가 잘못하지 않았고 당당하면 그만이지 않은가, 싶겠지만 살갗으로 겪어본 사람이라면 생각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억울함을 중학교 시절 처음 겪었다.


그 당시의 일은 우리 학년을 떠들썩하게 만들어 놓았다. 학교에 엄마가 안 좋은 일로 불려오게 된 것도 처음이었고, 나 때문에 경찰이 온 것 또한 처음이었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에 ‘나 때문에’라는 이름 아래 어울리지 않게 학교에 자리잡는 것들이 제법 부끄러웠다.

 

나는 어렸으니까 엄마가 오고, 그 경찰분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소환된 것이었겠지만, 그들의 등장은 오히려 정말 나를 범인으로 낙인 찍는 듯했다. 그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그 오해를 나는 몇 번이고 해명했었다. 나의 처지는 무력했기에 선생님을 통해서였다. 선생님들은 내가 그런 짓을 할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고, 내가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고 해주셨다. 그럼에도 그것을 믿지 않는 아이들은 있는 법이었다. 심지어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까지 그 이야기가 퍼져 나가 몇 년이 지나서까지 나는 그런 잘못을 한 아이로 남아 있었다.


지금은 몇 년이 지났으니 그 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어쩌다 떠올라 그런 일이 있었지, 정도조차 되지 않을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여전히 억울함을 두려워할까.


아마 만족스러울 정도로 인정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 짐작한다. 내가 나아질 정도로 해명되지 않았고, 그 오해로 인해 당해야 했던 시선들을 해소하지 못해서 말이다. 그때의 기억이 덜컥 떠오르는 날만큼 무력해지는 날이 없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 그런 문장이 있다. “나는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한동안 이방인처럼 떠돌던 나는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지금 또한 그렇다.


사람들의 수많은 억울함 중 해결되는 것은 몇이나 될까. 해결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답이 있을 수 없는 질문을 반복해서 하게 된다.


앞으로도 나는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럴 것이다. 새롭게 오는 시간에서는 하지 않은 것이 한 일이 된 순간들이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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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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