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내 인생에서 게임은 빠질 수 없는 취미 중 하나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했으니, 인생의 절반도 넘게 함께해 온 셈이다. 예전에는 게임을 좋아하고 즐긴다는 사실을 눈치 보며 말해야 했는데, 이제는 굳이 숨길 필요가 없어져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요즘은 '술 먹는 연인 vs 게임하는 연인' 밸런스 게임에서 후자를 고를 정도이니, 오히려 건강한 취미 중 하나가 된 셈이다.
 
심지어 MMORPG '로스트아크'의 금강선 전 디렉터는 "게임은 종합 예술"이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다. 게임 산업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화려한 그래픽, 탄탄한 스토리, 매력적인 캐릭터, 그리고 그 뒤를 받쳐 주는 사운드까지 갖추게 되었다. 어느 하나 빠져서는 안 되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이 사운드, 즉 음악이 주는 감동이 다른 요소들에 견줄 만하다고 본다. 오죽하면 음악만으로 승부를 보는 리듬 게임도 있지 않은가.

그런 나를 저격하는 공연이 있었다. 바로 게임 음악을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콘서트가 열린다는 소식이었다.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열린 게임음악 오케스트라 콘서트 《LEVEL UP》은 '희망Dream 자립준비청년 클래식 앙상블 활동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공연의 메인이었던 '오블리주 앙상블'이 바로 이 사업의 첫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었고, 단원들은 활동비를 비롯해 멘토링, 홍보 지원 등을 받으며 전문 연주자로서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이번 공연은 그들이 게임 속 캐릭터가 되어 성장하고 레벨 업하는 과정을 모티브로 기획되었다. 오블리주 앙상블은 그동안 쌓아온 여정을 게임 음악에 담아 자신들만의 음악 세계를 펼쳐 보였다. 여기에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로 활동 중인 젊은 지휘자 진솔과 국내 최초의 게임·서브컬처 음악 콘텐츠 전문 단체 '플래직 심포니 오케스트라 & 밴드'가 함께 무대에 올라 공연의 완성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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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은 비가 내리는 흐린 날이었는데도 객석이 관객들로 빼곡히 찼다. 놀라운 건 아이들보다 어른이 훨씬 많았다는 점이다.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가 아니라, 나와 같은 보통의 어른들 말이다. 공연이 시작되고 무대에는 지휘자가 이끄는 오케스트라 & 밴드, 그리고 이 공연의 진짜 주인공인 오블리주 앙상블이 함께 올랐다. 다른 오케스트라 공연과 《LEVEL UP》의 가장 큰 차이는 무대 한편을 채운 밴드였다. 게임 OST는 클래식만으로 이뤄지지 않고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많이 들어가다 보니, 이번 공연에 밴드를 함께 둔 건 신의 한 수였다. 덕분에 무대가 훨씬 풍성하고 깊어졌다.

공연은 총 3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은 남녀노소 누구나 아는 〈모두의 마블〉로 시작해,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브롤스타즈〉, 지금의 어른들에겐 추억이 된 〈라그나로크〉로 이어졌다. 〈모두의 마블〉의 원래 오프닝 곡은 가사가 있고 사운드도 단순해서, 중독성은 강하지만 다소 유치한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이걸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들으니, 역시 음악은 음악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 <브롤스타즈>, 분명 아이들을 겨냥한 게임인데 OST는 어른이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가 않았다.

2장은 내가 이 공연에 온 목적이기도 한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와 〈발로란트〉 OST로 채워졌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욕하고 떠나도 21세기를 주름잡는 게임은 역시 〈롤〉인지라, 준비된 곡도 그만큼 많았다. 이미 귀에 익은 곡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들으니 새로우면서도 즐거웠다. 너무 큰 욕심이겠지만, 롤 OST가 좀 더 많아도 좋았겠다 싶었다. 좋아하는 노래가 많아서, 그 노래들을 전부 오케스트라 형식으로 듣고 싶었다.

그리고 의외였던 건 〈발로란트〉와 3장의 〈이터널 리턴〉이었다. 〈발로란트〉 OST가 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역시 게임보다 음악을 더 잘하는 라이엇이다), 솔직히 롤보다 좋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특히 이번 《LEVEL UP》을 통해 새롭게 공개된 〈이터널 리턴〉의 'Lumia Overture' OST가 가장 좋았다. 집에 가는 길에 원곡이라도 다시 듣고 싶었지만, 아직 음원이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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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공연의 사운드가 완벽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규모도 크고 음향 시설도 훨씬 좋은 무대에서 듣는 것과 이곳에서 듣는 소리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그렇지만 그게 싫지는 않았다. 이미 완성되어 박제된 무대가 아니라, 지금 한창 나아가고 있는 이들의 음악을 듣고 있다는 감각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공연이 시작될 무렵 떠올렸던 생각으로 되돌아가게 됐다. 게임이라는 매체도 처음부터 종합 예술은 아니었다. 단순한 픽셀 그래픽과 몇 개의 전자음에서 출발해, 수십 년에 걸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한 단계씩, 말 그대로 '레벨 업'을 거듭하며 지금의 모습이 된 셈이다. 그러니 게임 음악을 다루는 이 무대의 제목이 《LEVEL UP》인 게 찰떡처럼 잘 맞아 떨어졌다.

이번 공연을 진행한 오블리주 앙상블 역시 아직 완성형이 아니다. 이제 막 반년 남짓한 시간을 함께 쌓아 올린, 여전히 자라나는 중인 팀이다. 오늘의 다소 거친 음들은 부족함이라기보다, 앞으로 더 단단해질 여백처럼 들렸다. 게임 산업이 그래왔듯, 이들도 한 무대 한 무대를 지나며 분명 더 깊고 풍성해질 것이다. 자립준비청년이라는 이름표보다 '성장하는 음악가들'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다. 그리고 그 성장의 한 페이지를 관객으로 관람할 수 있어 좋았다.

이제 이들은 이 무대를 발판 삼아 더 큰 무대로, 그리고 언젠가는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롤〉과 〈발로란트〉가 듣고 싶어 이 자리에 왔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이 공연의 기확과 스토리를 오래 곱씹어 보았다. 이들이 다음엔 어떤 게임 OST로, 또 얼마나 자란 모습으로 무대에 서 있을지- 그 다음 레벨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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