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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왜 사람은 지나고 나서야 뭐든 깨닫는 걸까. 아니, 지나야만 깨달을 수 있는 것들로 둘러진 세상인가?

   

한때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던 키워드가 있었다. ‘남녀 사이에 친구는 존재하는가?’, ‘헤어진 연인과 친구가 될 수 있는가?’ 지금도 사람 여럿 모인 자리에서 이 얘기를 꺼내면 파가 극명하게 나뉜다. 우선 기본적인 내 입장은 ‘될 수 없다’ 쪽이다. 물론 서로 마음이 티끌도 남아 있지 않다거나 애초에 그렇게 좋아한 게 아니라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명이라도 꽤 좋아했다면 다른 한쪽에 상관없이 헤어지고 친구로 지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친구로라도 지내자는 상대 요청에 ‘그래 난 아무렇지도 않으니까~.’정도의 마음으로 답하는 것부터 좋아한 쪽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나. 둘 중 한 명이라도 이성의 마음을 지우지 못한 채 이어가는 사이는 미래에 더 큰 독으로 뿜어질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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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상황을 보여주는 예시가 바로 이 영화 속 주연들이다. 영화 [두 번째 계절]은 성공한 영화배우 ‘마티유’가 연극 초연을 준비하다가 도망쳐 온 휴양지에서 옛 연인 ‘알리스’를 15년 만에 만나며 일으키는 감정의 소용돌이 극이다. ‘알리스’의 쪽지로 다시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한 이들의 관계는 옛 연인이라기보다는 처음 소개팅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 같은 젠틀하고 간지러운 설렘을 보여준다. 그동안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다정함이 묻어있지만, 그게 재회로 인한 반가움 인지 그 시절 그때의 감정이 불어온 건지 영화 초입에서는 단정 지을 수 없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그들이 주고받는 연락의 빈도와 사진의 개수가 늘어나고 만남도 잦아진다. 이들은 미혼도 아닐뿐더러 각자의 세계가 분명하게 있다. ‘마티유’는 영화배우로서 명성과 그와 어울리는 커리어우먼 아내가 있고, ‘알리스’는 의사 남편과 어리지 않은 딸, 휴양지에 정착한 생활이 있다. 만남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던 이유가 과연 이들이 ‘옛 연인’이었다는 이유와 거기서 비롯되는 미련 때문만일까?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지나간 연인이 현재에 불어 일으킬 수 있는 바람과 지금 결과의 후회와 회한을 쏟아내는 장면들이 많지만 왜인지 서로가 감정을 쏟아낼수록 연인 사이에 대한 사랑보다는 ‘마티유’와 ‘알리스’ 각자의 삶을 더 조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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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것과 숨겨진 것”, 영화의 주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잘 살고 싶어 하지만 잘 살아 보이고 싶은 마음은 유독 지나간 인연들 앞에서 더 기승을 부리는 것 같다. 예전의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 모습을 증명하고 싶어 아등바등 포커페이스를 하는 심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처음 ‘마티유’와 ‘알리스’가 카페에서 재회해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그간의 안부를 물을 때, 둘 다 완전히 솔직해지진 못한다. ‘알리스’의 “영화배우로서 성공했지만 안주하지 않고 연극에 도전하는 용기가 멋있다. 잘 해낼 거라 생각한다.”라는 말에 ‘마티유’는 연극으로부터 도망쳐 온 사실을 테이블 위에 굳이 꺼내놓지 않는다. ‘알리스’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삶을 이야기할 때 거짓을 늘어놓진 않지만 최대한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밝음이 묻어있던 걸 후반부에 이르러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서로 아쉬울 것 없는 인생처럼 보이지만 각자가 되어보지 않으면 사실 서로의 인생이 어딘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아무리 연인이라도 알 수 없는 법이다. 혹, 연인이라서 더 알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상대에게 걸맞은 연인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헤어지면서 ‘마티유’가 본인이 부족하고 못나서 떠났다고 생각해버린 ‘알리스’처럼 말이다.


다시 만났을 때 이렇게 마음이 저릿할 정도로 서로를 원하는 데 왜 이들은 현재 함께이지 않을까? 둘이 영원할 순 없었어도 어떻게 서로를 묻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가정을 꾸릴 수 있었을까? 영화에 묘사되는 부분에서 현재 각자의 아내와 남편에 대해서 느낀 부족함을 되려 옛 연인으로 채우는 공통점이 보이기 때문에 생긴 의문이다. ‘마티유’의 아내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에 든든한 오른팔이지만 통화 장면에서 보이는 이들의 관계는 ‘부부’라기 보다는 ‘전략적인 파트너십’처럼 보인다. ‘알리스’ 또한 부부 관계가 나빠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행복해 보이지도 않는다. 남편과 한 프레임에 등장하는 내내 어딘가 공허하고 참는 것처럼 보인다.


‘알리스’는 ‘마티유’의 존재까지 이야기할 정도로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가야 한다며 ‘마티유’와 저녁 식사를 함께하지 못한다. 그 시각 혼자 저녁을 보내고 있던 ‘마티유’는 ‘알리스’에게서 동영상 하나를 받는데, 동영상은 결혼식 주인공 친구의 인터뷰였다. 나이는 지긋해도 소녀 같은 마음을 가진 친구에게 여러 질문을 하는데, 지금은 세상을 떠나고 없는 ‘옛 남편’을 사랑하셨냐는 질문을 한다. 하지만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고 끝내 나온 대답마저 “깊이 생각 안 해봤다.” 였다. “자상해서 좋았어. 그때는 잘 지내면 그만이었어. 그게 정상. 그때는.” 당시 사회에서 무시될 수 없었던 결혼 생활의 의무과 결혼의 의무가 빚어낸 사랑이었다. 그녀는 현재에 이르러서야 본인 인생의 동반자를 찾게 되었다. ‘마티유’와 ‘알리스’가 헤어진 것도 15년이나 되었으니 그 시절에서 둘이 헤어졌어도 각자의 새로운 짝을 찾아 나서는 길은 대단한 사랑이 아니었어도 어느 정도의 의무로 수렴되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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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과거에서 ‘옛 연인’이라는 바람이 불었다. 지금도 나쁠 것 없는 인생을 살고 있지만 본인도 모르는 새에 잘 모르겠는 것으로부터 갉아 먹히는 삶을 서서히 느껴 권태로운 순간에 과거의 만남이 현재에 부닥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정당함을 부여한 서사와 상황을 따라서 질문을 풀어나가도 개인적으로 ‘외도’ 자체에 쉽게 순응할 생각은 없다.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지 알겠지만 어쨌든 이들이 다른 사랑에 흔들린 것은 칭찬받을 일이 아니다. 이들 사랑이 얼마나 절절했던지 간에 누군가에겐 상처와 배신을 남길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게 ‘잘 헤어지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하면 한 편에서는 이런 마음이 비집고 올라온다. 깔끔한 관계 정리가 상처를 입는 사람의 수를 줄일 수는 있지만, 인생이 그렇게 딱 잘라지게 명쾌하지도 않다는 것. 후회를 빼놓고는 인간을 설명할 수 없고 후회를 적게 하는 사람은 있어도 안 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후회와 미련으로 얽혀있는 끈적이 같은 관계의 끈끈이를 쉽게 떼어낼 수 있는 사람은 더 없을 것이다. 없애는 과정에서도 여러 시도와 실수,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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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위안이 되는 한 가지 사실은 제목에 있다. 사랑은 계절과도 닮아있어서 돌아오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끝이 난다. 반대로 한 계절은 반드시 끝이 있지만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는 사실에도 결코 무감각해져선 안 된다. 같은 계절 속에 서로를 누렸지만 15년이 지나 찾아온 두 번째 계절에 서로 다른 계절에 속한 사랑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의 허무와 공허, 그 간 극의 차이는 돌아올 계절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래도 계절의 끝을 어떻게 장식할지는 본인에게 달렸다. 돌아오는 계절이 아니라 그 당시 일 년에 한 번만 주어졌던 그 계절을 어떻게 매듭짓고 다음으로 넘어갈지는 인간이기에 들여야 하는 더 많은 시간과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문을 잘 닫는다면 다음 계절을 위한 거름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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